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ebangchon May 11. 2020

편리함을 버리고 두 손 무거워지기로 했다

No Plastic 라이프 도전기

비닐에 모든 것을 담아 드립니다.


태국은 스트릿 푸드의 천국, 야시장의 천국이고 똠얌꿍 팟타이 천국이다. 직접 재료를 사 집에서 요리해 먹는 것보다 거리 상점, 시장에서 뚝딱 만들어져 파는 음식이 맛도 있고 싸기도 엄청 싸다. 음식을 사면, 각종 다양한 비닐과 일회용 용기에 음식과 추가 옵션 재료들을 나누어 깔끔하게 담아준다. 비닐과 동시에 태국은 플라스틱(비닐 포함)의 천국이다. 비닐의 아낌없고 다양한 쓰임에 놀란다. 비닐봉지와 고무줄만 있으면 포장이 안 될 음식이 없다. 국물이 있든 없든, 차갑든 뜨겁든 모든 것이 포장된다.


뜨거운 고기 국수를 주문하면, 삶은 국수 1봉지, 국물 1봉지, 추가 들어갈 미트볼이나 야채 각 1봉지가 따로 비닐에 담겨 나오고, 저 모든 것은 한 손에 들고 갈 수 있게 큰 비닐에 다시 담겨져 나온다. 태국은 식당에 가면 기본적으로 태국의 기본 맛(짠맛, 단 맛, 신 맛, 매운맛)을 첨가할 수 있는 소금, 설탕, 식초, 고춧가루가 준비되어 있는데 음식을 포장하면 이런 기본 재료들도 각기 포장해서 담아준다. 이 나라엔 포장의 달인들이 넘친다. 눈 깜짝할 새에 비닐에 음식을 담고 공기를 넣은 채 동그랗게 만들어 위를 색색의 고무줄로 돌돌 감아준다.  


쏨땀, 망고스티키라이스를 사면 이만큼 비닐과 플라스틱을 사는 셈이다.


시원한 음료 한 잔 사면, 일회용컵에 빨대, 거기다가 손에 들기 쉽게 비닐 손잡이를 씌워 준다. 시원한 음료 한 잔 들면 손이 가득 차 다른 것을 들고 가기 불편한데 이렇게 비닐 손잡이가 있으면 손이 자유롭다. 날이 워낙 덥기에 얼음이 가득 담긴 페트를 들고 있으면 얼음이 금방 녹는데, 비닐 손잡이에 음료를 걸어 다니면 얼음이 그나마 덜 빨리 녹아 음료의 시원함이 오래간다. 아이디어 상품임에 분명하다.


아이디어는 기발하지만 Say No 해야 할 비닐 음료 캐리어


태국의 맛을 즐기는 건 좋은데 사 가지고 온 음식을 풀다 보면, 내가 음식을 사 온 건지 비닐봉지를 사 온 건지 헷갈릴 정도다. 너무 싼 가격 안에 이런 포장지 가격은 포함이 된 건지 궁금하다가, 음식 가격에 이런 포장지 가격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추가된다. 그 죄책감은 판매 상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구 환경에 대한 것이다. 겨우 50바트(약 2,000원), 100바트(약 4,000)원에 음식을 값싸고 맛있게 먹으면서 그런 음식을 사 오느라 함께 가져온 비닐을 버리게 돼 지구가 수백 년간 지불해야 할 비용은 어떻게 치러야 할지. 먼 미래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이 땅과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다시 우리 먹거리로 돌아오게 될 테니 현재의 편안함에 지불을 미뤄둔 것일 뿐. 편안함은 너무 달콤해서 우리가 이에 대해 어떻게 지불해야 할지를 종종 잊게 한다. 그래서 우리의 상상력은 환경을 위해서,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를 분리하여 버리는 것이 일상인 한국. 각 집마다 분리 배출을 하느라 다용도실이나 베란다에는 늘 페트병과 플라스틱들이 나뒹군다. 이렇게 제도 하에, 쓰레기를 내버릴 때 종량제 봉투나 배출 비용들을 지불하는 사회에서도 쓰레기는 여전히 많다. 쓰레기 종량제 이전 시절, 집집마다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을 아무 비닐봉지에나 싸서 손쉽게 내다버렸던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최근 들어 태국 쇼핑몰이나 마트에서 No Plastic (플라스틱 안 쓰기, 마트 같은 데서 비닐봉지 거절하기) 실천이 시도되곤 있지만 분리 배출하지 않아도 되는 쓰레기, 쓰레기용 종량제 봉투 없이 아무 데나 넣어 버려도 되는 쓰레기가 집 앞마다 놓인 커다란 검정 쓰레기통에 마음껏 담긴다. 골목 구석구석 검정 비닐봉다리 쓰레기들이 쌓여있던 우리네 과거 골목 풍경이다.


