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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Jan 20. 2021

아이가 둘인 삼십 대 중반, 꿈을 꿔도 될까요

어릴 때는 몰랐던 꿈의 무게

5년 간의 서울 살이에서 신랑과 가장 자주 들른 곳은 집 근처 사잇길에 위치한 한 빵집이었다. 2층인지 3층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담한 건물과 옆에는 야외 공간이 있다. 원래는 주차장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는 테이블 서너 개가 있어 잠시 앉아 계절을 느낄 수 있다. 커다란 화분엔 허브가 무성하게 자라 바람에 흔들리고, 빵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주방에서 고생한 옷들을 깨끗하게 빨아 널어둔 모습도 자연스러운 곳이다. 이곳의 이름은 *블랑제. 프랑스 빵을 만든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이름과는 달리, 기다란 나무 판에 한글로 또박또박 쓰인 간판이 멋스럽다. 삼시 세끼를 회사에서 해결하던 때라 이곳은 주로 주말에 방문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바게트가 먹고 싶으면 이곳에 들렀다.


우연하게 이곳을 알게 된 건 라테 덕분이었다. 아이가 찾아오지 않아 고생할 시절에 근처 산부인과에 종종 들러 조언을 구하곤 했다. 하루는 진료실을 들어서는데 커피 향기가 너무 좋은 거다. 코코아향 같으면서도 묵직하고 고소한 나무 냄새 같았달까. 그날 선생님의 책상에는 종이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날 상담내용은 기억나질 않는다. 나는 상담보다 어디에서 이런 커피를 살 수 있을지가 꽤나 궁금했던 것 같다. 오! 드디어 선생님이 컵을 살짝 돌리셨다. 이름이 보여서 기뻤다. 마음고생을 뒤로하고 그 가게를 찾아 나섰다. 숨겨진 보석을 찾는 기분이었다.


화려한 빵집은 아니었다. 진열대보다 작업 공간이 더 큰 믿음직스러운 가게였다. 바삭한 크러스트와 빵의 속살 그렇게 감촉이 완벽한 빵은 처음이었다. 자꾸만 생각이 났고 자연스럽게 단골이 되었다. 사장님이나 직원분들과 개인적 친분은 없었지만 빵맛 하나로 난 이곳에 사로잡혔다. 주말마다 그곳에 들러 야외에 앉아 남편과 다정한 대화를 나눴다. 이곳은 우리의 힐링 공간이었다. 폭신 폭신하고 부드러운 브리오슈와 토스트에 제격인 뺑드미, 베이컨 에삐와, 크랜베리와 호두와 크림치즈가 가득한 자그마한 빵. 그리고 늘 먹는 바게트까지. 이곳은 심지어 가끔 계절 재료를 넣고 스콘도 팔았는데, 아니 어떻게 스콘까지 이렇게 잘할 줄이야. 유럽에 살아 맛있는 빵을 많이 먹을 것 같지만 여전히 내게는 이곳이 부동의 1등 빵집이다.


가끔 조금 늦게 들르면 빵을 못 사기도 했다. 3시쯤 가니 거의 남아있는 빵이 없더라. 기다리던 빵을 사지 못한 아쉬움은 가득하지만 오늘은 가게를 조금 일찍 닫아야 할 것 같다며 정리를 하고 있는 직원분들을 보자니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맛있게 만들 수 있는 만큼만 만들고 다 팔리면 조금 빨라도 문을 닫는 것 같았다. 뭔가 사장님의 경영 마인드가 건강해 보였다. 5년간 아주 자주 방문했는데 찌푸린 직원을 본 적이 없다. 다들 성실하고 묵묵하다. 그리고 미소로 맞아주신다. 하루는 사장님과 가족들의 모습을 얼핏 본 적이 있다. 일상의 대화지만 가족의 모습이 예뻤고 행복해 보였다. 우리의 아지트가 이곳이어서 그렇게 되었는지? 입버릇처럼 빵집 로망이 시작되었다.


"오빠 우리도 나중에 빵집 할까?"     

"그러자! 다른 건 몰라도 나 아침에 일어나서 성실하게 준비할 수 있어. 게다가 내가 청소는 좀 하잖아."


어렵지 않은 일이 세상에 없고, 특히 빵집이야 워낙 경쟁도 치열해서 어려울 것 같지만 그렇게 나는 제빵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운 빵집




"네 꿈은 뭐야?"


어릴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인데, 30대를 한창 지나고 있는 지금 아무도 그걸 묻지 않는다. 아마 지금 아이를 기르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자연스러워서 그런 것일지 혹은 휴직이 끝나면 당연히 복직할 거라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폰트를 가장 작게 하고 써두어야 할 것 같지만, 종종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세상에 나가서 다시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댄다. 물론 알고 있다. 쌍둥이 엄마의 역할은 임시직이 아니며 평생 책임져야 하는 가족, 아이들이 있다는 것. 그러니 무엇을 하든 이제 꿈꾸는 것에 있어서 소소한 것은 없다고. 무엇을 택하든 그 결정은 많은 것이 뒤따른다. 그래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꿈꾸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어릴 때는 몰랐다. 꿈꿀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것을. 다른 길을 잠시 기웃거려도 그건 과정이니 괜찮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조언이 었던 것도 이제야 조금씩 깨닫게 된다. 가족들과도 취향과 잘할 수 있는 일이 다르고, 회사에서 밥 먹으러 가도 한 가지 메뉴 정하기 어려운 시대에서 다양한 선택에 대해 알아보기도 전에 너무 내 길은 이거!라고 속단한 것 같은 미련함을 지 30대 중반이 된 지금, 조금 후회한다.


사실하고 싶은 일이 있다. 음식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그렇게 찾아다니는 맛있는 빵도. 늘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생활 같은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 그러나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막막하다. 그동안 했던 공부와도 아이티 회사에서 보낸 시간도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직 시에 보통 업계를 옮기면 직무라도 유지한다. 직무를 바꿀 때는 업계라도 유지해서 전문성을 살린다. 그렇다. 가진 게 없구나. 다시 시작해야 하는구나.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는 교육을 다시 받는다. 그런데 다시 학교에 돌아간다는 게 비용이 드는 일이다 보니 아이에게 쏟아부어야 할 것을 내가 욕심내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고 한편 미안하기도 하다. 꿈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진다.


이왕 이렇게 미식의 나라라는 스페인에 있는데 무엇인가 해볼 수는 없을까? 오늘도 이렇게 고민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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