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얼마나 애타는 일인지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거다. 한두 달 기다리다가 몇 달이 되고 예기치 않게 몇 년으로 흘러가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영화의 주인공이 된 양 가슴 시리고 마음 아픈 탓에 눈물을 펑펑 쏟는 일이 일상이 된다.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고 또 노력해야 아이가 올까? 어느 순간 깨닫는다. 임신은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해도 안될 것 같아서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문도 두드려야 열린다고 했던가. 간절한 사람은 무엇이라도 한다.
아이를 갖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늘 최선을 다할 수는 없었지만, 노력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지나고 보니 그렇게 애를 쓴 것이 우리 아기들이 태어나는데 분명 일조했다. 어떤 일이든 하루에 한 가지는 우리에게 올 아이를 위한 일이었고 그때 적어두었던 작은 조각조각의 글이 육아를 하며 지치는 이 순간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어려운 순간마다 나를 다잡아 주곤 했다. 아이를 기다리는 방법. 병원, 한의원 등의 의료 영역은 제외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맛있고 건강한 음식 잘 챙겨 먹기
가장 자주 먹었던 음식은 세 가지. 특히 착상 시기에 먹으면 좋다는 음식으로 골라 먹었다. 아보카도 스무디와 추어탕과 소고기! 아보카도는 임신에 필수적인 엽산이 풍부하고 항산화제 역할을 하는 비타민C, 뼈 건강에 필수 적인 비타민 D, 콜레스테롤 조절을 돕는 오메가 3까지 들어있다. 우연히 회사 앞 카페에서 아보카도와 우유를 갈아주는 스무디를 사봤다. 처음에는 무슨 맛이지? 생소한 맛이었고, 매우 무거워서 마시기 어렵다고 느꼈는데, 어떤 간식을 먹는 것보다 속이 편안하게 든든했다. 그래서 아침 식사 대용으로나 오후 간식으로 자주 마셨다.
추어탕이 손발이 차가운 나에게 특별히 잘 맞다고 생각한 보양식이었는데, 뚝배기 한 그릇을 해치우고 나면 온 몸이 후끈후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추어탕에는 비타민 E가 풍부하다고 한다. 비타민E의 또 다른 이름은 '토코페롤', 토코페롤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후손(Tocos) 일만큼 생식 기능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조선 시대의 최고 착상식이라는 이야기도 있어 더욱 솔깃했다.
소고기에 들어있는 비타민 B12는 엽산과 작용해서 악성 빈혈을 예방한다. 효능이 어떻건 소고기는 소고기 아닌가. 잘 구운 소고기 한 점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것. 맛있는 것을 먹으면 행복해지고 그럼 안 풀리던 일도 술술 풀린다. 술은 거의 먹지 않았고,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 있는 탓에 커피도 조심했다. 대신 카페인이 없는 루이보스티를 자주 마셨다.
2. 임신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 챙기기
임신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남편과 함께 영양제를 잘 챙겨 먹는 루틴도 중요하다. 산전 검사 결과를 살펴보니 비타민 D가 부족한 것으로 나와서 약을 챙겨 먹었는데, 요즘에는 주사를 맞으면 3개월에서 6개월까지도 효과가 지속된다고 하니 참 편리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엽산이 몸에 잘 흡수되지 않아 고용량 엽산을 챙겨 먹기도 했다. 시중에 임신을 위한 종합 비타민도 많이 판다. 우리 부부는 오쏘몰(Orthomol) 제품을 복용했는데, 여성 임신 출산 용으로 Natal 라인이 나오고, 신랑은 남자용인 Fertile과 M 제품을 먹었다.
3. 족욕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기
여름에 긴팔을 입어도 될 만큼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다. 수족냉증이 있으니 몸을 따뜻하게 하도록 애를 썼다. 가장 효과를 봤던 것은 족욕기였다. 처음에는 따뜻한 물로 반신욕도 자주 했었는데, 목욕은 배아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직장 다니면서 자주 할 짬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건식 족욕기를 샀고 추운 날에는 귀가하자마자 티비를 틀고 기기를 켰다. 소파에 앉아 따뜻한 구덩이에 발을 넣고 귀여운 담요를 무릎에 덮고 보는 티비는 바쁜 일상에서 나만의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몸이 따뜻한 게 정말 중요한가 보다. 일주일 만에 몸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활기가 돌았고 힘이 났다. 특히 겨울철에 더 효과가 좋은 것 같은데, 진작 할걸 그랬다. 임신 후에는 기초체온이 마구마구 올라서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다.
