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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yoonlee Jul 15. 2024

알함브라를 두고 떠나는 마음은

꾸란의 천국에는 물과 우유, 꿀이 흐른다. 그리고 “경건한 자는 샘이 있는 낙원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말한다. (꾸란 15장 45절)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해서 이슬람인에게 청결한 물은 필수다. 마지막 이슬람 요새인 그라나다를 차지한 이자벨 1세는 알람브라에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물을 보고 감탄했다. 기독교인으로 신앙심이 깊은 여왕은 그들이 이교도라고 얕보았는데, 섬세하고 세련된 건물과 어느 방이나 맑은 물이 흘러가도록 만든 수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세기 말 순정파 작곡가 프란체스코 타레가는 실연의 아픔을 달래며 알람브라의 물소리를 기타 연주곡으로 작곡했다. 트레몰로 기법으로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알람브라의 추억”을 들으면 재잘대며 흐르다 분수나 샘을 만나 떨어지는 알람브라의 물소리가 떠오른다. 사라진 왕조의 궁전에서는 지금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부터 끌어온 물이 쉬지 않고 흘러간다.

아파트 숙소는 짐을 맡길 수 없어 천신만고 끝에 짐을 맡겼다. 그라나다에서는 밤에 도착해 하룻밤 묵었고, 오후에 바르셀로나로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여행할 때 계획을 세우지만, 그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래도 지혜와 역량이 있는 세 명의 어른이 모여 힘을 합치니 어려운 일도 해결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 시내에서 얼마 가지 않아 기사가 “알함브라”라고 외쳤다. 나스리드궁에 들어가는 표는 진즉에 매진되어 할 수 없이 50유로나 하는 그라나다 카드(알람브라 일반티켓, 그라나다 대성당, 그라나다 왕실 예배당, 시내버스 9회, 관광버스 1회, 추가 입장지 포함)를 샀다. 알람브라 입장에만 쓰기에는 아까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인원 제한이 있어서 일반 표(27.30유로)는 3개월 전에 매진되고 그라나다 카드 이용객에게 일부를 남겨놓는다고 했다. 망설이기는 했지만, 아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지. 

수백 년 동안 무어인이 살았던 알람브라는 기독교 왕조가 잠시 이용했고, 그 후 어이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이 미지의 중세 도시를 다시 발견한 사람은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이다. 에스파나 외교관이었던 그는 알람브라에 몇 달 동안 머물면서 그곳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모아 여행기를 썼다. 사라진 이슬람 왕조의 신비한 전설이나 쫓겨난 술탄이 귀신이 되어 가끔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그의 재미난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알람브라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야기꾼 어빙의 책 덕분에 폐허로 남을 뻔했던 유적지는 다시 살아났다. 

우리는 가이드가 하자는 대로 사람이 몰리기 전, 나스리드 궁을 보고, 섬세한 내부 장식과는 달리 투박하고 위협적으로 보이는 알카사르성, 여름 궁전인 헤네랄리페, 나무와 함께 곡선을 그리며 내뿜는 분수가 있는 정원, 지금은 나라가 운영하는 고급 호텔(파라도르)이 된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차례로 보았다. 그들은 시에라네바다 산에서 물만 끌어온 것이 아니라 눈 덮인 정상까지 건물로 들여왔다. 아치형 창과 베란다에는 무어인 주거지 알바이신과 신기루 같은 설산이 풍경화처럼 걸려있다. 그리고 레이스 장식으로 벽을 만들어서 미세한 구멍 사이로 산바람이 부드럽게 들어온다. 둥근 천정(vault)에는 마호메드가 도를 깨달았던 히라 동굴처럼 종유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궁의 어디서나 수로와 분수에서는 맑은 물이 새처럼 지저귀며 흐른다. 우아한 건물은 거울 같은 연못에 비추어 다시 우아하게 수면에 가볍게 흔들리며 나타난다. 대형 목욕탕 천장에 난 육각형의 작은 창문 사이로는 왕족이 즐겼던 목욕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보았던 유적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화려한 건축물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마지막 술탄 보압딜은 나라를 빼앗기는 것보다 알람브라를 두고 떠난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고 산을 넘어가며 한탄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몸은 떠났지만, 영혼은 아직도 알람브라의 지하에 갇혀서 성 요한 축일에 나타난다는 전설을 남겼다. 나는 그의 회한과 안타까움을 절실하게 이해한다. 잠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공들여 가꾼 이 도시에서 얼마나 풍요롭고 평화롭게 살았었는지 가늠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시내로 내려와서 그라나다에서 유명하다는 아티초크 요리를 먹었다. 그리고 그라나다 카드로 입장할 수 있는 그라나다 왕실 예배당에 들러 스페인의 국민 여왕 이자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화려한 관을 보았다. 그들의 죽음은 살았을 때처럼 위엄이 있었다. 

기차 시간이 남아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작은 광장에 앉아 먹으면서 우리는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계획 이상으로 보고, 듣고, 체험한 하루였음에 감사했다. 그래도 반나절 만에 그라나다를 떠나기가 아쉬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알람브라를 두고 떠난 보압딜왕의 아쉬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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