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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Feb 25. 2020

2020년. <작은 아씨들>이 갖는 의미

<레이디 버드>에 이은 그레타 거윅 감독의 반가운 신보

 그레타 거윅은 배우로서도 참 훌륭한 배우지만 감독으로서도 참 훌륭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레타 거윅이 메가폰을 잡은 두 번째 작품 <작은 아씨들>은 첫 번째 작품 <레이디 버드>의 작품성이 단순히 '초심자의 행운' 덕택이 아니었음을 당당하게 증명한다. 그레타 거윅은 사회문화적으로 차별 받아온 여성들의 삶을 예의와 애정을 갖춰 다룬다. 그와 같은 주제의식은 서사적 완결성 외에도 영상, 음향 등의 요소가 수려하게 제 역할을 해냄으로써 더더욱 빛을 발한다. 


인물들은 각각의 서사로 그 시대 여성의 삶을 표출해낸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영화는 루이자 메이가 1868년도에 발표한 원작에 서사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 <작은 아씨들>은 여성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차별이 당연시됐던 19세기의 미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그 안에서 네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그와 같은 차별에 직면해왔는지 다룬다. 배우를 꿈꿨으나 가난한 가정교사와 사랑에 빠져 육아와 가난에 시름하게 되는 첫째 '메그'/ 강력하게 비혼 의지를 밝히며 작가를 꿈꿨으나 생계를 위해 남성중심적인 소설만을 쓰게 되는 둘째 '조'/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으나 가난으로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셋째 '베스'/ 화가를 꿈꾸며 재력가와 결혼하고자 사교계에 진출했던 넷째 '에이미'의 이야기는 순응, 저항, 인내, 체념의 형태로 당시의 사회를 버텨왔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네 자매의 삶을 통해 확고한 주제의식을 발화하면서도 인물 각각의 정서와 인물 간의 강렬하거나 때로는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에이미가 조에 대해 갖는 시기의 감정, 조가 메그에 대해 갖는 안타까움의 감정 따위 등이 계속해서 포착된다. 그러나 그 감정들은 종래에는 그들이 사는 시대상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에서 주제의식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은 조의 말마따나 '여성에게도 감정만이 아니라 이성적 사고와 야망과 재능, 목표가 있다는 사실'을 위한 그 자체로 작은 헌신 혹은 지대한 투쟁인 셈이다. 이야기가 줄곧 조의 시점을 따라간다는 설정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아내'가 될 것을 종용하는 사회 구조에 저항하는 조가 겪는 일련의 불화들은 당시의 부조리함을 강조하는 근거가 된다.

 

조의 시선을 통해 영화의 주제의식은 더욱 명징해진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사랑을 원치 않았던 조가 영화의 종결에 이르러서 자신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음을 깨닫는 씬이 있다. 중요한 건 조의 그러한 생각이 결혼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사랑의 결실이 꼭 결혼일 필요는 없음을, 그리하여 결혼만이 여성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님을 결말을 통해 재치있게 공표한다. 조는 결국 이전에 뉴욕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당시 만나게 된 프리드리히 교수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을 결심하지는 않는다. 이후, 조는 자신과 자신의 자매들이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작은 아씨들'을 집필하는데 출판사장은 그녀가 결말을 그녀와 프리드리히의 결혼으로 끝맺기를 희망한다. 당장에 돈이 필요했던 조는 그 의견을 수락하지만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 과정을 소상히 담아냄으로써 원작이 어째서 그와 같은 결말을 맺게 됐는지, 원작자가 맺고자 했던 결말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관객 스스로가 생각해내도록 유추해낸다.

 원작인 작은 아씨들은 가깝게는 1994년에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에 의해, 멀게는 1933년 조지 큐커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됐던 작품으로 그간에 드라마, 만화 등의 형식으로 숱하게 제작된 작품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은 그럼에도 리메이크될 가치와 이유가 충분하다고 평하기에 족하다. 주제의식과 서사가 시대적으로 갖는 의미부터 시작해서 영상, 음향 등의 부분에서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 배우 부분도 주목할만한데 이제는 확실하게 그레타 거윅 사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얼샤 로넌'과 '티모시 살라메'부터 시작해서 '엠마 왓슨', '로라 던', '메릴 스트립'에 이르는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아무쪼록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또 기억하게 하는 작품으로서 그레타 거윅의 다음 행보가 더더욱 기대 되도록 만드는 작품.


*오랜 만에 찾아 뵙습니다. <작은 아씨들> 칼럼 따듯하게 읽으셨나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네요. '좋아요'와 '구독' 눌러주시면 더 좋은 작품과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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