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커피와 담배' 리뷰
먹고 마시고 말한다. 사람과의 만남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커피와 담배, 그리고 테이블은 대화의 기물이다.(한국인의 기물은 밥과 술이겠다.) 체스판 없이 체스 게임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것들이 빠진다면 대화가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어색한 사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체스의 흑과 백을 번갈아 전진시키듯, 대화에서도 상대방과 소리를 주고 받는다. 완전한 침묵은 만남의 규칙을 위배하는 것이다. 커피잔을 내려놓든 후루룩 소리를 내며 커피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내든 소리를 내야 한다. 만남의 순간 우리는 상대의 음향공명체가 되기 때문이다.
영화 ‘커피와 담배’(2003, 짐 자무쉬)의 주인공은 케이트 블란쳇이나 로베르토 베니니가 아니다. 주연은 커피와 담배이고 조연은 체크 테이블이다. 이들을 앞에 둔 11가지 대화 시퀀스가 옴니버스로 상영된다. 흑백인데다 상업 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아서, ‘극적 대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겐 ‘대화를 위한 대화’를 스크린에서 만나는 경험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예술 영화에 도전했다가 무거운 눈꺼풀에 무너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목부터 짙게 느껴지는 아방가르드의 향기에 마음의 장벽을 더 높게 쌓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으니까 말이다.
영화 중반쯤 당혹스러워졌다. ‘왜 재밌지?’ 예술 영화와는 친해질 수 없다고 단정했던 내가 어느새 피식피식 웃으며 대화가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태우며 나누는 실없는 대화들이 묘하게 경쾌하고 리듬감 있으며 때로는 지적이다. 커피 중독자들이 만나 무의미한 말들을 이어가는 ‘자네 여기 웬일인가?’는 고전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웃음이 터진다. 이탈리아의 국민 배우 ‘로베르토 베니니’의 코미디 연기가 짧은 대본 안에서도 빛을 발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쌍둥이 설을 주장하는 에피소드 ‘쌍둥이’와 친구와의 목적 없는 만남을 끝없이 의심하는 ‘문제없어’ 역시 짧고 유쾌한 선문답집을 보는 듯 하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을 하나 더 꼽자면, 자기 자신으로 등장하는 유명인들이다. 배우 케이트 블란쳇, 빌 머레이, 스티븐 쿠거, 락스타 이기 팝, 잭 화이트, 멕 화이트 등이 본인으로 분해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이어나간다. 덕분에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실제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케이트 블란쳇은 ‘사촌’에서 영화배우인 케이트 본인 역할과, 그녀와 똑 닮았지만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촌 ‘쉘리’ 역을 맡아 훌륭한 1인 2역 연기를 선보인다. 포즈부터 목소리까지 너무 달라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다른 배우로 착각할 정도다. 이 외에도 쥬크박스 선곡 목록으로 은근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뮤지션들의 대화를 담은 ‘캘리포니아 어딘가’와 갑자기 먼 사촌으로 엮이는 영화배우들의 이야기 ‘사촌?’도 눈 여겨볼 에피소드이다.
커피와 담배를 끊으라고 말하는 올곧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불편할 수 있다. 중독의 대명사인 커피와 담배를 예찬하고,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들 없이는 장면이 진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잭이 멕에게 테슬라 코일을 선보이다’와 마지막 에피소드인 ‘샴페인’에 나오는 대사처럼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음향공명체’라면, 누군가와 공명하고 싶은 본연의 외로움은 인간이 대화의 기물을 찾도록 끊임없이 부추길 것이다. 그것이 씁쓸하고 해로울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