그런 대한민국의 과거로 나는 돌아와 있다. 태국은 그 아찔했던 과거이고, 나는 다시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렸던 과거로 와 있는 것. 과거를 만회할 기회가 주어졌다.


No Plastic을 위해 미리 준비할 것들


"노 플라스틱(No Plastic)", "마이 아오 플라스틱(No want plastic, 간단한 태국말 버전)"을 하려면 재빨라야 한다. 고르는 순간 생각할 여지도 없이 물건을 비닐에 담기기 때문이다. 비닐에 담긴 물건을 다시 비닐에서 벗겨내고 비닐을 돌려주고 하는 일은 손님이 많은 가게에서 영 성가신 게 아니다. 그래서 살 물건을 골라들거나 주문하고, 재빠르게 손을 흔들어 비닐을 꺼내거나 담는 행동을 저지해야 한다. 영어나 짧은 태국어로 해 보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정확하게 상대가 전달받는 건 바디랭귀지다. 노노, 하면서 손을 흔드는 것이 No Plastic 표현하기에 가장 정확해 보인다.


외출 시 나는 최대한 짐을 가지고 나가지 않는 쪽이다. 한국에서 출근할 때도 재킷 주머니에 휴대폰과 신용카드 한 장만 들고 다녔다. 핸드백 자체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작은 짐을 추구한다. 그런데, No Plastic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달라져야 했다. 장바구니를 챙겨야 하고, 작은 야채나 과일을 나눠 담을 망도 챙겨야 한다. 일회용 컵을 받지 않으려면 연일 36도를 기록하는 이곳에서 물을 담은 텀블러나, 커피나 음료 테이크아웃을 위한 텀블러는 필수다. 그것들을 두 손에 주렁주렁 다 들고 다니기도 힘드니 그것을 담을 에코백이나 백팩도 필요하다. 모든 장보기를, 계획된 날에 계획한 만큼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오다가다 틈이 생기면 하게 되는 게 장보기이다 보니 외출할 때는 늘 비닐을 대신할 이것들을 챙겨야 한다. 단순 장보기라면 준비물을 잊었을 시 최대한 손가락 10개와 팔과 배 사이의 공간을 잘 이용해 쇼핑한 것들을 담아 오는 것은 가능하다.


문제는, 매 끼니를 집에서 해 먹을 수 없으니 다 된 음식을 사 올 때다. 냄비나 도시락통을 들고 가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런 것은 늘상 챙겨 다니긴 힘드니 필요할 때 집에 와서 다시 챙겨 나가는 편이다. 출근하면서 핸드백도 안 가져가던 나는 요즘 백팩을 자주 멘다. 이런 준비물들을 미리 생각하고 챙기지 않으면 노 플라스틱을 실제로 실현하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며, 이런 수고로움은 해야 몇 백 년이 지나도 안 썩을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덜 버릴 것 아니겠는가.


이런 수고로움도 그냥 해 보겠다고 다짐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수고로움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야 갑자기 외출하면서도 들고나갈 수 있고, 깜빡하고 나간 다음 한참 골목을 벗어나다가 망설인 끝에 다시 이것들을 챙기러 집에 돌아오는 수고도 생각보다 자주 생긴다. 그럴 때마다 상상한다. 내가 쓰고 내버린 플라스틱들이 내가 한 번 죽고 환생하고 다시 죽고 환생할 때까지도 지구에서 안 썩고 어디선가 무서운 생명력으로 버티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 번 편해지자 싶은 마음을 거두기 위해 발휘하는 상상력은 이럴 때도 필요하다.


태국도 요즘은, 마트에 가면 비닐을 주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장바구니를 다들 챙겨 오는 분위기다. 문제는 그 안에 담긴 이것저것들이 스티로폼이나 비닐 등에 꽁꽁 싸여 있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길거리 상점에서 요리를 주문하고 반찬을 담아올 때 내가 준비해 둔 작은 법랑 냄비나 반찬 통을 꺼내는 것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혹여 상인들을 귀찮게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미안한 듯 건네면, 의외로 고맙다고 인사해 온다. 시장에서 산 법랑 냄비엔 길거리 소시지도 담기고, 똠얌꿍도 담기고, 족발 덮밥도 담긴다. 편하게 먹고 편하게 내버리면 설거지거리도 없겠지만 No Plastic 라이프에는 설거지도 추가된다. 비닐 하나 안 받았을 뿐인데 준비해야 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더블, 떠떠블로 생긴다. 세상에 공짜 없는데, 지구에도 공짜 없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당연해진다.


