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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Jul 22. 2017

잘 먹고 잘 사는 자취생(自炊生)을 위하여

자취생 기초체력 기르기

당신은 부엌은 어떠합니까? 당신의 자취생(自炊生)은 안녕하십니까?


'자취방', '자취생'이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이제껏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얼마 전, 글을 쓰는 데 사용할 용도로 처음으로 인터넷 사전에 '자취'라는 말을 검색해보았다. 그동안 어렴풋이 자취의 '자'자는 '스스로 자(自)'자이고 '취'자는 '취식(取食)하다'할 때의 '취(炊)'자인 줄은 눈치를 채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풀이를 처음으로 제대로 읽어보니 어딘가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포털 사이트의 국어사전에 따르면 '자취(自炊)하다'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취하다 [自炊하다]:  (사람이, 또는 사람이 어디에서) 가족을 떠나 혼자 지내면서 손수 밥을 지어먹고 생활함.

- 다음 국어사전


'자취하다'는 말에는 '스스로 먹다'의 의미를 넘어 이별과 고독, 생존과 자립의 의미가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ㅇㅇ씨는 어디 살아요?'라는 질문에 '저는 ㅇㅇ에서 혼자 자취해요'라고 대답할 때마다 은근히 배어 나오는 씁쓸함은 국어사전이 버젓이 인정할 정도로 검증받은 씁쓸함이었다. '자취하다'라는 표현의 용례는 또 얼마나 처량하였는지, 하나같이 초라하고 가엾어서 예문을 읽다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 현은 자취방을 구할 적마다 싸구려 방이어야 했고, 또 곧 죽어도 독방이어야 했기 때문에 그의 방은 누추하고도 비좁았다. (박완서, 오만과 몽상 중)

- 공장에 다니는 누님하고 자취를 하는 학생이 무단결석을 이틀이나 하고 있었다. (한승원, 땅가시와 보리알 중)

-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알아준다더니 나처럼 혼자 사는 진영이만이 자취생의 설움을 이해해 주는구나! (다음 국어사전)

- 그는 서울에서 혼자 자취 생활을 한 10년 하더니 비리비리하게 말라서 별명이 이쑤시개다. (다음 국어사전)

- 자취생인 명훈이는 조금이라도 모가 큰 두부를 사려고 한다. (다음 국어사전)

- 어머니는 혼자 자취하며 고생하는 내 친구를 안타까이 생각하셨다. (다음 국어사전)


하는 김에  '자취생'이라는 단어도 검색해본다. 


자취생 [自炊生] : 가족을 떠나서 손수 밥을 지어먹으면서 통학하는 학생. (다음 국어사전)


'자취생' 할 때의 '생'이 '학생(學生)'할 때의 '생'으로 풀이된 것이 재미있다. 물론 자취생이 처음 자취생이 될 때에는 학업을 위해 보모님 곁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화와 결혼연령의 상승 덕에 서울을 비롯한 대한민국 곳곳에는 학생이 아닌 자취생이 늘어났고 이 숫자는 앞으로 늘면 늘었지 줄기는 어려울 터였다. 당장 나만해도 서울 자취생활 10년 중 학생이 아니었던 시간이 절반이다. 공교롭게도 올해가 학생이 아닌 자취생으로서의 시간이 더 길어지기 시작하는 분기점이다. 자취생활 10년 차의 오만과 자부심을 담아, '자취생'의 정의를 새로이 내려본다.


자취생 [自炊生] : 가족을 떠나서 스스로 먹는 일을 해결면서 삶을 꾸려나가는 모든 삶의 형태.


삶의 형태에 공간이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자취생'이라는 집단도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을 주거방식의 공통점을 기점으로 묶어놓은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약 30%를 자치하는 1인 가구의 시대에 가족을 떠나 혼자 먹고사는 모든 이를 처량하고 위로해야 할 동질한 집단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한 분류방식이 아니다. 


