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들이 있다. 자신의 엄마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아주 무거운 이야기는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지 않는다.
설령 본인이 그 사실이 아무렇지 않아 진 정도로 괜찮다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으로 고민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척을 하기에 너무 무거운 이야기이며, 안타까움과 슬픔을 온전히 드러내기에도 너무 무거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엄마가 세상에 없는 친구에게 어른들이 뒤에서 "저렇게 차가운 건 이유가 있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엄마가 없는 사람과 연애하기는 쫌 그렇다는, 날것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었을 때 나는 꽤 강한 불합리함을 느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불편함을 느꼈다. 내 친구를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차가움과 바로 연결시키는 그 편견이 가시같이 마음을 찔렀다.
내 주변에는 정말 섬세하고 따뜻한 친구들이 있다. 아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서는 정말로 놀랐다. 이들은 눈치도 빠르고, 조급해하지도 않았으며, 담담했고 차분하고 따뜻하고 이해심이 깊었다. 엄마에게 의지하고 의존을 많이 하는 나는 너무나 감정이입을 하는 바람에 울 뻔하기도 했지만, 엄마와의 추억을 웃으며 얘기하는 친구를 보면서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만약 그 자리에서 내가 울기라도 했다면 오히려 친구에게는 선을 넘은 동정심처럼 느껴져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이유로 사람을 거르는 것은 참 마음 아픈 일이다. 엄마가 여기 함께 없다는 것에 절망하지 않고, 그 슬픔에 너무 깊게 빠져들지 않고 삶을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는 따뜻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오히려 대단하게 보아야 마땅하다. 엄마가 지금 옆에 없다는 그 사실보다는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 또 차갑다, 방어적인 이유가 꼭 엄마라는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엄마가 없는 사람이란 없다. 엄마는 있지만 지금 밟고 있는 이 세상에, 이 땅에 엄마가 함께 하지 않고 있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