4. 글 쓰기로 마음 관리 하기
우연히 회사 게시판에서 글쓰기 치료 워크숍 공지를 봤다. 임신뿐 아니라, 회사 생활에 있어서도 고민과 갈등이 있던 시기라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지만 늘 야근을 했기에 평일 저녁에 하는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장소도 회사에서 아주 멀었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글 쓰기로 마음 관리를 한다는 콘셉트를 접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날 브런치에 가입했다. 이후 화가 날 때나 우울할 때 브런치에 일기를 써서 저장했다. 글을 쓰다 보면 제삼자 입장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고, 상황을 부정하기보다 나의 현재를 받아들일 수 있어서 조금이나마 안정감이 생겼다. 처음에는 "괜찮아 시리즈"로 글을 썼다. 친구가 먼저여도 괜찮아. 취향이 달라도 괜찮아.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아. 그렇게 글을 쓰면서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였다.
난임 기간 동안 참 예민했다. 생각 없이 지나쳐가는 타인의 말도 가시처럼 느껴졌다. 감정 컨트롤이 어려워지면서 스스로 봐도 못나 보이는 탓에 자신감이 점점 떨어졌다. 마음뿐 아니라 몸도 그랬다. 난임 치료를 받으면서 한 달에 반이상 호르몬제를 먹었더니 감정이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임신과 관계없이 난소가 부어 배는 점점 나오고 살도 쪘다. 열심히 운동할 자신도 없지만, 혹시나 임신을 했을까 봐 운동도 조심스러웠다. 글쓰기는 나에게 가장 좋은 치료제였다. 혼자 내 공간에 쓰는 만큼 필터링도 필요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난 지금 그때 써둔 글을 꺼내 다시 정리한다. 정제할 게 참 많은 글인데 그런 뒤죽박죽 어설픈 글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5.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기
한동안 만남을 자제하기도 했지만 우울한 순간에 집에 혼자 있으면 돌파구를 찾기가 더 힘들다. 물론 남편과 함께 얘기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야근과 출장이 잦을 때라 어려웠고 남편도 난임을 함께 겪는 상황이므로 때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집 밖으로 나가서 친구 만나기! 이것 만큼 힐링되는 것도 없었다. 근사한 카페, 식당에 가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분위기에 함께 즐거워지는 듯했다.
마음이 아플 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달려와서 위로해주는 어린 시절의 친구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 상태가 심각한 것 같은 날이면 그녀는 꼭 만나자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커피를, 나는 커피 대신 따뜻한 꿀 자몽티 한잔 시켜두고 시시한 옛 얘기를 또 했고, 대화 주제는 늘 반복인데 그래도 좋았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한 둘은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만 함께 임신을 준비하는 상황이라면 그 만남을 자제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동시에 임신이 되는 확률보다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임신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축하해줄 정신이 남아있지 않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는 거리가 먼 비법이고 어쩌면 시시하고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간절할지언정 무리해서 엄격하게 자신의 평소 생활을 제한한다면 일생 최대의 축복을 준비하면서도 오히려 괴로울 수 있다. 왜 덤덤해야 할까? 아이를 맞이하는 일은 엄마가 되는 준비도 필요하니까 말이다. 세상에 새로 온 아이를 품어주어야 하니 바다처럼 고요하고 잔잔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힘을 다해 뛰어보았고, 급한 마음만 앞서 여유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나. 임신은커녕 스트레스 가득한 아픈 몸만 남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과정도, 소울도 중요한 거니까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간절한 순간 오히려 마음을 덤덤하게 먹을 수 있었던 방법은 이 정도였던 것 같다.
쌍둥이가 태어나기 두 달 전의 12월.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조명과 절로 기분 좋아지는 캐럴을 들으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노력과 진땀 흘리며 참아야 했던 순간과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 그 덕분에 이렇게 내가 이렇게 아기를 품을 수 있게 되었구나.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간절하게 그래도 덤덤하게 하루하루 지냈던 것이 모이고 모여 기다리던 선물을 받았다. 결국 38주 동안 아이들을 품고 무사히 출산했고 나의 작은 마라톤은 완주로,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