분명 자취생의 부엌은 비좁고 허술한 구석이 많으며 자신의 삶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자취생이 살뜰히 자기관리를 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놀아도 늦은 밤이 되면 적막 속에서 원인 모를 서러움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의 한계를 공간의 한계로 한정 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1평보다 작은 부엌도, 1구짜리 전기레인지도, 수박 반 통도 들어가지 않는 작은 냉장고라도, 그러한 조건들로 자취생(自炊生)의 가능성을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조금 힘들고 외롭더라도, 자취방과 자취생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자취생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자취생이지만 잘 먹고살아요, 너무 잘 해 먹어서 탈이에요~"라고 말하면 믿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식으로 맞닥뜨리는 대표적인 질문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내가 지난 10년간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공부하고 얻어낸 해답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요리를 시작하는 자취생이 맞닥뜨리는 질문 4 가지>


질문 1.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더 싸다?

질문 2. 요리를 하면서도 돈을 아끼려면?

질문 3. 주방 살림살이가 많이 필요하지 않나?

질문 4. 이걸 다 어떻게 수납하나?





질문 1.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더 싸다?


혼자서 자취를 한다고 말하면 나의 식생활을 걱정해주는 친절한 언사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혼자 살면 밥은 잘 못 챙겨 먹겠네?" "부모님이 밑반찬 같은 건 챙겨 주셔?"하는 식이다. 이들의 걱정과 친절에는 감사하면서도, 나는 이에 전혀 걱정할 것 없다고 자신감 있게 대답한다. 아침도 간단하지만 꼭꼭 챙겨 먹고 영양 균형도 맞추려고 노력한다고. 그러면 가끔 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자취하면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더 싸지 않아?"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칼 같이 '그렇다 또는 아니다'라고 대답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분명 해먹는 것이 사 먹는 것보다 비싼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김밥이나 백반 정식같이 손이 많이 가고 다양한 재료가 필요한 요리와 제육볶음이나 칼국수, 콩나물국밥 등 밖에서 만원 이하의 비교적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사 먹는 것이 만들어 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물가가 싼 대학가에서 자취하고 있는 대학생이라면 더더욱 요리를 할 유인이 줄어든다. 학교에서는 3~4천 원 대에 학식으로 정찬을 먹을 수 있을 터이고, 학교 밖이라 할지라도 외식 물가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편, 파스타처럼 재료 원가에 비해 가격이 고평가 된 외국요리의 경우 집에서 만드는 것이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특히 요즘처럼 외식 물가가 하늘로 치솟은 때에는 더욱 그렇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마포구인데, 집 근처에서 파스타를 먹으려면 평균 만 오천 원 정도는 지불하게 된다. 하지만 그 원가를 따져보자면 어째서 한식에 비해 유럽 요리의 외식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것인지 갸우뚱하게 될 때가 많다.


파스타 중 재료가 단순한 축에 속하는 알리오 올리오나 까르보나라를 살펴보자. 소금과 후추를 제외하면 알리오 올리오의 기본 재료는 올리브유, 파스타, 마늘뿐이다. 까르보나라의 경우도 올리브유, 베이컨(판체타를 쓰면 가격이 더 높아질 것이다), 치즈, 달걀노른자 정도로 재료가 단순하다. 이 두 파스타의 원가는 아주 고급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은 5천 원을 넘기기가 어렵다. 꼬꼬뱅(와인에 졸인 프랑스의 닭요리)을 정말 먹어보고 싶었는데 비싼 레스토랑 가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만들어먹게 된 일도 있었다. 블로그 검색을 해보니 레스토랑에서는 닭다리 3개 정도 되는 양에 이만 원은 넘는데, 집에서 해 먹으니 볽음탕용 닭 한 마리가 6천 원, 싸구려 와인이 3천 원, 당근과 양파, 샐러리 같은 채소가 몇 천 원 하는 정도였다. 


