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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Dec 31. 2019

독자분들께 바치는  2019년 영화 결산

Movie Street가 사랑한 2019년의 영화들

 독자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영화평론가 Movie Street입니다. 2019년 한 해가 올해 가장 추운 기온 속에서 이렇게 저물어가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분들의 2019년은 충분히 따듯했기를, 그리고 다가올 2020년은 조금 더 따듯하기를 바랍니다. 2019년도 좋은 영화가 가득했던 한 해였습니다. 그래서 2019년 한 해가 가기 전에 제가 사랑했던 2019년의 영화를 독자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항상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Happy New Year.  




기생충 포스터 [사진출처: 다음 영화]


기생충(2019.05.30)


"상승과 하강의 관계 속에서 문득, 본인의 위치를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019년 한 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생충>만큼 많이 언급된 작품이 있을까. <기생충>은 기우(최우식 扮)가 말하듯 '굉장히 상징적'이다. 봉준호 감독은 연출, 대사, 소품, 로케이션 등 영화의 모든 영역에 상징성을 침투시킨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류층으로 위시되는 기택(송강호 扮)의 가족은 상류층으로 위시되는 동익(이선균 扮)의 가족에게 기생해서 삶을 영위하고 눈에 띄지 말아야 하는 기생충처럼 묘사된다.

 <기생충>에서 진행되는 모든 이야기는 이처럼 상징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상징적이라고 할지라고 그 상징성이 둘러싸고 있는 기본 골격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 발 딛고 살아가는 엄연한 현실이다. 관객은 체감할 수밖에 없다. 기택의 가족이 동익의 동네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걸어갈 때 그리고 기택의 가족이 자신의 동네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걸어갈 때 지금 이 순간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자신은 어느 위치에 있는 가를.

 봉준호 감독의 비판의식은 바로 그러한 지점부터 시작된다. 봉준호 감독은 개인의 노력은 안중에도 없는 듯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계급의 문제와 그런 계급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인간 소외의 과정을 기택 가족의 수난사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후반 부분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은 봉준호 감독의 비판의식의 정점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과 상승, 하강 관계의 활용 때문이었는지 <조커>를 볼 때 <기생충>의 잔상이 희미하게 남는다.  


애드 아스트라 포스터 [사진 출처: 다음영화]


애드 아스트라(2019.09.19)


"<그래비티>, <인터스텔라>를 포함하는 '완벽한 우주 3부작'의 탄생"


 <애드 아스트라>로 말미암아 <그래비티>, <인터스텔라>를 포함하는 '완벽한 우주 3부작'이 완성됐다고 단언할 수 있다. 미지와 공허의 시공간으로 표상되는 우주는 인간에게 있어 동경과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서 우주를 대상으로 한 영화는 언제나 새롭다. 우리는 그 무(無)의 시공간에서 어떠한 유(有)의 사건과 감정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 <애드 아스트라>는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마주 보게 한다.

 '나는 완전한 존재인가?'라고 되물었을 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결함을 안고 산다. 우주비행사인 주인공 로이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로부터 비롯된 편집증적인 '임무 최우선주의'를 갖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도 그를 떠나버린 지 오래. 그래서 그의 삶은 공허하다. 이 공허한 마음을 가진 인물이 공허한 공간을 찾아간다.

 탐사가 진행될수록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 우리가 믿어왔던 것들이 일순간에 무너졌을 때 혹은 그토록 원망하고 회피했던 인물의 행동을 답습하게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애드 아스트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갈 용기'를 종용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탐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귀환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건 오로지 당신만이 알 것이다.


조커 포스터 [사진 출처: 다음영화]


조커(2019.10.02)


"'why so serious?' 이전의 조커의 이야기. 'who is the joker?'"


