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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Oct 08. 2021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기분이랄까

르꼬르동 블루 제과 코스 시작

"엄마! 따뜻한 우유 주세요. "


새벽에 깨서 우유를 데워달라는 아이의 요청. 한밤 중에 마시는 건 끊어야지 하면서도 '얼마나 목이 마르면 그러겠어' 하고 비몽사몽 졸린 눈을 비비며 얼른 가져다준다. 다시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였고 조금만 더 잠을 청해볼까 하는 순간 핸드폰을 보니 벌써 아침 6시. 더 잘 수는 없다. 얼른 준비하고 나가야 한다. 첫날부터 늦으면 안 되니 말이다! 아이들이 깰까 봐 네스프레소 커피 한잔도 못 내려 마시고 나왔다. 그래도 최대한 숨을 숙이고 조심조심 간단히 도시락은 챙겼다. 오후까지 식사할 틈 없이 스케줄이 차있으니 혹시 굶어 죽으면 안 되니까.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제 남은 찬밥과 어묵 볶음이 있다. 그래 이거면 충분할 것 같다.


동트기 전 새벽의 살짝 차갑고 습습한 공기는 집을 나서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누군가에게 아이 등원을 맡기고 새벽부터 집 밖으로 나서는 게 마음 한쪽 구석에 걸려서 더 그런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은 빠르고 잠시도 지체할 수 없다. 마드리드는 바쁜 사람들로 가득찬 대도시이기에 조금만 더 늦으면 출근하는 사람들로 도로는 꽉 차 버릴 테니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하루. 정통 레시피로 프랑스식 요리와 제과를 가르친다는 120년 역사의 교육기관 르 꼬르동 블루. 오늘부터 나는 이곳 제과 코스의 학생이 된다. 마드리드 외곽의 M40 고속도로를 타고 액셀을 쭈욱 밟으며 어스름한 새벽을 비추는 수많은 가로등을 지난다.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기들을 키우면서 보낸 3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온전히 아기에게 집중했던 이 시간은 포근한 엄마의 품을 내어줄 수 있어서 참으로 따뜻했고, 피할 수 없는 어려움과 갈등에 뜨거웠다. 작은 아기에게 하루에 8번 분유를 먹이던 그 시절부터 아이가 기고 서고 말하기 까지.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체득하게 되는 거라고 하지만 보살핌 필요하지 않은 아기는 없었다. 육아라면 무엇이든 처음 겪는 쌍둥이 엄마로서 늘 우여곡절을 겪었다. 때로는 원했던 아이를 얻은 기쁨까지 압도할 정도여서 엄마의 자격을 스스로 되묻곤 했던 시절도 있었다. 난임 기간이 짧지 않아 엄마가 될 준비는 이미 다 끝난 줄로 알았건만 그 준비라는 것은 한 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되새김질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따금씩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데 나는 반대로 퇴보하고 있는 것 같이 느꼈다. 그동안 사회와 단절되어있었달까. 집에서 틈틈이 언어 공부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플레이 데이트도 했는데 사회생활에 대한 목마름이 가시질 않았다. 불쑥 궁금해졌다. 그건 돈을 안 벌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육아라는 것이 개인적인 성취감과는 별개의 무엇인 걸까? 혹은 이 모든 것이 대부분 집에서 벌어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바깥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함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고, 나도 뭔가 프로젝트를 하고 목표도 달성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동료들은 승진을 했고 이직을 했고 한걸음 한걸음 새로운 발자국을 딛고 있었다. 나는 가정이라는 세계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과업'이라는 육아를 하는 중이었지만 커리어 측면에서는 잃어버린 혹은 멈춰있는 3년이었다.


이제 쌍둥이는 아기 티를 벗고 어린이가 되어간다. 기관에 가기 시작했고 엄마가 없어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반나절 즈음은 거뜬히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생긴 듯했다. '올레! 내 시간이 생겼어' 하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가 된 이상 육아 외의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엄마의 시간'을 쪼개 쓴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 일종의 죄책감이 남아있다. 그러니 이 시간 동안 무엇인가 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어 활동하려면 그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어야 하고, 내가 즐기고 좋아해서 힘들지언정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먹는 것을 아주 사랑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이전부터 생각하던 요리/제과 학교를 떠올렸고, 우연의 일치로 다니고 싶었던 르꼬르동 블루가 마침 마드리드에 있다는 소식에 이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확신했다. 나의 오랜 꿈인 푸드 저널리스트와 브런치 레스토랑 오너. 그 길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데 분명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어서 망설이기를 반복하다 결국 굳게 마음먹고 시작하기로 했다.