한편, 원가에 비해 비교적 높은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폐업하여 바뀌곤 하는 집 주변의 식당가를 거닐다 보면 식당 운영은 단순 재료비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고 씁쓸해지곤 한다. 부동산 앞을 지날 때마다 어마어마한 상가 가격과 월세에 놀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쨌든, 집 주변의 외식물가가 비싸거나 1만 원 이상의 요리, 외국 요리를 먹는 경우에는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원가 같은 것을 차치하고서도 요리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돈으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건강에 관련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요즈음의 외식문화 속에서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단백질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면서 동시에 저염, 저당분의 식사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치솟는 월세와 원재료 가격의 폭등으로 인해, 많은 식당들이 사시사철 좋은 재료와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들을 맞이 하기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맵고 짜면서 달달한 요리가 지배하는 식당가 문화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가끔씩 먹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러한 요리를 매일 먹는 것이 건강에 좋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집밥이 답이다' 같은 캐치프레이즈가 유행하게 된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가족이 만들어주는 집밥을 먹을 수 없다면 내가 스스로 집밥을 만들어먹는 수밖에 없다.





질문 2. 요리를 하면서도 돈을 아끼려면?


대형마트에 가면 슬픈 기분이 들 때가 자주 있다. 첫째는 식료품 물가가 너무 올라서이고, 둘째는 많은 상품이 최소 2인 이상의 가정을 겨냥하여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사과가 먹고 싶어 사과를 조금 구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분명 고향집의 부모님은 식후에 사과 한 알은 드실 정도로 사과를 풍족하게 드시고 계셨는데, 서울의 대형마트에서는 사과가 네 알에 9천 원에 팔리고 있었다. 한 알에 이천오백 원 정도이니, 도저히 그 가격에 사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편 이것의 네 배 정도 되는 양인 사과 한 박스는 시장에서 2~3만 원 대에 판매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샀다가는 보관할 장소도 여의치 않고 다 먹지 못해 버리는 데 괜한 음식물 쓰레기봉투나 낭비하게 될 것이 뻔했다. 사과 네 알 9천 원과 한 박스 3 만원 사이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자취생은 과연 어떻게 식재료비를 절약할 수 있을까?


-원칙 1. 음식물을 낭비하지 않는다


1) 계획을 세워 신선한 재료를 소량 구매한다.

식재료를 구매할 때에는 필요한 재료를 적당량 사는 것이 중요하다.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식생활 습관과 요리 습관, 재료의 성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계획적인 소비가 필요한 품목은 상하기 쉬운 채소나 고기, 유제품류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요리를 먼저 결정하고 그다음 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장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여유로운 자취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때그때 최소한의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간편한 요리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자주 냉장고 청소를 해서 버림받고 썩어가는 재료가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Tips.

- 고기는 냉장실에 넣어 두어도 며칠 안에 금방 상하게 된다. 구매 이후로 이틀까지만 냉장 보관하고 그 이후는 냉동 보관하도록 한다.


- 달걀은 유통기한이 매우 긴 편에 속한다. 신선한 달걀을 냉장 보관한다면 구매한 시점을 기준으로 한 달은 안전하다.


- 냉장실에서 비교적 긴 기간 보관 가능한 채소는 주로 질감이 단단하고 전분 함량이 높거나 수분이 적은 것들이다. 당근, 양파, 감자, 호박은 냉장실에서 수 주 단위로 오래 버틸 수 있다. 과일 중에서는 질감이 단단한 사과나 배가 냉장실에서 오래 버틴다. 이런 과일은 조금 쭈글쭈글하거나 덜 싱싱해도 곰팡이가 생기지는 않아서 그럭저럭 해치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 질감이 부드럽거나 수분이 많은 채소는 쉽게 물러지거나 곰팡이가 생긴다. 대파, 토마토, 가지, 오이 등이 그렇다. 하지만 신선한 제품을 구입하면 생각보다 오래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틀어, 신선하고 단단한 토마토는 야채칸에서 2주 정도는 거뜬히 버틸 수 있다. 자두, 포도, 복숭아 등 껍질이 얇은 과일은 금방 터지거나 물러져서 상할 수 있으니 빨리 먹도록 한다.


- 냉장실 청소를 하기 좋은 메뉴에는 볶음밥과 카레가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재료에 제한이 없고 덜 싱싱한 상태의 재료라도 열로 조리하고 간을 함으로써 맛있고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다.



2) 냉동실을 활용한다.

