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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asha Dec 05. 2020

내가 찾던 그 사람

'마티아스와 막심' 영화 리뷰

* 이 리뷰에는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 이를 빼는 날이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잇몸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이빨을 그만 보내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를 뽑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과 공포였다. 내 입안 속 작은 소용돌이를 부모님이 눈치 채지 못하게 노력해도 결국 치아에 실매듭이 걸렸다. 부모님은 공포에 질린 내 눈을 바라보며 이마를 '탁' 치거나 문을 '쾅' 닫으며 유치의 종말을 알렸다. 그때마다 나는 밀려오는 안도감과 두려움으로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지나면 쏙 빠졌던 치아가  새로운 모양으로 차올랐다. 섭식과 발화를 담당하는 나의 입속은 이렇듯 여러 번의 유실과 진통 끝에 제자리를 찾았다. 내 것이라 여겼던 치아가 사실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갈 것이고, 나의 진짜 치아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아이들은 드물다. 내 것이라 여겼던 취향과 선호가 어쩌면 진짜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어른들 역시 많지 않다. '마티아스와 막심'(자비에 돌란, 2019)은 내가 진정 원했던 사랑이 오래된 친구였다는 사실을 발견한 '마티아스'의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을 다룬 영화이다.  

 

 마티아스와 막심은 오랜 친구이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내왔고, 친구라는 틀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고향 친구들과 휴가를 보내기 위해 머문 별장에서 친구의 여동생이 연출하는 단편 영화에 우연히 출연하게 된다.

 그들이 갇혀 있는 친구라는 프레임 안에는 다양한 타인이 공존해왔다. 서로의 존재감은 부모님, 여자 친구, 고향 친구 등 두 사람을 둘러싼 관계망 속에서 적당한 균형을 이뤄왔다. 친구의 동생이 연출한 영화는 그들에게 새로운 프레임을 선물한다. 카메라는 오롯이 마티아스와 막심만을 비춘다. 그들을 제외한 누구도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두 사람만을 오롯이 비추는 프레임 안에서 오랜 친구는 서로의 입술을 진하게 포갠다.


 익숙함을 해체하는 작업은 언제나 진통이 따른다. 절제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틀을 깨부수는 작업은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마티아스는 완벽히 문법적인 사람이다. 그는 대도시 높은 빌딩에 자리 잡은 로펌에 다니는 변호사이고, 사랑 넘치는 어머니가 있으며, 아름답고 친절한 여자 친구와 결혼을 꿈꾸고 있다. 마티아스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일상생활에서도 잘 드러난다. 친구들의 사소한 맞춤법 실수를 강박적으로 짚어내고, 가장 친한 친구들과 어울릴 때조차 한 발짝 물러서서 상황을 관조한다.

 이에 반해 막심은 정도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어머니는 알코올 의존증을 오랜 기간 앓았으며 막심에게 학대도 서슴지 않는다. 막심의 얼굴에 난 커다란 흉터는 막심의 상처 입은 내면을 짐작케 한다.  그는 곧 정든 고향을 떠나 호주에서 바텐더 일을 하며 밑바닥부터 새롭게 시작할 계획이다.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막심과 달리 마티아스는 커다란 혼란에 빠진다. 영화를 찍은 다음 날 마티아스는 새벽에 홀로 나와 호수에서 수영을 한다. 전날, 물에 들어가 노는 친구들을 바라보기만 했던 그는 이제 광활한 호수에 스스로 몸을 담그고 갈 곳 없이 헤엄 친다. 물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티아스가 살아가는 삭막한 세계를 휘감아 부드럽고 유연하게 그의 본능을 일깨운다. 별장으로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마티아스는 그의 목적대로 방향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호수에 몸을 맡기자 물이 흐르는 대로 속절없이 흘러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마티아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물의 세계에서 일상을 대변하는 아스팔트의 세계로 돌아오자, 마티아스는 놓쳐 버린 운전대를 다시 잡으려 애쓴다. 막심과 함께하는 자리를 되도록 피하려 하고 마주치기라도 하면 퉁명스럽게 대한다. 마티아스의 변화를 눈치챈 주변 사람들이 그를 나무랄수록, 마티아스는 들끓는 슬픔과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막심이 호주로 떠나기 전까지만 참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고 조금은 이상하고 신경질적이게 감정과 이성의 균열을 심화시킨다.

 막심이 호주로 떠나기 직전 열린 환송회에서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린다. 마티아스는 그를 덮쳐오는 거대한 감정의 쓰나미에 결국 굴복하고 만다. 마티아스와 막심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진한 키스를 한다. 창밖에서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두 사람이 이제 연인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에 완벽히 들어오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막심과 마티아스는 그들을 가둬온 세상의 프레임에서 나와 두 사람이 만들어갈 이야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준비를 마친다. 막심이 호주로 떠나는 날 현관문을 열자 마티아스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환한 미소로 그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마티아스와 막심’은 진정한 미소를 찾으려는 청춘의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기록이다. 내가 찾던 그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결국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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