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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Nov 30. 2019

빌어먹게 잘 만든 속편 <빌어먹을 세상 따위>시즌2  

속편을 만들려면 이렇게.

https://brunch.co.kr/@inu-ssw/26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호평을 받았던 첫 번째 작품 이후에 개봉한 두 번째 작품이 완성도, 흥행도에서 지지부진한 성과를 보여주는  현상을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한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 시즌 2는 빌어먹을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 사뿐히 즈려밟고 장장 1년 반을 훌쩍 넘게 기다려온 팬들에게 작품 특유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우울함'을 선사한다. 빌어먹게도 완벽하다.



 

보니의 등장 [사진 출처: 넷플릭스]

 시즌 2는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 가사처럼 시즌 1에서의 방황이 끝나고 난 후의 제임스와 앨리사의 모습을 담는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근황을 제시하기 전에 첫 번째 화를 통째로 사용해 보니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보니는 시즌 1에서 앨리사를 성폭행하려다가 제임스에게 살해된 클라이브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클라이브의 소식을 듣고 두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들을 찾아간다.

 그럼으로써 시즌 2는 제임스, 앨리사 이인 체제로 진행됐던 시즌 1과는 다르게 제임스, 앨리사, 보니라는 삼인 체제로 진행된다. 이 획 하나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시즌 1에서는 마냥 재밌게만 느껴졌던 제임스와 앨리스의 로드무비가 시즌 2에서도 동일한 화법으로 되풀이된다고 했을 때, 반감 없이 재미가 여전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시즌 2는 이처럼 보니의 합류로 화법과 서사에 획 하나씩을 더 추가다.

  예상외의 전개는 보니의 합류만이 아니다. 모종의 사건으로 1년 동안 두 사람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겨우내 재회를 하게 됐음에도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겉돈다는 설정 역시 팬 입장에서는 예상외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앨리사가 제임스 아닌 다른 이와 결혼까지 약속하다니. 시즌과 시즌 사이의 에피소드가 곧바로 이어지는 미국식 시즌제 드라마에 익숙해진 까닭에 이 급격한 변화와 변수가 익숙치는 않았다.


재회는 항상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식, 모습으로 이뤄진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제임스가 아버지에게 비로소 정을 붙이기 시작한 즈음에 그의 아버지가 돌연사했다는 전개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 속에서 세상은 예측할 수 없고 악조건의 상황으로 전개되는 빌어먹을 곳이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는 이와 같이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무력감을 굉장히 잘 세팅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잘 캐치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지만 어느 이야기보다도 현실성을 담보하고 있다.

 제임스, 앨리사, 보니 세 사람의 관계와 상황이 계속해서 엇박이 난다는 설정 역시 연장선상에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언급했듯 제임스와 앨리사는 1년 간 서로를 깊이 그리워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사연과 상처로 그 마음을 진심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누군가 겨우내 용기를 내어 진심을 드러내고자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매번 새로운 사건이 발생해 타이밍을 놓친다. 지켜보는 사람은 속이 터지지만 사실, 이게 현실이기도 하다.

 보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앨리사의 결혼식 전날, 제임스는 1년 만에 앨리사를 찾아오고 앨리사는 결혼식 당일에 제임스의 차를 타고 그와 목적지 없는 여정을 떠난다. 그들의 차에 보니가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세 사람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보니의 목적 역시 계속해서 무산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애초에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유를 묻는다면 세상이란 원래 빌어먹을 곳이기 때문.


