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쌍둥이와 스페인 미식 여행
핀쵸의 도시 산세바스티안
여행을 좋아해서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여행을 갔었다. 그렇지만, 임신 때는 고위험 산모라 어려웠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육아하느라 일상의 소소한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꼈다. 여행을 다녀오면 녹초가 된 내가 재충전이 되어서 다시 활기차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에게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호텔! 그리고..... 음식. 이 두 가지가 거의 투탑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스페인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것이라는 글에서도 썼지만 나는 스페인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핀쵸를 꼽는다. 가볍게 하나 먹어도 질 좋은 재료로 만든 근사한 요리를 먹을 수 있고, 또 이것도 먹어보고 싶고 저것도 먹어보고 싶은데 먹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있으니 핀쵸를 먹으면 이것저것 다 먹어볼 수 있는 것이다. 동네 핀쵸 집에서 감동을 받고 아니 대체 이렇게 맛있는 거라면 핀쵸의 본고장에 가면 얼마나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상상하며 핀쵸의 본고장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an)으로 여행지를 결정했다.
몇 달 전부터 호텔을 찾고 있었다. 한방에 아기 침대 두 개를 놓아주어서 8개월 아기 둘을 같이 재울 수 있으며, 4명이라는 이유로 커넥팅 룸으로 더블룸 두 개를 잡으세요 라고 하지 않을 그런 숙소 말이다. 우리 쌍둥이의 유모차도 지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호텔 문턱에 계단이 즐비한 그런 곳은 절대 불가능. 아이들 없이 유모차만 들어도 팔이 빠질 것 같은데. 문이 좁다? 그러면 에러다 그러면 유모차를 접어서 줄여서 지나가고 다시 펴서 아이들은 태운다? 불가능하다. 여러 호텔에 전화를 했다. 한방에 아기 침대를 두 개를 해결할 수 있는 곳과 문턱이 없고 쌍둥이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고 객실까지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는지 등등 결론부터 말하면 잘 찾아서 깨끗하고 세련된 호텔에서 마음 편히 쉬다 올 수 있었다. 아기들도 새로 누워보는 호텔 나무 침대에 귀여운 침구를 너무 좋아했다.
예쁘게 두 침대를 세팅해준 고마운 호텔
이동은 차로 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하는 첫 장거리 여정이었다. 아직 분유를 먹는 아기들이라 짐이 많았다. 중간 경유지인 부르고스(Burgos)까지 약 2시간 그곳에서 산세바스티안 까지 2시간 정도. 부르고스에서는 성당 앞을 한 바퀴 둘러보고 역시나... 핀쵸를 좀 사 먹었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의 테마가 핀쵸니까 한 번이라도 더 먹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디서 먹어도 맛있다! 아이들이 그래도 낮잠을 오래 자준 턱에 큰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었고 체크인을 했다. 처음 보는 새로운 환경에 두 눈을 크게 뜨는 아기들. 그래도 도착하자마자 한 것은 차 안에서 먹은 분유병 닦기와 분유 기계, 소독기 세팅하기였다. 그래서 짧은 여정이지만 기계의 도움 없이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가 부담이 되었다. 액상 분유는 70ml 4개 들이에 6유로가 넘어 너무 비쌌고 어차피 차로 여행하니 집에서 쓰던 모든 것을 들고 온 셈이다.
