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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Jun 18. 2021

직장인의 시험관

눈치가 보이지만 어쩔 수 없어

결혼 후에 신입 사원이 되었다. 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혼할 때 다들 내 취업을 걱정해주었으니.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으레 놀라는 것을 보니 실제로 특이한 일이었나 보다. 남편의 존재를 알고 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혹시 아기도 있어요?"


사람들은 아기가 있는지 늘 궁금해했다. 첫 질문이 남편의 유무, 아이의 유무, 어디에 사는지 이 세 가지였는데 외국에서 반평생을 살고 돌아온 나에게 참 이상한 대화 소재였다. 하도 자주 들어서 통상적인 대화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임신을 기다리면서 아기가 있느냐는 말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데 잘 생기지 않아 속상한 마음에 아무런 의도 없는 지나가는 안부가 참견으로 느껴졌고, 유산 후에 그런 질문을 받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간신히 참아내기를 반복했다. 처음 만난 사람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들도 꼭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아야 키울 수 있다나.





몇 년 전인지 조차 기억도 안나는 꽤 오래전 시간.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있었는데, 해외로 가신 전 상사가 오랜만에 보시더니 물으신다.


"홍, 애는?"


이건 만날 때마다 당하는 질문. 그것도 그럴 것이 선배들이 하나 둘 순서대로 출산 휴가를 떠났고, 나는 늘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나와는 달리 가까운 회사 사람들은 임신이 어렵지 않아 보였다. 임신의 기운은 내 뒷자리로 다 몰려 가는 것인가. 참 신기하게도 내 뒷자리에 앉은 선배들은 하나 둘 임신을 했고, 출산 휴가를 떠났다. 떠난 후 텅 빈 책상을 보며 부러워했고 존재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임신의 기운을 받으려 손을 꼭 잡기도 했다. 회사에서 임산부에게 핑크색 사원증 줄조차 탐이 났다. 임신 초기의 단축 근무로 이른 시간에 유유히 퇴근하는 선배들이 얼마나 여유로워 보였는지! 입덧하는 시기엔 짧은 근무 조차 힘들다는 것을 한참 뒤인 임신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땐 그렇게 느꼈다. 발 넓고 사람 좋았던 그분은 계속 물으셨다.


"내가 진짜 유명한 선생님 소개해줄까? 난임이 왜 난임인지 알아? 요즘은 불임이라고 안 부른데 임신이 어려우니까 그냥 난임. "


어려우면 또 노력하면 되는 거라고 하셨던 아저씨의 말. 극도로 예민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분이 밉지 않았고 본인도 아이를 어렵게 가졌다는 얘기를 얼핏 전해 들은 터라 걱정해주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때 알려주신 의사 선생님의 성함도 어딘가에 적어놨었는데 부담스러운 마음에 실제로는 가보지도 못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해가 지날수록 조급해져서 어쩔 수 없었다. 주중에는 얼굴 보기 힘든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빨리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 이 단계까지는 오지 않길 그렇게 바랬었는데! 난임 시술은 미리 날짜를 알고 계획하기가 어려워 직장인으로서는 험난한 과정이다. 보통 첫 시작은 난자 채취. 한 달에 한번 여러 난자 중 딱 하나만 임신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반면, 시술에서는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난자를 한꺼번에 키우고 채취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시술의 각 단계에 도달하는 시간이 있겠지만 사람마다 컨디션마다 날씨마다 많은 변수가 있기에 병원에서 오라는 날에 가야 한다. 간다고 해도 무조건 그날 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종종 다음 날 한 번 더 가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해서 시간이 자유롭지 않은 회사원은 바로 그게 어렵다. 대기하다 오라면 오는 것. 회사에서는 팀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으니 휴가든 외출이든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어서 자연스럽게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시술 중에는 늘 몸 한 구석이 불편했다. 원래 한 달에 하나 나올 난자를 여러 개 생기도록 해서 그런가? 아랫배는 이상하게 빵빵했다. 그 과정에는 자가 주사, 즉 스스로 주사를 놓는 일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화장실에서 처리하곤 했다. 처음에는 섬뜻했던 주사도 점점 무뎌졌다. 과배란을 위한 주사는 주사 바늘이 조금 가늘어 그다지 아프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두둑한 뱃살도 다행이었다. 왠지 쿠션이 되어 덜 아픈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서. 사실 고통 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혼자 주사를 놔야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기에. 이렇게 까지 하면서 아이를 가져야 하나 자문했다. 어떤 약은 냉장 보관을 해야 했기에 탕비실에 들러 화장실로 갔는데 하이힐을 신으면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아 낮은 로퍼를 신었다. 약을 먹든 주사를 놓든 시간을 잘 맞춰야 하지만 일하다 보면 그것도 쉽지 않았다.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시간을 잘 지키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법. 시술 준비 과정에서 복수가 차기도 했다. 난자 채취 이후에 배가 빵빵해졌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바로 누워 자지 못하고 비스듬히 소파에 옆으로 몸을 기댄 채 어렵게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병원에 들러 링거를 맞고 출근했다.





시험관 시술을 하는 직장인은 마치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과 다를 바 없다. 스스로와의 싸움이라고도 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주위의 기대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노력만큼 쉽사리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어 괴로웠다. 임신이 합격이고 성공이라면 나는 오랜 시간 실패와 함께 한셈이다. 재수, 삼수.... N 수는 해본 적이 없지만 아이를 갖고 출산하기까지 여러 번의 시도를 거쳤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기간 탓에 아이를 갖고자 노력하는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같았다. 누군가에게 쫓겨서 힘을 다해 뛰어가는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 느낌. 언제 빛을 만날지 모르는 긴 터널 속 여정처럼. 시험관 시술을 시작한 순간부터 늘 걱정을 안고 살았다. 회사에 가도 병원에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고민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허공에 외치는 소리 같았다.


"이 행복에는 깊은 구김살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임신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서로 깊이 사랑하고 강고한 직업윤리를 무슨 일이든 작정하면 헌신적으로 해내는 두 사람이라도, 임신만큼은 의지로 해낼 수 없다. 임신은 정복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좀 신경질 나게도, 임신에서는 노력과 보상이 꼭 비례한다는 법이 없다."

-미셀 오바마, 비커밍 중-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유명인 또한 임신만큼은 노력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 않는 가. 머리로는 알지만 나에게 실제로 그렇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속상했다. 평범하게 맞벌이로 열심히 살고 있는 부부에게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한다는 것은 가혹했다. 회사 생활에 몰두하며 인정받고 노력을 보상받으며 사회생활에 만족도 느끼던 터라 눈치 보며 회사를 다니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난임 시술과 회사생활을 함께 하는 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신호인 건가? 의지로 되는 일이 없어서 늘 답답했고 때로 분노했다. 그래도 둘 다 놓치기는 싫었다. 다른 길은 없었다. 또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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