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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Sep 16. 2021

신이와 선이의 비밀

그날이 임신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빛난다는 뜻을 가진 신이(Shinny) 태양이 반짝인다는 선이(Sunny). 신이와 선이는 쌍둥이의 뱃속 시절 태명이었다. 아이들을 처음 만난 그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임신 자체가 어려웠으니,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난임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그랬다. 숙제처럼 시험관 시술도 반복되었다. 다른 수술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의료행위인 만큼 시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데 내용에는 발생 가능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포함되어있다. 거기에 어김없이 적혀있는 부분, 쌍둥이 임신 확률이 높다는 것. 그러나 여러 번 서명을 하면서도 눈 여겨본 적은 없다. 배아를 하나 넣을 것인지 두 개 넣을 것인지도 고민해본 적이 없다. 왜? 여럿 하면 하나는 잘되겠지 라는 마음보다 하나라도 될까? 하는 의심이 더 컸기 때문. 오래 병원에 다닌 탓에 지칠 대로 지쳤고, 자신감이란 존재하지 않은지 오래였으니 그건 당연했다.


잦은 유산을 겪은 탓에 임신 테스트기를 믿지도 않았다. 두줄을 보고 감격하는 것은 처음 한두 번이지 이미 지나 버렸고, 두줄을 봐도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에 희망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이미 많이 없어져서 희미하게 자국만 남아 있었다. 이제 병원도 다니지 말까? 지치기도 했고, 회사에서도 온전한 마음으로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어서 사회생활마저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다니던 병원에 더 이상 다니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의 시술 기록을 한 뭉텅이 서류로 받았다. 그동안의 고생은 이 것보다 더한 것 같았는데, 서류 몇 장에 지나지 않는다니 씁쓸하기도 했다. 


"안 해. 이제 안 해"


서류를 받고 돌아오자마자 남편에게 통보를 하고 침대로 직행해서 펑펑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매일 알람을 맞춰가며 먹던 호르몬약도, 지긋지긋한 질정도, 엉덩이가 딱딱해지는 주사와 스스로 놔야 하는 배 주사에게도 이별을 고할 것이야. 냉장고 한편에 쪼르르 넣어두었던 약봉투 하나도 안 보이게 다 버릴 거다. 당분간은 매일 아침 스타벅스에 가서 시릴 정도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라테를 번갈아가며 마실 거다. 살 빼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고 우선 인생 한번 즐겨보자! 다짐했다.  


굳게 마음먹었다 생각했는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병원 후기를 살펴본다. 이제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으려고 했건만 그 의지 조차 무너지고 말았다.


'아... 결국 포기 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나.' 


아이를 갖고자 하는 본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력했다. 병원에 다시 가기로 했다. 대신 난이도를 낮춰보기로 했다. 보통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난자가 건강하다고 하니, 시험관 시술 말고, 난자 채취나 해두고, 얼려두면 분명 나중에 다시 원할 때 해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시험관 성공률이나 의사 선생님의 배아 이식 기술 이런 것보다 정말 정말 회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서 그 과업을 해결해보고자 했다. 임신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 편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 그런 이벤트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고 환자로 사는 것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찾은 회사 앞 병원. 처음에는 난자 채취만 하려고 했는데, 임신하고 싶긴 하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또 한 번의 시험관 시술로 이어졌다. 그만하기로 해두고선 홀린 듯 모든 과정이 반복되었다.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했다. 그리고 수정도 시켰다. 안타깝게도 냉동 배아는 나오지 않았다. 무엇인가 보험처럼 냉동해두고 싶은 욕망이 제일 컸는데,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병원 전화를 받은 날, 엄마 아빠와 삼성동 현대백화점 식당가에서 밥을 먹었다. 아빠는 갈치를, 엄마는 해물 덮밥을, 나는 제육볶음을 시켰다. 맛있는 반찬이 가득 앞에 있지만 밥맛도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즐겁게 밥이나 먹자 였는데, 아빠 반찬 갈치를 발라먹다가 마음속에 계속 담아둔 말을 꺼냈다. 


"냉동이 없대. 실컷 다 채취했는데 하나도 구하지 못했나 봐."


갑자기 북받쳐 엉엉 울었다. 이렇게 다 큰 딸이 공공장소에서 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특히 아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머뭇머뭇 어떤 말도 쉽사리 꺼내지 못하셨다. 엄마는 벌겋게 된 눈을 크게 뜨고 애써 눈물을 참으셨다. 깊은 슬픔이 찾아온 순간 어떤 위로도 들리지 않을 상태인 것을 아셨나 보다. 엄마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우리 딸이 너무 힘든가 보다. 그렇지 그동안 고생도 많았지. 잠시 쉬는 건 어때? 쉬어보고 나중에 몸도 마음도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다시 하면 되지."


늘 얼른 아기를 가져야 한다고, 목표가 있는데 왜 부지런히 병원을 안 가냐고 했던 엄마였다. 처음에는 병원에 다니는 것도 비밀로 했던 터라 더 답답해하셨는데 엄마도 당장 존재하지 않는 손주보다 딸이 소중했다. 잠잠해질까 했더니 뭉클 해져서는 더 눈물이 났다. 아빠는 급히 계산을 마치고 우리는 눈물의 그 자리를 떠났다.


쌍둥이를 처음 만난 것은 모니터에서였고, 배아 상태였다. 냉동 난자는 없었지만 다행히 신선배아 두 개는 남았다. 나에게 있는 마지막 찬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보자마자 그날 시험관 신선 이식을 권하셨는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 채취에서 냉동 난자도 나오지 않았던 터라 신선이 될 리 없고 복수가 찰 것 같다고 했다. 이전에도 신선 이식하다 죽을 뻔했다고 무용담만 늘어놓으며 부작용만 걱정하고 다음을 기약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번엔 꼭 해보세요. 복수가 안차도록 최대한 조치해볼 거예요. "


반짝이는 두 배아를 보여주셨다. 선생님은 말수가 많은 분도 아니고 환자의 의견을 대부분 존중해주시는 것 같아 말은 안 해도 나름 신뢰하고 있었다. 절대 안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갔는데, 또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하며 나도 모르게 알겠다고 해버렸다. 그렇다고 없던 기대가 갑자기 생긴 건 아니었다. 그냥 지금까지 한 것이 아까우니 해야겠다는 마음에 더 가까웠다. 이식 당일 날도 그랬다. 회사에서 근무하다 점심시간에 잠시 다녀왔다. 약 기운이 있었나 회복실에서 깜빡 10분 잠이 들고 말아 그날은 점심시간을 조금 넘겨 버렸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늦겠다고 말하지도 않았기에 헐레벌떡 자리에 뛰어들어왔다.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그날이 임신으로 이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신선배아와 냉동배아 착상 확률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신선 배아 이식 때마다 배에 물이 차고, 숨쉬기 어려워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생했기에 해보기도 싫었던 신선 배아 이식. 억지로 겨우겨우 끝낸 그 시술에서 아이가 생긴 게 너무나 기적 같았다.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봤다. 냉동이 아니라 신선이어서 태명도 자연스레 신이와 이가 되었다. 반짝이는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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