한 번씩, "아 오늘 한 번인데 어때!" 하고 게을러지고 자기 합리화하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땐 내가 집에 들어가 그릇을 가지고 나오면 몇 개의 비닐을 안 쓸 수 있는지 속으로 계산해본다. 내 수고가 몇 개의 비닐과 교환되는지 계산해 보면 그냥 한 번 더 편해지기보다 한 번 더 수고로워지기를 택하게 된다. 합리적으로.


집에서 용기를 가져갈 경우 안 쓸 수 있는 비닐은 아래처럼 계산된다. 산수는 이럴 때 쓰라고 배운 거 아닌가.

팟타이 + 카오팟무(돼지고기볶음밥) = 일회용 용기 2 + 숙주 및 라임 포장 비닐 2 + 이걸 담을 비닐 1 (+ 식초 등 옵션 가져오면 비닐 2 추가)
길거리 소시지 픽업 = (소시지 포장 비닐 1, 야채 포장 비닐 1) + 이걸 담을 비닐 1
팟씨유와 스위트 사우어 돼지볶음 덮밥 = 일회용 용기 2 + 이걸 한 번에 담아줄 큰 비닐
족발 덮밥 = 일회용 용기 1 (곁들여주는 장아찌를 따로 주는 경우엔 장아찌 포장 비닐 1 추가 + 다 담을 큰 비닐 1)
연어동 + 카레 돈가스 = 일회용 용기 2 + 이걸 함께 담아줄 큰 비닐 1
아이스커피 = 일회용 아이스잔 + 일회용 뚜껑 + 빨대 (+비닐 캐리어)


플라스틱 마실래, 그냥 마실래?

음식을 담아 올 용기를 미리 준비 못한 경우, 잊어버린 경우, 다시 가지러 갈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엔? 간단하다. 식당에서 먹고 오면 된다. 하지만 식당에서도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플라스틱을 사용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태국에선 물 잔에 빨대가 꽂혀 나온다. 잔이 서빙되기 전에 미리 말하지 않으면 이미 컵에 꽂혀 나온 빨대를 빼서 돌려보내기에도 위생적으로 곤란하니 먼저 말해야 한다. 아주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하지 않으면 빨대를 거부하기란 정말로 힘들다. 게다가 '로컬 음식점이 얼마나 깨끗하겠어?'라고 생각해서 물컵에 입을 대고 마시기보다 빨대 쓰기를 선호한다면, 나는 조금 격하게 이렇게 생각한다. "플라스틱 마실래, 그냥 마실래." 좀 덜 씻긴 더러움을 마시는 거나 몸속에서 분해되지 않을 플라스틱 마시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럴거면 쓰레기라도 덜 만들게 그냥 마시는 건데, 역시나 합리적이다.


물컵에 자동 딸려 나오는 빨대


유난스럽다. No Plastic 하는 게.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준비물도 필요하고 그 준비물이 다 준비되었더라도 미리 계획하고 챙기고 들고 다녀야 한다. 말도 안 통하는데 바디랭귀지 써서 강력하게 비닐을 거절해야 하고 식당에 자리 잡자마자 물컵이 나오기 전에 종업원보다 먼저 움직여서 빨대 주지 말라고, 제발 주지 말라고 부탁해야 한다. 게을러지고 한 번쯤 그냥 편하려고 하는 마음이 들 때, 내 수고가 덜어줄 비닐의 개수를 산수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쯤이면 극성이다.


아무리 유난이고 극성이어도 살면서 플라스틱을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 욕실 샤워대 옆만 봐도 플라스틱에 담긴 세제와 샤워용품이 빼곡하다. 회의가 끝난 회의실엔 팀장님이 쏜 아이스커피 일회용 컵들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 수만큼 남아 있다. 아무리 유난하고 극성을 떨어 No Plastic 해도 우리는 사실 No Plastic은 불가능하고, 그나마 Less Plastic 정도 실천할까 말까 한 정도이니 조금 더 유난 떨어도 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는 내게 이별이고 슬픔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