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영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노트북을 켜 두고 깜박 거리는 커서만 멍하게 바라보다 황급히 한 줄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할 뿐. 아이가 둘인 나에게 쌓여있는 일을 생각하면 '멍하게'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사치인데 말이다. 어떤 종류의 글 쓰기라도 의식의 흐름대로 황급히 써 내려가고 얼른 저장하는 것이 쌍둥이 엄마라는 입장에 더 적절하지 않나.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백지는 다름 아닌 자기소개서. 세계적인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 (Le Cordon Bleu)의 지원 동기를 쓰는 칸이다. 마드리드에서 음식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대안은 요리 학교에 가는 것이었다. 입학 요건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1. 동기가 확실할 것. 2. 요리 학교의 커리큘럼을 잘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언어 실력을 갖출 것. 언어 부분은 스페인에서 학부형으로서도 앞으로 필요한 부분이라 계속 준비를 하고 있고. 문제는 목적인데, 결국 최우선으로 본다는 것이기에 지원 동기를 써내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합격의 당락을 좌우하는 500 단어의 글쓰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좋아하는 일로 향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는 생각에 금방 완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달리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는다. 확신이 없는 건가? 모호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거란 상상 말고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글로 썼을 때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글만 봐도 열정이 느껴져야만 했다.
'언제부터 요리를 하기 시작했었나?'
'왜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내 꿈은 뭐지?'
졸업 후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능력치를 학교에서 체득해야 한다. 왜 요리 학교에 가야 하는지 그리고 이 업을 선택하는데 후회는 없을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만 했다. 진짜 음식을 좋아하나? 먹는 것과 요리는 아주 다른 종류의 활동인데, 어쩌다 요리를 하게 되었지 조차 곧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 순간이라 몇 달을 고민했다.
돌이켜 보니 첫 시작은 생존을 위한 요리였다. 한식당 하나 없는 아일랜드 소도시에서의 대학 유학 시절이 떠올랐다. 치솟는 환율로 샌드위치 하나 만원 주고 선뜻 사 먹기 힘들었던 시절. 교내 식당의 주요 메뉴, 그러니까 퍽퍽한 닭가슴살과 삶아 으깬 감자와 당근 혹은 불어 터진 급식 라자냐를 보면 2만 원이 아깝기 그지없어 끼니를 거르곤 했다. 한 끼 한 끼를 소중히 여기시는 미식가 부모님을 둔 덕에 어려서부터 입 호강을 한지라 굶을지 언정, 맛없는 것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던 그때 그 시절. 첫 한 달이 지나자 몸무게 5킬로가 쑤욱 줄었고 그때 결심했다.
"그래. 뭐라도 해 먹자!"
의외로 요리는 어렵지 않았다. 레시피를 정확하게 지켜서 그런지 실패하는 경우도 거의 없이 맛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칼이 두려운 탓에 작은 과도로 모든 과정을 처리했지만 (그건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도구가 갖춰지지 않아도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는 것도 신기했다. 스스로 제대로 챙겨 먹는 한 끼 식사는 배고픔을 채워주는 일도 일이지만, 무엇인가 어른이 되었다는 감정과 집밥을 먹는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선사했다.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되지 않는 집에서 덜덜 떨며 스웨터를 여러 겹 겹쳐 입곤 했는데, 빵을 구울 때만큼은 따뜻했다. 그래서 유독 추운 날이면 오븐을 켜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훈훈한 기운이 감돌아서 마치 크리스마스 파티를 누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카레나 스튜는 큰 냄비에 한 솥을 끓여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과 나눠 먹곤 했다. 든든한 식사가 한 그릇씩 비워지며 탸향살이의 외로움도 함께 사라지는 듯했다.
그리운 것을 해 먹다 보니 타국에서 한식까지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것을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성격이 크게 작용을 했다. 아직도 생각나는 두 가지는 독일식 양배추 절임과 아이리쉬 소시지로 만드는 김치 없는 김치찌개와 몇 달 동안 이곳저곳에서 재료를 모아 만든 감자탕인데 만족스럽게 먹고 나서는 ㄱ. 그래, 앞으로 한국 가서 이건 사 먹지 않아도 되겠어. 먹는 것은 원래 좋아했지만, 만들어 먹는 일은 새로운 차원의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게다가 새로 생긴 취미는 생각보다 유용했다. 딱히 할 줄 아는 것도 없던 내가 요리를 통해 남을 돕는 봉사 활동도 하게 되었다. 방학 때면 아일랜드 시골에 위치한 캠프힐이라는 곳에 가서 대량 요리를 했다.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있다 보니 매 끼니 챙겨 먹는 것도 큰 일. 전통 아이리쉬 식단인 삶은 양배추와 소시지를 굽는 것부터 한국식으로 비빔밥을 만드는 것 까지. 만족스럽게 배불러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맛있었다는 멋쩍은 인사가 벅찬 감동을 선사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대접하는 기쁨도 알게 해 준 것이 요리였다.
아이가 둘인 삼십 대 중반. 모든 핑계를 뒤로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의무처럼 하며 살았던 지난날, 그보다 오래전에는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람을 느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식의 천국이라는 스페인, 마침 요리학교도 있는 마드리드.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타이밍인 것 같아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시작이 반이라니 우선 꾸역꾸역 요리 학교 지원 동기를 채워나가 본다. 졸업하고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머리에 맴돌던 두 가지를 적어 보았다.
- 푸드 저널 쓰기
오랫동안 사랑받는 음식점의 비밀도 파헤쳐보고, 새로운 레스토랑이 열리면 먹어보고 소개하는 일도 하고 싶다. 단지 먹어보고 맛있다고 하는 단순한 감탄에 그치지 않고, 해당 요리의 정석은 무엇인지, 왜 이 조합이 어울리는지, 셰프는 어떤 변주를 주었는지, 왜 특별한지, 먹어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다. 그러니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알아야 한다. 전통적인 레시피도, 어떻게 진화했는지도 배워보고 싶다. 진짜로 잘 만들어진 요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 브런치 레스토랑 운영하기
제일 좋아하는 한 끼 식사가 아침 식사인 만큼 브런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다. 기본에 충실해서 처음 접해보는 음식을 마주할 때 제대로 된 첫 경험을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고. 가기 전부터 설레는 장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데려오고 싶은 곳,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따뜻한 식당으로 꾸려가고 싶다. 스페인 유명 레스토랑의 특징 중 하나가 테라스 공간이라, 근사한 테라스가 있었으면 한다. 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에 어울리는 음식을 선보이고 햇살에 입맛이 절로 돋아 먹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 해지는 곳. 특별한 날이면 생각나서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끄적끄적 적다 보니 요리 학교에 가야 할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아이들이 아닌 나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한편 마음에 걸리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지원 버튼을 눌렀다. 꿈을 꿔도 될까 물어보던 것이 무색하게 지원한 것만으로도 희열이 느껴진다. 두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고 하고 싶다. 그래야 에너지를 쏟을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다고 보람도 느낄 거라고. 그래서 내가 먼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들도 행복하겠지? 미래를 준비하는 거니까 용기를 내서 다시 한번 학생이 되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