냉장실에 공간이 부족하거나 쓰지 못한 재료를 바로 사용할 수 없을 때의 해답은 바로 이들을 냉동 보관하는 것이다. 냉동보관을 하면 재료의 보관 가능 기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예를 들어 냉장실에서 2~3일 정도 보관 가능한 고기는 세 달 정도(냉동보관 상태에 따라 늘거나 줄 수 있다) 보관이 가능하다. 주의할 점은, 냉동보관이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재료가 따로 있으며 냉동보관을 잘 하는 방법을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Tips.

냉동고 화상(freezer burn)에 주의한다:

냉동고 화상은 냉동보관 중인 재료의 수분이 지나치게 증발할 때 발생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원칙은 크게 두 가지로,  첫쨰, 냉동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과 둘째, 재료의 표면이 공기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지키기 위한 실천법을 나열해 본다. 


 (1) 냉동실 온도를 유지하는 법: 냉동실 문을 자주 열지 않는다 / 재료를 차게 식힌 후 냉동한다 / 너무 많은 재료를 한꺼번에 냉동하지 않는다 / 냉동실이 70% 정도 가득 찬 상태를 유지한다 / 냉동실 온도를 -18도씨 이하로 설정한다.


 (2) 재료 표면의 공기 노출을 줄이는 법: 비닐백이 나 스티로폼 팩, 알루미늄 포일로 대충 싸는 대신 제대로 된 냉동보관 용기를 사용한다 / 지퍼백(1차)과 또 다른 지퍼백 또는 플라스틱 용기(2차)를 사용하여 이중으로 재료를 감싼다 / 지퍼백이나 비닐백에 재료를 담은 후 진공포장을 하듯이 공기를 빼내고 재료의 표면을 포장재에 밀착시킨다.


- 신선한 제품을 냉동하기보다는 냉동된 제품을 구매하여 냉동 보관한다 : 

급속 냉동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정에서 직접 냉동한 것보다는 공장에서 냉동한 제품의 품질이 월등히 좋아졌다. 블루베리 등의 과일, 브로콜리나 당근 등을 얼린 채소 믹스, 닭고기나 소고기 등 각종 고기는 급속 냉동된 제품을 사서 필요할 때 쓰는 것이 편리하다. 나의 경우, 냉동실에 항상 냉동 닭가슴살을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전자레인지의 해동 기능을 사용하여 해동한 뒤 요리한다.


- 냉동시키기에 적절한 식재료:

파, 마늘, 고추, 생강, 고기, 베이컨, 버터, 단단한 치즈, 빵, 밥(밥을 지은 후 충분히 식혀서 한 번에 먹을 만큼 비닐로 밀봉하여 냉동한다)


- 냉동시키기에 적절하지 않은 식재료:

달걀(날달걀과 익힌 달걀 모두), 수분이 많은 채소나 과일(오이, 배추, 무, 양파, 피망, 감자, 샐러리, 사과, 레몬, 수박 등), 요구르트, 크림, 부드러운 치즈, 마요네즈


- 재료의 수분을 충분히 제거한 후에 냉동한다: 

내가 냉동실에 항상 구비해 두는 재료에는 대파, 마늘, 고추, 생강, 베이컨, 버터, 밥이 있다. 이중 대파와 마늘, 고추, 베이컨은 항상 깨끗이 씻어서 손질한 후 키친타월로 물기를 닦고 실온에 표면을 말린 후 냉동실에 넣는다. 표면에 수분이 많을 경우 이것이 얼어서 팽창할 때 재료의 형태를 변형시켜 해동 시의 식감과 맛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생강은 껍질을 벗기고 잘게 다져서 지퍼백에 넣어서 보관한다.


- 음식물쓰레기도 냉동 보관할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냉동실에 보관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꽤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갖가지 식재료와 음식물 쓰레기를 냉동실에 한데 보관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부감에 동의를 하면서도, 음식물 쓰레기를 냉동 보관하는 것이 무지막지하게 편리하기 때문에 나는 어느덧 이런 거부감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냉동 보관하고 있다. 나의 자기 합리화 기제는 이렇다. “쓰레기가 되기 전에는 다 똑같은 음식물 아니었나?” 