마치 우리집 처럼 호텔에 아기 용품을 세팅
짐을 풀고 바깥 산책을 나갔다. 마드리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이곳은 다른 나라였다. 우스케라 라는 지역의 언어도 따로 있고, 바스크라는 지역으로 따로 분류되었다. 아직도 종종 국가로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스페인이라는 국가지만 스페인어로도 아직 바스크 나라(Pais Vasco)라고 부른다. 뭐랄까 프랑스 국경에 위치해서 그런가? 스페인과 프랑스 그 중간의 느낌이다. 해변이 있어 로맨틱하고 해변가 옆 공원엔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로 북적여서 뭔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지를 잘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유로워 보였고, 즐거워 보였다. 나도 웃음이 절로 세어 나왔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아이들이 벌써 졸려한다... 아.... 나 핀쵸 투어 가야 하는데, 하루 종일 차를 탔으니 더 이상 유모차에 재우는 것은 안 좋을 것 같아 피곤한 아이들을 침대에 잘 눕혀 재우기로 했다. 챙겨간 타이니 모빌의 음악을 틀어주었다. 아이들을 각각 침대에 재우고 나니 뭔가 아쉽다. 안 되겠다. 신랑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나왔다. 핀쵸 투어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그래도 간단히 저녁이라도 먹자 싶어서 가벼운 저녁을 위해 핀쵸를 몇 개 사 오기로 했다. 사람 많은데 골라서 맛있어 보이는 핀쵸 메뉴를 보고 쭈르르 이거 쫙 다 싸주세요. 할 요량으로. 우선 근처 슈퍼에서 맥주도 사고 콜라도 사고. 사람 많아 보이는 바에 들러 바에 가득 깔린 핀쵸를 구경한다. 와 이 비주얼 봐. 이게 진짜 핀쵸라는 거구나. 내가 마드리드에서 보던 것보다 형형색색 훨씬 화려하다. 어머어머 이럴 수가 메뉴판에 핀쵸 가짓수가 어마어마하다. 모두 달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임을 깨닫고 맛있을 것 같은 것만 엄선해서 주문한다. 포장 주문이요!!!
포장해온 6개의 핀쵸. 하아.... 이럴 수가 나는 산세바스티안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렇게 맛있어도 될까. 관자 새우구이는 아삭한 양상추와 달콤한 칠리소스를 곁들였고. 리조토도 너무나 크리미하고 들어가 있는 새우는 오동통 잘 익은 것. 마늘 잔뜩 넣은 기름에 조리한 것 같은 새우 꼬치와 바게트는 너무 잘 어울렸고 (감바스 알하이 요에 바게트 찍어먹는 맛, 안심 스테이크 굽기도 완벽하고 대구를 다져 파프리카에 넣은 것은 해물 맛이 아주 진하다. 이 소스가 비스큐 소스라는 건가? 그냥 앞에 있길래 하나 더 넣은 맛살 샐러드 핀쵸까지 빠짐없이 맛있었다. 호텔 방 소파에 앉아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했다. 아기들이 깨면 안 되니까 숨죽여 키득키득 웃으며 좋아했다. 행복했다. 넷이서도 행복한 여행이 가능한 것 같아 마음이 벅차올랐다.
포장해온 핀쵸로 조용히 즐기는 저녁 만찬
느지막이 일어나 레이지 바캉스를 즐겨야지 했는데, 서머타임까지 종료돼서 5시에 아이들이 일어나버렸다. 이럴 수가. 하루 시작이 너무 빨라서 슬픈 이야기. 그래! 그래도 여행인데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다녀야지. 잠이 많은 우리와는 달리 아이들은 참 부지런하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핀쵸 먹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성당 앞 핀쵸 가게는 미리 예약을 해서 아이들과 바깥 테이블에 앉아 먹었다. 하나씩 가져다주는 것이 마치 코스 요리를 먹는 것 같아 기뻤다. 아기들과 식당에서 먹는 코스 요리라니. 이런 호사가 어딨는가. 정말 산 세바스티안은 우리에게 완벽했다. 여행의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조금만 더 느렸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다음날 둥둥이는 첫 해외여행을 한다. 여행지는?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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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문득 8개월 쌍둥이와 스페인 미식 여행이라고 하면 조금 거창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마드리드에 살고 있기 때문에 회 먹으러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녀왔다 정도의 느낌일 것 같다. 그래도 나름의 장거리라 반살이 조금 넘은 아기들과의 여행이 어떨까 고민도 많고 걱정도 했는데, 할만했던 것을 보니 앞으로도 여행 계획을 세워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