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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Jul 02. 2021

덤덤하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법

"내려놓음" 어떻게 하는 거예요?

임신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아이가 잘 생길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 임신 테스터기에 두줄이 뜨길 기다리는 것, 그리고 병원에 가서 아기집을 확인하고 심장 뛰는 소리를 확인하는 것 까지 2달이 넘게 걸린다. 특히 임신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일련의 과정을 물 흐르듯 경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한 단계 한 단계가 넘어야 할 큰 산으로 다가오니까. 코끼리처럼 임신 기간이 2년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날은 시험관 6일째 되던 날이었다. 여자의 촉이라는 것이 무섭다. 괜히 기분이 좋아 평소보다 일찍 검사를 해봤는데 오! 선명한 두줄을 보았다. 보통 시험관 시술 이후에는 임신 테스트기를 뭉텅이로 구입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시술 후 열흘 정도 있다가 확인해보면 결과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변 테스트 후 두줄이 나오면 임신, 한 줄이면 비임신. 결과를 기다리는 3분의 시간은 3시간처럼 느껴지는 마법. 그런데 두 줄이라니!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시간이 오나 싶어 쿵쾅 쿵쾅대는 마음을 겨우 붙잡았다. 매일 아침 그 작은 테스터기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임신일까 아닐까 궁금해했던 시간. 우리에게도 드디어 아기 천사가 올 모양인가. 이제는 안심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행복한 상상도 잠시, 기대와는 달리 점점 진해져야 할 붉은 선은 옅어지기만 한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며칠 후 병원에서 피검사를 해보니 임신이라고 하기엔 낮은 수치였고 잔뜩 부푼 희망을 접어야만 했다. 의사 선생님은 수치가 애매할 때 절대로 단언하지 않으신다.


"임신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혹시나 싶을 때 말은 아낄수록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시는 듯했다. 그래서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 먹던 약도 계속 먹으라고 하셨다. 아닌 걸 알면서도 챙겨야 하는 약. 일말의 기대에 스스로 약을 끊기도 어려워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따르는 기간이 이어진다. 피검사 수치가 0으로 떨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모든 과정이 끝난 것 같아 안도했다. 적어도 자궁외 임신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할 위험이 없고 다시 임신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도 감사해야 하는 일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난임 기간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서두르기를 싫어하고 말조차 느릿느릿한 느긋한 성격도 반복되는 실패 앞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기다리는 것이 편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순간순간 느끼는 수없는 감정 기복에 자꾸만 멀미가 났다. 테스터기 결과에 울고 웃고, 피검사 수치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기도 하는 불안한 이 시간. 의지와는 상관없이 휘리릭 흘러가버릴 일이니 꾹 참고 버텨봐야지 하다가도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자책으로 마무리하며 마음속으로 화를 삭였다.


어떤 사람은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예기치 않게 아기와 마주하게 된다. 기대하거나 준비하고 만난 건 아니지만 그런 경우도 큰 축복처럼 보였다. 각자의 고충은 있겠으나 불평하는 그들도 부러웠다. 어릴 때는 나도 아기를 참 좋아했다. 만두를 양볼에 앙 물고 있는 오동통한 그 모습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안아주고 싶은 마음에 자꾸 관심을 끌어보려고 애쓰던 나. 난임 기간이 길어지는 듯한 순간부터 아이가 좋은지 싫은지 생각할 여력도 없이 아이를 보면 부담이 됐다. 지인의 아이를 열심히 귀여워해 주고 조카들도 너무너무 예쁘지만 마음 한편 왜 나는 아직?이라는 의문이 불쑥불쑥 솟아났기에.


조급한 마음과 못난 생각이 짬뽕되어 멀미가 나던 차에 일을 하다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회사 안에 있는 상담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내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자주 물으셨다.


"그래서 그때는 어떻게 느끼셨나요? "

"......"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서 때로 침묵으로 대답하게 되는 일도 있었지만 조금씩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금세 지나있었다. 첫 시간에는 울기만 했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울 만큼 울고 화내기를 반복했다. 몸은 회사에 있지만 마음은 멀리 떠나 있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지만 말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들켜 버렸다. 두 번째 시간에는 마지막까지 취소할까 말까 고민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스스로 찾아간 곳이지만 상담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까 의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다 예약 취소 가능 시간이 지나버린 탓에 다시 한번 가게 되었다. 딱히 어려움을 해결할 다른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도 분명 있으리라. 선생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내 이야기를 듣는 것에 할애하셨는데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펜으로 바쁘게 무엇인가를 적으셨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해설을 듣지 못했지만 말로 위로를 받진 않았지만, 그 공간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세 번째 시간에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덤덤하게 하고 있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문득 이제는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회사 안에 있는 공간이라 더 이상 민폐가 되는 것도 싫어서 괜찮아졌다고 이제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특별한 처방도 없었지만,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진작 어디 털어놓을 걸.


난임을 겪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것 중 하나가 "내려놓아야 생긴다"는 절대로 해내기 어려운 숙제 같은 말이다. 아이들을 무사히 출산하고 그 말의 뜻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됐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한 문장. 그래도 더 쉬운 말을 생각해보면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노력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의지와 다르게 점점 멀어져 가는 임신.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쏟는 정성이 커져갈수록 집착은 더 생겼는데. 억지로 떨쳐 내야 한다니!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하지만 요동치는 감정 속에 살면서 덤덤함을 이어 갈 수 있는 키임에 분명하다.


집착은 아주 끈끈해서 한 번에 떼어내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삐뚤어진 마음은 상당히 좋아졌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가에 대한 원망은 영 도움이 되지 않았고 모르겠네 하고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난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치료를 부끄러워하지 않기까지 아주 많은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속되는 호르몬 치료로 롤러코스터를 탄 양 마음이 흔들렸고, 늘 불행하다고 느꼈던 탓에 꽤나 괜찮아진 마음의 상태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초라하게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남들보다 길어졌지만 그만큼 그 기다림을 통해 엄마로서의 마음가짐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다짐했다. 힘들었던 기억을 한 자 한 자 꾹꾹 써두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육아로 마음이 고달플 때 캔디처럼 하나씩 꺼내 다시 읽어보자. 감사한 마음으로 육아를 해야 하는 이유가 다시 생각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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