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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약방 Oct 18. 2022

코끼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빨간 풍선'과 '숲으로 간 코끼리'

대구의 오래된 동물원엔 제자리에서 하염없이 휘휘, 긴 코를 흔드는 코끼리가 있어요. 


 1970년도에 들어선 동물원은 50여 년 동안 그 자리에서 낡고 좁은 우리에 동물들을 가두어 놓고 있는 곳이지요. 함께 갔던 친구의 말론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코끼리는 똑같은 자리에서 저처럼 긴 코를 흔들며, 맴돌고 있었다고 해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껏 그 코끼리를 만나러 이곳에 찾아온다고 이야기해주었어요. 나무 그늘 하나 없이 콘크리트 위에서 내내 맴돌고 있는 코끼리를 보며 그림책 ‘빨간풍선’(황수민, 상출판사) 속 빨간 풍선이 떠올랐어요. 저도 그 아이처럼 코끼리에게 빨간 풍선을 건네고 싶었거든요.

 그림책 속에서 아이는 부끄러움이 많아 늘 빨간 풍선 뒤에 자신의 얼굴을 숨겨요. 

 “너무너무 부끄러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유치원 재롱잔치 때, 엄마가 건네준 빨간 풍선 덕분에 교실에서도 소풍을 가서도 풍선으로 얼굴을 가릴 수 있었지요. 그러던 아이가 엄마와 우연히 찾은 서커스장에서 자신처럼 부끄러움이 많은 코끼리를 만나게 됩니다. 아이는 코끼리의 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보지요. 그래서, 자신이 갖고 있던 풍선을 코끼리에게 건넵니다. 


 어렸을 때 제가 숨을 수 있던 ‘빨간풍선’은 다름 아닌 책이었어요. 한글을 익힌 다섯 살 때부터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옥상으로 올라가기 전 한 평도 아닌 한 뼘 두 뼘, 저 하나 앉으면 다인 작고 작은 공간에서 혼자 책을 읽었어요. 도시계획으로 막 동네가 새로 생기기 전,  동네에서 가장 먼저 집을 지어  이사하고 난 뒤 한집 두집 다른 집들이 들어서도 저는 친구 없이 책의 세계에 내내 빠져있었어요. 노란 유채꽃밭이 집을 둘러싼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유채꽃밭 너머엔 도살장이 폐허로 남아 있었지요. 

 초등학교에 입학해선, 하굣길에 신발주머니를 흔들며 이야길 나눌 수 있었던 친구를 만났어요. 물론 친구 집보다 우리 집이 조금 더 멀어서, 친구와 헤어진 뒤 서툴게 휘파람을 연습하며 걸어갔지요. 끝내 휘파람은 잘 불 수 없었지만, 하굣길을 따라오던 긴 그림자가 온전히 마음을 쉬던 그늘이었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답니다. 


 그림책 ‘빨간 풍선’의 아이는 코끼리에게 풍선을 건네며 풍선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빨간 풍선은 그림책 ‘빨간풍선의 모험’(옐라마리, 시공주니어)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그저 가볍게 ‘휘~’ 불어본 풍선껌이 풍선이 되어 날아오르다 사과도, 나비도 되었다가 비를 피하는 빨간 우산이 되는 이야기예요. 빨간 풍선의 멋진 변신이지요. 

 분도출판사에서 출판한 그림책으로도 만날 수 있는, 영화 ‘빨간 풍선'(The Red Ballon, Albert Lamorisse, 1956)은 혼자 학교를 오가는 아이를 따라다니는 빨간 풍선과 그 아이의 이야기예요. 

떨어뜨려도 떨어지지 않고 늘 나를 따라오는 빨간 풍선이었지요. 그러다 짓궂은 친구들이 빨간 풍선을 빼앗아 풍선과 아이를 괴롭힙니다. 친구들의 손과 발밑에서 짓밟힌 풍선은 그만 터져버리고 말아요. 하지만 그때, 온 동네, 어딘가에 숨어있었을지 모를 형형색색의 풍선들이 모두 아이에게 모여들어요.

 아이는 가득 모인 풍선들에 몸을 기댄 채 하늘로 날아올라요.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 친구였던 풍선이 사라진 그 절망적인 순간에 풍선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아이와 함께 두둥실 하늘로 떠오르는 장면이 얼마나 가슴이 벅찬지 내내 마지막 장면을 반복해서 보기도 합니다. 

 

 제게 이 세 권의 그림책은 제 곁에도 머무는 하나의 ‘빨간 풍선’ 같아요. 친구의 어려움을 알아보고 풍선을

건네며 그 풍선에 안녕이라고 작별을 고했던 것은 내 어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 거예요. 내가 가진 어려움을 대신했던 ‘빨간 풍선’이 내가 꿈꾸는, 혹은 꼭 필요한 무엇이 되어주기도 하고,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어려움을 알아본 ‘친구’에게도 응원처럼 전하여지길 바란 마음이 아닐까요?

 빨간 풍선을 전해 받은 그림책 속의 코끼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림책 ‘숲으로 간 코끼리’(하재경, 보림)의 코끼리처럼 숲으로 갈 수 있었을까요. ‘숲으로 간 코끼리’는 서커스장을 떠난 코끼리가 동물원 대신 숲으로 옮겨져 그 숲의 일부가 되었단 이야기로 끝납니다. 

 숲으로 간 코끼리가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 눈을 감고 바람을 맞던 순간과 짓밟힌 빨간 풍선 대신 모여든 풍선들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던 아이의 순간이 함께 겹칩니다. 코끼리가 바람을 느끼고, 꽃향기를 맡던 순간과 풍선과 함께 비행하는 아이의 순간은 참 자유로워보여서,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대구의 어느 동물원의 코끼리는 여전히 그늘 하나 없는 뜨거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휘휘, 코를 흔들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겠지요. 누군가 건넨 빨간 풍선이 코끼리 곁을 맴돌며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 작은책 4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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