물론 음식물 쓰레기를 냉동 보관하기 위해서 유념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단단히 밀봉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비닐봉지를 꽁꽁 돌돌 만 다음에 집게로 꼭 묶어서 음식물쓰레기가 새지 않게 한다. 냉동실에 공간이 있다면 플라스틱 통으로 이중 보관하는 것도 좋다. 둘째는 국물은 따로 빼고 건더기만 쓰레기봉투에 넣는다는 점이다. 미처 다 얼지 못한 음식물 쓰레기 국물이 냉동실 벽에 얼어붙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은 쓰레기가 생기자마자 바로 봉투에 담아서 얼려야 한다는 점이다. 갓 재료를 다듬었거나 식사를 만든 상태에서는 쓰레기와 음식의 경계가 모호하다. 바로 이때 재빨리 음식물 쓰레기 정리를 하면 더러운 쓰레기를 식재료와 함께 보관한다는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원칙 2. 싸게 구입한다.


1) 대용량으로 구매해도 되는 재료는 대용량으로 구매한다.

모든 재료는 많은 양을 한꺼번에 구입할수록 싸다. 자신이 자주 먹어서 빨리 많이 먹을 수 있거나 제품 자체의 보관기간이 긴 경우, 결정적으로 이를 보관할 공간이 있는 경우에는 대용량 구매가 비용을 아끼는 데 효과적이다. 내가 대용량으로 구입하는 제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달걀: 달걀은 무조건 한 판을 산다. 자주 먹을 뿐 아니라 냉장실에서 최소한 달은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 냉동 닭가슴살: 냉동 닭가슴살(주로 2kg짜리를 산다), 버터 같이 냉동실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재료는 대용량으로 산다.

- 참치캔, 두유: 참치캔과 팩 두유는 실온에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자주 섭취하므로 한 번에 많은 양을 구입한다.


2) 통조림 제품과 냉동 제품을 구매한다.

통조림 제품이나 냉동 제품은 유통과정에서 냉장 이동과 같은 별도의 비용이 드는 과정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냉장 판매되는 제품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예로, 집 근처의 대형마트의 경우 냉장 닭가슴살(500g짜리)의 가격은 100g 당 1200원인 반면, 냉동 닭가슴살(2kg짜리)의 가격은 100g 당 600원으로 2배 가까이 저렴했다.


3) 재래시장과 마트, 인터넷 등 다양한 구매처를 적절히 활용한다.

어떤 제품은 대형마트가, 어떤 제품은 재래시장이 싸다. 예를 들어, 청과물은 대체로 재래시장이 마트보다 훨씬 저렴하다. 하지만 유제품, 육가공품 등의 가공식품은 각종 브랜드가 치열하게 매가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대형마트가 저렴하다. 모든 제품군에서 인터넷 구매가 더 저렴한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제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며 배송비가 붙을 수 있다는 점, 소량 구매가 어렵다는 점에서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4) 단백질은 달걀과 닭가슴살, 지방이 적은 돼지고기로 충당한다.

자취생이 식단을 짤 때 유의해야 하는 점은 자신이 단백질을 적절하게 섭취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때의 고민거리는 아무래도 가격이다. 마트의 고기는 왜 이렇게 비싸게 느껴지는지. 해결책은 달걀과 냉동 닭가슴살, 앞다리살 등 지방이 적은 돼지고기(삼겹살과 특수부위는 돼지의 다른 부위보다 가격이 월등히 비싸다)를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월급이 들어온 날과 유난히 우울한 날은 소고기를 사 먹음으로써 삶의 만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5)'공짜'에 대담하게 행동한다.

구매 사은품, 직장 야유회에서 남은 제품 등 공짜로 생기는 식재료를 부끄럼 없이, 적극적으로 획득한다. 부모님 댁 방문을 통해 밑반찬을 비롯한 각종 식재료를 얻어올 수도 있다. 다만 직장인은 이 경우 적절한 용돈을 드려서 부모님을 흡족하게 만들어드리는 미덕이 필요하다.





질문 3. 주방 살림살이가 많이 필요하지 않나?


아무리 냉장고에 좋은 재료가 있다고 한들, 정작 이것을 조리할 도구가 마땅치 않으면 요리를 할 기분이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삼겹살을 구워 먹고 싶은데 집게와 가위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썰어 먹어야 하나? 


