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안녕한 아침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던 사람도 태국에 오게 되면 아침형 인간이 된다. 해가 떠오르면 곧 기온이 30도가 돼버리고, 해가 이렇게 강한데도 (심지어 건기인데도) 습도가 50%는 늘 되는 이곳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흠뻑 땀에 젖어버리는 것을 피하고 싶다면 아침 일찍 나서게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집에 거의 갇히는 생활을 하면서, 하루에 한 번은 꼭 동네 호숫가까지 운동할 겸 산책을 나간다.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면 아직 어스름한 바깥을 확인하고 '아직 해가 안 올라왔네?' 하고 꾸물거리다 보면, '아직 안 올라왔을 줄 알았지?' 하고 놀리듯 해가 갑자기 쑤욱하고 올라와 버린다. 아침 산책을 하기로 했다면 눈이 떠지자마자 급하게 뛰쳐나가야 한다. 해가 뜰 기운은 있지만 아직 안 떴을 때, 하지만 곧 떠오를 걸 알 때, 산책하는 발걸음이 경보가 되어 빨라질 때, 꼭 그때 만나게 되는 풍경이 있다.
발우(그릇)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맨발로 줄지어 걸어 다니며 탁발(음식을 공양받는 것)하는 승려들과 그들의 그릇에 먹을 것을 넣어 시주하고 낮은 자세로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무 말 없이 발우를 들고 맨발로 길을 걷는 승려들은 아무런 소리 없이 줄지어 동네 길가를 걷는다. 공양할 사람들이 나와 음식을 보시하고 나서 승려들 곁에 조용히 낮은 자세로 앉는다. 그럼 승려들은 그들을 향해 방향을 돌려 불경을 외우며 기도를 해 준다. 빠른 걸음으로 걷던 나도 그들의 모습을 볼 땐 조용히 속도를 늦추게 된다. 그들의 자연스러우면서도 경건하고 평화로운 아침의 풍경을 깰 수 없어 자세히 지켜보고 싶어도 조심스레 눈길이 가고, 흥미로워서 다가가 무얼 하는 거냐고 물어보려다가도 그 평화로운 그들의 의식 같은 아침의 풍경을 깰까 봐 하지 못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는 그들의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보류된다. 다만 아침 수행을 하는 승려나 음식을 시주하며 자신을 낮추고 기도하며 아침을 경건하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하루가 그만큼 평화롭기를, 안녕하기를 속으로 함께 빌며 지나갈 뿐이다. 조금 욕심부린다면 그들의 기도빨(?)과 좋은 기운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나에게도 조금은 좋은 영향으로 내 하루도 평화롭기를 바라며.
코로나가 닥친 이후, 아침 탁발 승려들의 모습에도 변화가 생겼다. 보통 맨발에 주황색 천을 몸에 입듯이 두른 것 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데 지금은 주황색 혹은 검은색 천으로 만든 마스크를 끼고 아침 골목에서 신자들을 만난다. 불심만으로 이길 수 있는 코로나는 확실히 아니다.
현재(2020년) 기준으로 태국 국민의 약 93%가 불교 신자다. 그렇다고 불교가 태국의 공식 국교는 아니다. 원래 불교가 국교이긴 했는데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기 위해 국교를 해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려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존경하며, 남자들은 일생에 꼭 한번 약 3개월 동안 사원(절)에 가 승려 생활을 한다. 거의 의무적인데 꼭 3개월을 채우지 않고 기간을 조금 조정은 하더라도 지금에도 여전히 한다.
버스나 방콕의 지하철, 지상철 시스템인 MRT, BTS 등에는 승려 우대석 또한 있다. 부처가 열반에 든 해를 기준으로(태국은 정확히 그 해의 다음 해를 기준으로 한다) 하는 불기도 흔하게 쓴다. 기준년이 기원전 543년이어서 서기에 543을 더하면 불기인데 2020년은 불기로 2563년(2020+543)이다. 2563년도의 숫자는 태국에서 흔히 본다. 특히 식료품 가게에서 유통기한 날짜를 확인할 때 당연히 올해나 내년일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혹시라도 묵은 제품이 나와있을까 싶어 올해가 몇 년도라고? 하고 떠올려보게 된다. 이때 떠올려야 하는 숫자는 2020이나 2021이 아니라 2563이나 2564다.
태국에는 사회적 계급이 존재한다. 그런데 계급이 높든 낮든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산다. 그것 또한 불교문화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현재의 내 모습은 내 전생의 결과이니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음 생을 위해 열심히 사는 거다. 이것이 사회적 계급을 공고화 하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고 또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아침에 부지런을 떨지 못해 아침 조깅을 놓친 날이면, '그래도 그 골목에 승려들은 나왔겠지, 사람들은 무릎 꿇고 기도를 했겠지' 하고 궁금해진다. 그리고 당연히 그랬을 거라 생각하면 그들이 내 아침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아침을 열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