 DC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이후 7년 만에 드디어 일을 냈다. <조커>는 R등급에도 불구하고 500만 관객이라는 막강한 화력을 보여줬다. 마블은 유쾌할수록 재밌어지고 DC는 암울해질수록 재밌어진다는 정설은 이로써 한 번 더 신빙성을 얻는다. 이처럼 <조커>의 암울함은 인간과 사회의 심연을 깊숙하게 관통함으로써 "why so serious?" 이전의 조커 즉, 그의 기원을 다룬다. who is the joker?

 단도직입적인 질문. 조커를 만든 것은 사회인가, 본성인가. 토드 필립스 감독은 영화의 끝에 사회의 책임이 다분했던 모든 씬에 조커의 망상(착각)이 혼재돼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그와 같은 양비론적 관점을 무력화시킨다. 조커가 사회로부터 방치된 약자라는 점도 조커가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살인자라는 점도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토드 필립스 감독은 두 사실이 서로를 상쇄시켜줄 수 없는 관계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분리된 사실로서 이토록 가련하고 이토록 잔혹한 빌런을 본 적이 없다. 그저 이 모든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볼 뿐이다. 아울러 호아킨 피닉스라는 탁월한 배우의 열연은 조커라는 인물의 내적, 외적 명암을 관객들이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히스 레저의 조커가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그 탁월함을 인정받아 마땅하다.    


경계선 포스터 [사진 출처: 다음영화]


경계선(2019.10.24)


"인간 세계를 규정하는 경계선의 허상을 고발하는 어른들의 동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기괴했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처연했던 작품.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그로테스크한 동화 같다. 그리고 그 동화는 어떤 이야기보다도 설웁다. <경계선>은 다수와 소수,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경계선을 젠가 게임을 시작할 때처럼 공고하게 쌓아 올리고는 경계선의 허점을 한 조각씩 빼버림으로써 종래에는 경계선 자체를 허물어버린다. 이 영화의 본질은 이와 같은 '허물어뜨림'에 있다.

 <경계선>에서 경계선은 허울 좋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선량한 시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집 안에서 가장 악랄한 범죄가 자행돼왔고, 공존이라 생각했던 관계들이 사실은 착취의 한 방식이었음이 낱낱이 드러난다. 후각으로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주인공 '티나'에 대한 설정은 그러한 전복의 과정을 세밀하게 뒷받침한다. 경계선 뒤에서 자행되는 인간들의 악행은 너무 내밀하고 비정해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경계선>은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 세계를 규정하는 경계선이라는 것 사실은 얼마나 유약한가. 이 영화는 우리가 암암리에 나와 타자를 가로짓는 경계선을 설정해온 것에 대한 반성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평생을 경계선 속에서 기만당한 채 살아왔던 티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내려지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면 엔딩 크레딧을 지켜보고 난 뒤의 우리의 삶은 이제 어떠해야 하는가.


나이브스 아웃 포스터 [사진 출처: 다음영화]


나이브스 아웃(2019.12.04)


"적절했고 재기 발랄했으며 안정적이었던 웰메이드 정통 추리극"


 2019년 단 하나의 추리극을 선정해야 한다면 단연코 <나이브스 아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정통 추리 소설의 대가 에거서 크리스트의 작품을 현대식으로 변주화한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탄탄하고 클래식한 웰 메이드 추리극이다. 그러나 <나이브스 아웃>의 의의는 이와 같은 기술적인 차원에서의 추리를 너끈히 연출한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유명 추리작가의 죽음의 원인에 대한 추리를 하고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들 사이에서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재현해냄으로써 사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추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관객에게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명한 영감을 준다. 그 영감은 타자에 대한 배려와 용서라는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한다.

 아울러 라이언 존슨 감독은 영화 속에서 추리가 계속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미국 사회를 둘러싼 이민, 계급(경제) 이슈들을 적절하게 대입함으로써 기득권이 해당 이슈를 바라보는 관점을 재현시키고 그들의 관점을 마땅히 비판한다. 욕심을 부린 티가 여실히 나지만 그 욕심이 과하지는 않았다. 적절했고 재기 발랄했으며 안정적이었던 작품. 출연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캐스팅을 수락했다는 소문이 한 번에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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