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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Mar 27. 2020

파티 게하의 킬링 포인트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

주변에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를 했던 친구들이 꽤 있다. 이번 여행의 초반부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 C도 애월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반년 동안 스태프로 일한 후 제주의 매력에 빠져 지금껏 제주에 살고 있다.


서울에서 할 일이 꽤 많았던 지라 원래 이번 여행을 1박 2일로 계획했었다. 나는 여행은 길든 짧든 소박하든 호화롭든 가고 싶을 때 가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조금 빠듯해도 당장 바닷바람을 쐬고 싶다면 일을 짊어지고라도 여행을 가야 한다고 믿기에, 아니, 적어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번에도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첫날 C의 도움으로 제주 공항에서부터 협재, 금능 해변을 지나 신창 해안 풍차 도로까지 해변 드라이브를 하고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서 작은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내일 떠나기엔 너무 아쉬운데? 더 머물러야 할 수도 있겠다.

 

맑은 날 신창해안풍차도로의 노을


마침 친구가 내일 저녁에 자기가 일하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가 있을 거라고 했다. 친한 후배가 친구들이랑 제주도 여행을 와서 같이 파티에 가기로 했다고, 나도 같이 가자는 거였다. 결국 그날 밤 목요일에 예정되어 있던 항공 스케줄을 토요일 오전으로 변경했고, 오누 게스트하우스의 저녁 파티에 참가하게 되었다.




사실 게스트하우스 파티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었다. 몇 년 전 게스트하우스 투숙객이 스태프에게 살해되는 등의 사건이 있었고, 현지 도민이나 1세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은 ‘파티’하는 게스트하우스라는 이름 아래 여행객들의 유흥 문화를 만들어낸 후발 숙박 사업자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평소 숙소를 고를 때 조용하고 깔끔한 곳을 선호하는지라, 평소의 나라면 제주도에서 파티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친구라서, C가 일했던 곳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와 함께라면 기꺼이 여행지에서 색다른 경험을 시도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다른 친구는 C를,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고 세심한 관심을 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한동안 C와 단둘이 만나거나 소수의 친구들과만 만나서 잊고 있었는데, C는 역시 함께 있는 사람들을 참 편하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어느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친구의 모습에서 색다른 프로페셔널리즘을 느꼈다.



편안한 사람
                       Sophy

친하지 않아도
선뜻 손 잡아줄 사람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지지해 줄 사람

아픈 기억을 들추지 않고도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

언제나 그곳에 있는 사람
항상 나를 봐주는 사람





게스트하우스 파티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따뜻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오갔던 오누 게스트하우스의 밤은 다양한 사람들의 색깔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방학을 맞은 대학생, 여행 스냅사진작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일거리가 끊긴 여행 인솔자(이자 배우), 퇴사 후 세계여행을 계획했다가 바이러스로 인해 일정을 취소하게 된 전직 간호사까지.. 갑작스러운 바이러스의 창궐로 어쩌면 어쩔 수 없이 잠시 생활에 쉼표를 찍어야 했던 사람들이 모여 잔잔하고 소소한 대화를 이어 갔다.


파티에 참여하기 전 까지만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연한데 타인들과 어울려도 될까 고민이 많았는데,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파티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된 듯하다.




다음 날 또 요가를 하려다가 마땅한 장소가 공용공간밖에 없어 고민하다가 그냥 방을 같이 썼던 투숙객 A와 수다를 떨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대화가 편안하고 즐거워서 커피 맛이 유명하다는 근처 카페에 같이 마실을 나갔다.

 

가는 길에 만난 댕댕이
커피 맛 짱 분위기 짱 애월 제레미 카페


2-3년 정도 주기로 잠시 일을 쉬고 여행을 떠나곤 한다는 A는 간호사이자 여행 블로거였다.


병원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기간에는 일의 강도도, 피로감도 클 테지만, 주기적으로 쉬어 가는 시간을 통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간호사이자 여행가! 너무나 멋진 두 직업의 조합이다.





산내음, 바다내음만 기대하고 왔던 제주에서 뜻밖에도 나를 더욱 설레게 했던 것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소소한 파티는 여느 여행의 킬링 포인트가 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코로나를 극복하고 다시금 훌쩍 떠나도 좋을 때가 온다면, 행지에서만큼은 마음을 열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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