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8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 속 '제주 해녀'가 궁금하다면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책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by 이한기 Mar 15. 2025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에서 애순의 엄마인 전광례(염혜란 배우)는 해녀로 나온다.<폭삭 속았수다> 드라마에서 애순의 엄마인 전광례(염혜란 배우)는 해녀로 나온다.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에서 애순의 엄마인 전광례(염혜란 배우)는 해녀로 나온다.<폭삭 속았수다> 드라마에서 애순의 엄마인 전광례(염혜란 배우)는 해녀로 나온다.
ⓒ 강길순ⓒ 강길순
ⓒ 강길순ⓒ 강길순
ⓒ 북하우스ⓒ 북하우스


넷플릭스 같은 OTT 드라마는 웬만하면 시리즈가 다 끝난 뒤에 몰아서 한꺼번에 본다. 그런데 가끔은 드라마가 끝나기 전에 보기도 한다.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도 이처럼 방영 도중에 시청하기 시작했다. 1회에 애순의 엄마인 해녀 전광례(염혜란 배우)의 '물질'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게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10년 전에 펴낸 책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2015년, 북하우스)이다. 이 책은 제주 해녀 삼춘들의 이야기다. 제주 출신 서명숙이 애정을 갖고 취재하고 써내려간 '수작'이다. <폭삭 속았수다> 애청자 중에 제주 해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당시 내가 썼던 서평의 일부를 소개한다.




"책을 받아든 순간, 멈칫했다. 제목이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이었다. 사연 많은 제주해녀 이야기를 '숨'이란 단어 하나에 압축해놓았다.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제주해녀들의 공통분모 정점에 왜 '숨'을 놓아두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여러가지 '숨'을 느꼈다."


"바닷속에서의 '숨'은 해녀들에겐 생명줄이다. 또한 숨 길이는 어획물의 차이로 이어지는 해녀들의 기량이다. 수심 10m가 넘는 깊은 바닷속은 숨 길이가 긴 상군과 대상군의 몫이다. 숨 길이가 짧은 하군과 중군은 상대적으로 얕은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 철저히 기량에 따른 영역 구분이다. 서로의 영역을 탐하지 않는 게 해녀들의 '불문율'이자 생존 방식이다."


"(입으로 쉬는) 물숨은 죽음을 뜻하지만, 해녀들은 바닷속에서 다른 숨을 쉰단다. 가파도에 사는 70대 해녀 할망의 말이다. "물에 들어갈 때 쉬는 숨이 있고, 물건을 잡을 때 쉬는 숨이 있고, 나올 때 쉬는 숨이 있어요. 한 번 물에 들어가면 15~16번 정도는 숨을 쉽니다. 입으로 내쉬면 물을 먹게 되니까 가슴으로만 쉬지요. 물밖으로 나와서 진짜 입으로 내쉬는 거지." 물밖으로 나와 비로소 숨을 쉬며 내는 소리를 '숨비 소리'라고 한다. "호오이, 호오이~.""


"고무옷이 해녀들의 갑옷이라면, 테왁과 빗창은 무기다. '물에 뜬 바가지'라는 뜻의 제주어인 '테왁'은 물 위의 부표다. 테왁은 해녀들의 구명선이자, 표지판이요, 길동무다. 테왁에는 채취한 해산물을 담아두는 그물 주머니 '망사리'가 매달려 있다. 물 위로 떠오른 해녀들은 바닷속에서 건진 해산물을 망사리에 넣고, 테왁에 의지해 숨비 소리를 낸다. 슬픈 이야기지만, 바닷속에서 떠오르지 못한 해녀들의 테왁은 주인의 실종 위치를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해녀들의 또다른 무기 '빗창'은 쇠를 벼려서 만든 꼬챙이다. 바닷속에서 가장 값나가는 전복의 앙다문 입을 벌리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해녀들의 든든한 지원군인 빗창이 때로는 비창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제대로 된 순간에 찌르지 못하면, 전복이 빗창을 꽉 물고 놔주지를 않는다. 그런데 전복과 빗창이 아까워 애를 쓰다가 물숨이 다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단다. 전복 바위 옆에서 숨을 거둔 해녀들이 대부분 그런 경우라고. 보목리 중군 해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8년 동안 제주올레길을 내면서 가장 많이 만났던 이들이 '해녀 삼춘들'(제주에서는 나이 많은 어른을 '삼춘'이라고 부른다)이라지만, 서명숙에게 그들은 모순적 존재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면서도 가부장제와 남아 선호사상이 여전하고, 지나가는 올레꾼에게 밀감을 그냥 줄 정도로 인심이 좋지만, 해안가 소라 하나라도 가져가면 목청을 돋우는 게 해녀 삼춘들이다."


"해녀 공동체의 더불어 사는 모습도 인상 깊다. 빈 망사리를 메고 기가 죽어 바다를 나오는 초보 해녀에게 고참 해녀들이 자기가 잡은 문어, 전복, 소라를 넣어 망사리를 채워주는 '정'이 살아있다. 난다 긴다 하는 상군 해녀들도 나이를 먹으면 물질이 버거워진다. 그런 해녀 할망들을 위해 공동체가 만든 노후보장책이 '할망바다'다. 수심이 얕고 해산물이 풍성한 바당밭을 지정해 해녀 할망들만 작업하게끔 한 것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가파도에는 아직도 '할망 바당'이 건재하단다."


"육지 사람에겐 낯설지만, 제주 해녀들에게는 정겨운 단어가 '불턱'이다. 해녀 문화를 잘 보여주는 불턱은 말 그대로 '불을 쬐는 곳'이다. 해녀들은 이곳에서 해녀복을 갈아입고, 중간에 휴식도 취한다. 뿐만 아니다. 물질이 끝나면 도란도란 둘러앉아 몸을 녹이며 수다를 떠는 사랑방 역할도 한다. 작업 일정에 대한 논의부터 소소한 집안 이야기와 동네 소문들까지 오가는 불턱 사랑방에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불턱에서 나눈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 자유롭게 이야기하되, 갈등의 불씨는 없애는 해녀 공동체의 지혜다."


""여자로 나느니 쉐로 나주." '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는 제주 해녀들의 속담은 그들의 고단한 삶을 웅변한다. 이승에서 태어나 저승을 일터로 삼아야 하는, 외로운 소나무 같은 존재, 해도 달도 없는 날에 태어난, 사방이 물로 뱅뱅 둘러싸인 고립된 섬에 사는, 세 끼를 굶고 일해서 번 돈을 서방님 술값에 쓰는, 소로도 못 태어나서 한탄스러운 존재. 그러나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해녀들은 자신들의 노동으로 가정을 꾸리고 마을을 위기에서 건져내고 제주도를 먹여살렸다."



#폭삭속았수다 #숨나와마주서는순간 #제주해녀


ⓒ 강길순ⓒ 강길순
ⓒ 강길순ⓒ 강길순
ⓒ 강길순ⓒ 강길순
ⓒ 강길순ⓒ 강길순


매거진의 이전글 김성근은 왜 야구를 '시간, 운명, 심장'이라고 했는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