세 사람의 기묘한 동행 [사진 출처: 넷플릭스]

 재미있는 사실은 시즌 1, 2 모두 살해의 위협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시즌 1은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믿어온 제임스가 살해 대상으로 앨리사를 점지하면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됐고 시즌 2는 제임스와 앨리사에게 복수를 다짐한 보니가 그들을 살해하기 위해 그들의 차를 얻어 타면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 살해 목적은 모두 무산되고 그 과정에서 뜻밖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는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 역시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세 사람은 한순간도 자신들의 예측대로 이뤄지지 않은 빌어먹을 상황 속에서 과연 어떤 것을 깨달았나. 힘든 일이 많아서인지 요즘 들어 '애당초 이런 걸 바랬던 건 아니었는데'하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한다. 인물들이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은 그와 같은 무력감과 자조적인 신세한탄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가족을 잃고 떠돌게 되는 삶을 바라지 않으며/ 누구도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는 삶을 바라지 않으며/ 누구도 사랑했다고 믿은 사람에게 추악한 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을 바라지 않는다. 누구도 그런 결말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결말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또 받아들여야만 하는 때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다. 받아들이기 싫은데 받아들여서 어찌어찌 살게 만든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 [사진 출처: 넷플릭스]

  가장 강렬했던 씬은 7화의 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니가 제임스와 앨리스에게 총을 겨눈 채로 일련의 사실들(클라이브의 잔혹한 범죄 행각, 앨리사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듣고 이제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냐며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댈 때, 제임스와 앨리사가 안기듯 달려들어 그녀를 제지하는 상황이었다. 보니가 물었을 때 두 사람은 답을 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자살을 저지한 행동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답변임을 알 수 있다.

 삶이라는 건 보니에게 그랬듯 우리에게 인생을 흔들 만큼 빌어먹을 시련을 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일종의 정언명령 같은 것이다. 물론, 누구도 보니에게 어떤 삶을 살라고 답변을 해줄 수는 없다. 제임스와 앨리사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제임스에게 아버지를 잃은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라고, 앨리사에게 트라우마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라고 말해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내야만 한다.

 이 대답은 너무 쉬운 걸까. 시즌 1 리뷰의 끝에서도 나는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시즌 1에서 발견했던 답변은 '빌어먹을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견딜 수 있다'는 류의 내용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결론 비스무리한 것이었다. 여하튼. 그러한 답변 외에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있기나 할까. 소중한 누군가를 만나 견뎌낼 힘을 얻고 그럼으로써 아무리 빌어먹은 상황이라도 살아내지 않을 선택지 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것은 [사진 출처: 넷플릭스]

 마지막 화가 참 여러모로 인상 깊은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복기하고 마무리하는 와중에도 특유의 영국식 블랙 유머를 놓지 않는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내내 들고 다니던 제임스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만났던 장소를 찾아가 유골을 뿌리려 하는데 언제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물이 들어가 있어 뿌리지 못하고 쏟아버리는 씬이 있다. 그 모습을 우리가 흔히들 기대하는 아름다운 광경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삶이라고 하는 것은 정도가 없어서 항상 이렇게 엔딩 직전까지도 우리를 괴롭힌다. 마치, 폼 클렌징 같아서 다 썼다고 생각하는데도 그 상태로 최소 2주는 더 쓸 수 있다. 왜냐고?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나. 세상은 빌어먹을 곳이기 때문이라고. 그래도 엔딩은 아름다워서 다행이다. 엔딩 씬에서 제임스와 마주 앉은 앨리사는 중요하게 할 말이 있는데 그럴 때는 얼굴을 보지 않는 편이 좋다며 그의 옆에 앉는다.

 이 씬은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라는 생텍쥐베리의 격언을 떠오르게 한다. 이제는 두 사람이 삶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조금은 더 성숙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뭐 그런다고 삶이 빌어먹을 곳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나저나 엔딩이 여지 없이 너무 평화롭게 끝나버려서 다음 시즌 제작을 예측해보기가 어렵다. (그래도 기다릴 테니까 제발 좀 제작해주세요...)


*<빌어먹을 세상 따위> 시즌 2 리뷰 재밌게 잘 읽으셨나요? 우울한 감성의 영국 블랙 코미디 혹은 성장 드라마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시면 더 좋은 작품과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하루라도 빌어 먹을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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