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할 수가 없어.'
수년 전 EBS에서 ‘두근두근 학교에 가면’이란 프로그램이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선생님의 해설과 김성주 아나운서님의 진행으로 방송된 적 있습니다.
1학년 어린이들의 공부시간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였어요.
방송 중 서천석 선생님은
"꽃도 봄에 피는 꽃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이 있고, 가을에 피는 꽃이 있고, 겨울에 피는 꽃이 있지요. 어떤 계절에 피든, 꽃의 아름다움은 다르지 않아요."
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어요. 혹여 지금의 내 아이와 다른 아이들을 비교할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표현이였는데, 이 말이 저에게도 몹시 힘이 되었어요. 언어재활사인 저역시 만나는 어린이들의 부모님과 꼭 나누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서천석 선생님의 소아정신과에서 아이들을 만나던 때, '말더듬'을 어려움을 가진 아일 만난 적이 있어요. 절 만나자마자 "병원 싫어!!!!!! 선생님 싫어!!!!!!!" 라고 크게 소리치며, '몹시기린'이라 부르던 기린 인형의 다리를 부러뜨렸던 녀석이예요. 거부와 저항이 컸던 이 꼬맹이가 다행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기 전에 많이 호전이 되어 내심 보람도 컸었지요. 하지만 어느날, 친구가 “야! 비켜!”라고 큰 소리를 치자 그 말을 받아쳐 말을 해야 하는데, 순간 '말을 더듬을 것만 ' 같아 말이 나오지 않았나봐요. 그래서 말 대신 친구를 밀쳐 넘어뜨려버렸지요. 친구가 넘어지니 아이도 많이 놀랐고 이후 자신이 말을 꺼내야 하는 순간마다, 자꾸만 목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었어요. '말을 더듬을 것만 같은' 그 순간 이후로 자신이 '말을 더듬는다'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버린 거지요.
아이가 호전이 되었다고 믿고 있던 부모님은 이런 아이의 모습에 상담 중에 여러 번 가슴을 치셨어요.
말더듬은 갑작스레 또 나타날 수 있는 법이라고, 마음의 힘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면 저처럼 무너지는 일들이 또 있기도 할 것이라고, 아이와 함께 ‘더듬어도 괜찮아.’, ‘때론 더듬을 수도 있다.’라는 것을 수용할 수 있을 활동들을 시작했어요.
서천석 선생님은 아이들이 저 나이 대에 가장 두려움을 많이 갖는다 말씀을 하셨는데요. 당시 저는 아이들의 두려움을 공감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제가 아무리 애를 써도 스스로 풍선을 크게 불지 못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휘파람을 불 수 없었던 것처럼 노력을 해도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단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풍선이, 휘파람이, 구름사다리가, 달리기가, 어려운 것처럼 어떤 찰나엔 말을 '더듬는 것'이 애를 써도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을요. 어려움이 부족함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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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던 어린이들 중엔 언어재활 시간이 끝났는데도 치료실을 나가기 싫어하고, 이곳에서 더 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치료실 안에 있는 동물 모형이나 자동차 등을 들고 나가려고 합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갈 때도, 집에서 색연필이나 인형 등을 꼭 들고 가기도 하지요. 애착에 어려움을 가진 어린이들이 종종 보이는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함께한 즐거움을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이지요.
놀이치료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 아이들에게 상자를 만들어주었어요. 아이들이 좀더 갖고 놀고 싶어 하거나 집에 가져 가고 싶어하는 놀잇감 들을 상자 안에 담아주며
"여기 OO이 상자가 있네. 선생님이 OO이 상자에 OO이 책이랑 장난감 잘 넣어둘게. 다음에 OO이가 오면, OO이 상자에서 꺼내어 놀자." 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상자란 말 한 마디에 치료실 바깥을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거나 떼쓰지 않습니다. 집에 놀잇감을 가져가겠다고 고집도 부리지 않습니다. 너무나 쉽게 저와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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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하고 있는 복지관에서 발달장애아동들을 대상으로 '사회성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한 어린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소리를 크게 지르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원한 것을 얻지 못하면 도망쳐버립니다. 또다른 어린이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욕설을 내내 뱉더니 죽고 싶다며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을 보입니다. 학교에서도 매일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고 합니다.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게 어려워 조용히 혼자 앉아 공룡책만 펼치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너무 놀고 싶어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 단 한 마디도 어려운 어린이도 있습니다.
제각각인 이 어린이들은 그다지 긍정적인 반응들을 주변에서 받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학교에서도 참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지만, 많은 친구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는 교실에선, 이 아이게만 집중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지요.
1학년인 이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수년 전의 방송이 다시 떠오른 것은 지금 전하는 이 일화 때문이였습니다. 방송에서는 oo어린이가 장기자랑이 줄넘기라고 줄넘기를 들고 왔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을 때, 친구의 어려움이 무엇인질 먼저 생각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은 “왜 못해”, “할 수 있어” 대신 , “oo에게 집중!”이라고 외치며 함께 있다는 것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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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할 수가 없어>(유아사쇼타글, 이시이기요타가그림, 북뱅크)에서는 장애를 가진 동생을 둔 형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나는 동생이 좋긴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동생만 챙기고, 뭐든지 느리고 이상하다고 동생을 생각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이 형에게 “나는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할 수" 없다는 진심을 전한 뒤에서야, "똑같을 수 없다"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장애는 오랜 세월, "극복해야할 서사"였어요. 극복한 스토리들이 극적으로 소개되는 일이 많았지요.
그러고보면, 저는 어린 시절 늘 아버지의 장애로 자기소개를 열었어요. 아버지가 장애를 극복하고 얼마나 훌륭한 모습으로 살고 계신지를 이야기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제가 가장 존경해온 분인 건 틀림없지만, 아버지처럼 장애를 극복한 서사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지금도 여전하지만 장애에 대한 편견이 더 컸던 제 어린 시절엔 아버지의 서사로 저는 우리 아버지의 장애는 핸디캡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아요.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일을 해오면서야, 장애는 특별함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특성이란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봄이 아니라 여름에 핀다고 늦는 게 아니고, 여름이 아니라 가을에 핀다고 늦는 게 아니라고. 가을 대신 겨울, 저마다의 계절에 꽃피우는 덕분에 꽃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참 아름답습니다.
(작은책 2022년 11월에 수록한 원고를 수정해 재수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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