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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Jul 07. 2021

분명 살아있는데 신분증이 없다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이야기

은유 작가의 전작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발간되었을 때 나는 오래 망설이다 책을 펼쳤다.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을 대면하는 일이 (고작 독서인데도) 쉽지가 않았다. 고민하다 책장을 열었고, 완독 한 뒤 후회했다. 진작 읽을 걸. 몇 줄짜리 단신 사망기사로 납작하게 접하던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한 기분이었다. 늦게 슬퍼 미안했다.


그녀의 신작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곧바로 책을 집어 들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그랬던 것처럼, <있지만 없는 아이들> 역시 내가 모르던, 알아도 관심 두지 않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


한두 번 들어본 기억은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흔히들 말하는 '불법체류자'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 역시 존재를 지우고 살게 된다고. 이들이 미등록 이주아동들이었다. 책 제목인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보다 더 들어맞는 표현은 없다. 이들은 버젓이 존재하지만 존재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신분증도, 통장도 가질 수 없다.


그렇기에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약자 뒤에 가려진 이중의 약자”다. “견디는 존재들의 이야기에 기대어 견디고 살아온”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세상에 꺼내놓았다.


맞다. 미등록 이주아동 뿐일까. 모든 소수자들이 쓰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그냥 사람이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수차례 탄식했는데 슬퍼서가 아니라 이들의 말이 비범해서였다. 특히 이주아동 민혁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수많은 고비를 넘기고 난민 지위를 인정받던 순간을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관계자분들이 박수를 쳐주면서 저보고 앞으로 열심히 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는 살짝 욱했어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열심히 살라는 말을 해요?”


민혁은 한국에 합법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난민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유엔에서 사실 확인 증명서를 받아 법정에 제출했고, 2심에서 뒤집힌 결과를 바꾸기 위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민혁의 주변인은 국민청원을 하고 기사를 내고 방송국 카메라 촬영에 응하고 피켓 시위를 했다. 하지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순간조차도 ‘(이제) 열심히 살라’는 시혜적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게 이주노동자와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다수의 시선 아닐까. 나라고 다를까. 이 대목에서 밑줄을 친 뒤 한동안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이주아동 페버는 “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단다. “그럼 왜 당신은 한국에 살고 계시나요? 똑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사는 거죠.”


페버와 민혁의 말들이 유독 인상 깊었던 건 긴 시간 자신의 존재를 고민해온 사람이 할 수 있는 말들이라서였다. 이들은 분노하고 행동하고 쟁취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책 속 민혁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제가 누군가를 믿어줄 때 그 사람이 또다른 누군가를 또 믿고 반기면 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배척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 간명한 진실이 담긴, 그러면서도 따뜻한 말이다.


페버가 남이 하는 이야기를 절대 흘려듣지 않는 이유


저자는 우리가 “타인의 슬픔에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자주 슬퍼하며 썼을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으며 나는 자주 슬프고 어지러웠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의 슬픔이 아이들만의 것이 아닐 때, 저자만의 것이 아닐 때,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슬픔을 공유할 때 비로소 희망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그때를 위해 기꺼이 함께 슬퍼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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