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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Jun 20. 2019

[블랙 미러 시즌 2] ep4. 화이트 크리스마스

We wish your merry christmas.

눈이 소복하게 쌓인 들판은 마치 설국을 연상시키고 그곳에는 오두막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람이라고는 조와 매슈 두 사람뿐. 사람 좋아 보이는 매슈는 조에게 5년 동안 어떻게 자신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수 있냐며 오늘은 크리스마스니 술이나 한 잔 하며 사는 얘기나 나누자고 제안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블랙 미러>의 첫 번째 옴니버스 에피소드다. 세 편의 이야기를 아우르고 있는 이번 에피소드는 과학 기술의 진일보한 발전 안에서 '삶에 대한 편의'와 '인간에 대한 예의'가 항상 같은 방향으로만은 나아갈 수 없음을 진지하고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야기 하나. 공개되지 않을 권리, 보이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세상. 

 이야기 속 매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리스가 맘에 드는 이성과 이어질 수 있도록 그와 시선을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조언을 해주고 있다. 해리스와 대화하는 상대방의 SNS를 염탐해 취미, 성향 따위를 알아냄으로써 해리스가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식이다. 이 세 줄 남짓한 설정만으로도 우리는 이 첫 번째 이야기가 문제 삼고자 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각지대가 전무한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는 공개되지 않을 권리, 보이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SNS가 사회 관계망 서비스로서 기본적으로 열린 공간을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생활 침해, 일거수일투족 감시까지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개인의 모습을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이 무단으로 소비하는 것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매슈 집단은 해리스의 시선을 통해 (해리스에게 호감을 느끼는)제니퍼와의 성관계를 지켜보고자 한다.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반추하게 된다. 매슈 집단은 디지털 시대의 시라노 연애 조작단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관음증 집단이다. 로맨스와 범죄를 헷갈리지 않기를. 이 과정에서 해리스에게도 응당의 책임이 있다. (매슈의 표현에 따르면) '연애 산업'에 수요를 제공한 까닭이다. 더군다나 해리스가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에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매슈 집단이 저지르는 타인의 인격권 침해에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다는 것도 큰 문제로 다가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와 같은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서사적 단죄를 내린다. 환청에 의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꿈꿔오던 제니퍼는 해리스가 매슈 집단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 용기를 내고 그에게 독약을 먹이고 자신 역시 독약을 먹는다. 이와 같은 극단적 서사의 마무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봤을 때, 해리스야말로 정상적으로 사고를 할 수 없는(=윤리적, 도덕적 사고가 불가능한) 사람임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 둘. 내 자아를 복제해 '기가 지니'에 이식하는 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스마텔리전스라는 회사는 고객의 뇌에 '쿠키'라는 장치를 이식해 고객의 사고 패턴을 분석하고 따라 하게 함으로써 고객과 똑같이 사고하는 인공 지능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이 인공 지능 시스템은 고객 자택의 인터넷에 접속해 기상 음악 선정, 바닥 온도 조정 같이 고객이 원하는 것들을 고객이 지시하기도 전에 서비스하도록 사용된다.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까닭은 애당초 이 인공 지능 시스템이 복제된 ‘고객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매슈는 스마텔리전스 직원으로 이 인공 지능 시스템이 고객을 위해 서비스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안내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업무가 존재하는 까닭은 복제된 고객의 인공 지능 시스템이  자신을 꺼내 달라고 소리치거나, 한낱 ‘기가 지니’가 될 수는 없다며 완강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복제된 고객의 인공 지능 시스템은 신체만 없을 뿐 고객의 자아 그 자체다.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매슈가 이 인공 지능 시스템을 굴종시키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의 윤리적 문제제기를 이끌어낸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식 관념론적 전제에 따르면 이 인공 지능 시스템은 존재에 대한 회의적 사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철학의 시발점(제1원칙)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에 준한다. 그러니까 데카르트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존재를 시공간적으로 무한한 공간에 가두고 착취하는 것은 실로 비인격적인 일이다.  

 우리에게는 그러할 권리가 있을까. 내 자아이면서도 그러한 상황에 처하는 게 자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는 SF 장르에서 인간이 신체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 인간을 만들어 수술 후, 폐기해버리는 설정들보다도 훨씬 잔인하게 느껴진다. 이 인공 지능 시스템에게는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 고객은 심지어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미래사회는 그 고객처럼 극도의 편의를 위해 복제된 자아에게 영원이라는 형벌을 내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일까?


이야기 셋. 모든 것을 차단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차단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고찰

 조는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연인 그레타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조는 그녀가 임신한 사실과 출산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알게 된다. 자신에게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개한 조는 그녀에게 폭언과 위협을 가하고 결국, 그레타로부터 차단당하게 된다. 뇌와 연결된 센서를 통해 상대방을 차단 설정하면 상대방의 모습은 뿌옇게 홀로그램 처리되고 목소리는 소거되며 상대방도 자신을 그렇게 인식하게 된다.    

  그레타에 대한 기록물에서조차도 홀로그램 된 이미지밖에 볼 수 없게 된 조의 상황은 첫 번째 이야기 속, 타인들에 의해 이미지와 개인 정보가 침해당한 제니퍼의 상황과 완벽하게 대치된다. 이와 같은 서사의 극적 대치는 침해받지 않을, 보이지 않을 권리가 유명무실해진 디지털 시대에서 권리 구제를 위해서는 이야기 속 차단 설정 같은 극단적인 방법만이 유의미할지도 모른다는 다분히 한 서린 메시지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에서의 완벽한 차단이라는 점에서 이야기 속 차단 시스템은 디지털 성범죄, 인격 살인이 난무하는 현시대에서 너무도 필요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상적인 관계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이 차단 시스템이 너무 쉽게 상대방과의 소통을 포기하도록 부추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인이든 친구든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건 좋은 모습뿐만 아니라 나쁜 모습 역시 기본 옵션으로 받아들이겠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 순간의 귀찮음을 벗어나려,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지 않으려 상대방을 차단하는 건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차단 설정은 '권리의 구제'와 '소통의 부재'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이처럼 딜레마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함구하겠으나 이번 에피소드 역시, 말미에 지극히 '블랙 미러'다운 반전을 선사한다. 세 가지 이야기를 허투루 쓰지 않고 각 이야기의 설정을 고이 보관해 반전에 활용한다.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 느껴져 다소 거칠게 서사가 느껴지기는 했으나 70여분 남짓한 시간에 서사를 풀어내야 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 독창성 메시지가 기특한 에피소드다. 그나저나 이번 에피소드에서 보여줬던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될까?


한 줄 평: 현실의 문제를 끌어다 미래 사회의 기술적, 사회적 관점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메시지를 밀고 나가는 힘이 생각보다 강렬하다.

참신함 & 흥미도: ★★

완결성 & 소구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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