나에게도 마드리드에서 르꼬르동 블루라는 새로운 작은 사회가 주어졌다. 이른 아침에도 벌떡 일어나 준비할 수 있는 동기를 찾았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은 프란시스코 비토리아 대학 (Universidad Francisco de Vitoria) 마드리드 외곽 포수엘로에 위치한 카톨릭계 사립 대학이다. 커다란 학교 남동쪽 끝에 르꼬르동 블루 건물이 위치해 있고, 한층만 쓴다. 르꼬르동 블루의 한국 캠퍼스가 숙명여자대학교에 위치하고 있다는데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아직 어스름한 아침, 입구에 들어서자 마다 조명이 비추는 곳으로 눈길이 간다. 푸른 문양의 멋진 로고가 나의 첫 시작을 환영해 주고 있었다. 르꼬르동 블루는 최고의 만찬을 의미한다고 한다. 프랑스의 왕 앙리 3세가 결성한 '성령의 기사단'이 있었고, 이 조직은 화려한 의식과 성대한 만찬으로 유명했다고. 이 기사단의 상징이 푸른 리본이 달린 십자가였는데 이걸 따온 로고라니 맛있는 레시피를 잔뜩 배울 생각에 마음이 두근두근 해졌다. 얼마만의 학교인가. 메이크업도 할 수 없는 학교지만 모두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난다. 원하는 일을 한다는 기쁨이 이런 걸까?


오리엔테이션 시작 15분 전, 학교 중정에는 벌써 사람들이 단정하게 칼각 잡힌 조리복을 입고 대기 중이다. 나도 옷매무새를 다시 바로 잡고 무리에 합류했다. 용기를 내어 주위에 인사를 건내며 마드리드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정시에 셰프가 교실으로 들어오라고 안내해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약간의 긴장과 함께 15분을 보냈다. 드디어 반으로 들어가 모두가 자리를 잡았다. 내가 선택한 제과 기본 코스의 금번 인원은 19명이다. 기관 매니저 분들의 인사를 들었고 주의 사항도 듣고 안내문도 받았다. 가장 강조하는 건 다름 아닌 결석 금지. 얼마나 원해서 시작하는 건데, 과연 누가 결석할까 싶었지만 그런 일도 종종 있는 듯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다름 아닌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셰프님이 한 명 한 명 호명하면 나가서 동료들 앞에 섰다. 마드리드에 사는 로컬부터 이 코스만을 위해 저 멀리 미 대륙에서 건너온 유학생까지. 로펌을 다니다 꿈을 좇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부터 엠빠나다(Empanada: 스페인식 만두 빵) 전문점을 운영하다 이제 달달한 제품도 팔아보고 보고 싶다고 본인 가게를 잠시 닫고 이곳에 합류한 사람까지.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다. 내 이름도 어김없이 불렸다. 쌍둥이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석자로 불리는 날이 돌아오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나도 힘찬 걸음으로 앞에 나가 섰다. 수없이 연습했던 스페인어 자기소개를 이렇게 써먹는구나!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테크 업계에서 일하다 페이스트리를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배우러 왔습니다. 이런 코스를 수강하는 것은 처음인데요. 언젠가 저도 잘 만들게 되면 작은 카페에서 제가 만든 케이크를 팔아보고 싶어요! 모두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


중간에 사람들이 다 같이 웃었는데, 아직 스페인어가 유창하지 않은 나는 그 웃음의 포인트가 뭔지도 모른 채 의도했던 양 그들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훈훈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 겨우 자기소개지만 그렇게 나는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있었다.


내가 나로 돌아가는 시간. 처음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최고의 만찬 준비를 해보려 한다.

자 이제 정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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