한편, 이것저것 필요한 주방 용구를 사 모으다가 주방 살림이 너무 많아져도 문제이다. 자취생의 슬픈 숙명 중 하나는 평균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 불편한 구석이 있다거나, 전세로 살고 있는데 이를 월세로 돌리라는 압박이 있거나,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는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에는 그동안 펼쳐놓은 삶의 흔적을 모조리 거두어들이고 새로운 방으로 터전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살림살이를 적게 유지하는 것이 우월 전략이다. 살림살이가 적으면 새로운 집을 구할 때 작은 평수에서 큰 평수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으며 이삿짐을 옮길 때에도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자취생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니멀리스트로서의 라이프스타일을 견지하며 살아간다. 평범한 자취생이 취미로 피규어나 악기, 책, 옷 따위를 모으는 것이 취미라고 소개하면 우리는 이러한 수집 행위 이면에 굳건한 결심이 존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취생에게 수집 행위는 자신의 삶의 영역을 수집물에게 내어주는 자기희생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주방 살림살이를 늘리는 것 또한 자취생에게 어느 정도의 결심을 요한다. 한편으로는 적절한 주방 용구가 없으면 요리에 가까워지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정답은 하나다. 꼭 필요한 주방 용구만 잘 선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요리 재료 또한 필요한 것부터 차근차근 모으도록 한다.


1) 계량컵(measuring cup)과 계량스푼(measuring spoon)

계량컵과 계량스푼. 다 합쳐 오천 원 정도 들었다.

밥숟가락 계량법이 많은 주부들의 공감을 사기는 했지만, 다양한 국적의 레시피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계량법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 많이 힘든 일도 아니다. 계량컵 하나, 계량스푼 하나면 웬만한 부피 계량은 무리 없이 할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해서 계량컵은 싼 것은 3천 원, 계량스푼은 1천 원쯤 한다. 


요리를 위한 계량 단위에는 크게 테이블스푼과 티스푼, 이 있다. 1 테이블스푼(Tablespoon, 줄임말로 tbsp)은 15ml이다. 소복하게 담기보다는 표면을 납작하게 깎아내는 방식으로 가득 담았을 담은 것을 기준으로 한다. 한국식 밥숟가락은 한 큰 술에 10ml 정도를 담으므로 두 기구 사이의 용량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1 tbsp을한 큰 술로 대체할 수는 없고, 눈대중으로 조금 더하는 데서 오차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계량스푼을 하나 장만하는 것을 추천한다.


보통 계량스푼의 한 꼭지가 1 테이블스푼이라면 반대쪽은 1 티스푼(Teaspoon, 줄임말로 tsp) 짜리가 붙어있기 마련이다. 1 티스푼은 5ml이다. 그러므로 1 tbsp= 3 tsp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게 된다.


1 컵(cup)은 약 240 ml(요리계에서 통용되는 US customary cup기준)이다. 정확히 말하면 236.588ml인데, 이렇게 복잡한 숫자가 탄생하게 된 것은 ml를 사용하지 않는 미국의 독고다이 계량형 때문이다. 미국식 1 컵의 기준은 8 온스(fl oz, fluid ounces)인데, 미국 밖에서는 잘 쓰지도 않는 온스 때문에 '1 컵'이라는 개념이 이렇게 복잡해졌다. 베이킹 아닌 요리를 하는 경우라면 레시피에 1 컵이라는 표현이 있을 경우 이를 굳이 정확하게 따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시중 머그컵을 90% 정도 채우면 그것이 200ml 정도가 되고 종이컵을 가득 채우면 180ml가 되므로 계량법이 없을 경우 이를 사용해도 된다. 


계량 환산법 중 아래와 같이 중요한 몇 가지만 기억해두면 들어가는 재료의 비율을 가늠할 때 참고하기 좋다.


3 teaspoons (5ml X 3) = 1 tablespoon (15ml)

4 tablespoons (15 mlX4) = 1/4 cup (60ml)

8 tablespoons (15ml X 8) = 1/2 cup (120ml)

16 tablespoons (15ml X 16) = 1 cup (240ml)



2) 자르는 도구

식칼(kitchen knife): 거의 모든 재료 다듬기에 사용되는 칼이다. 원래는 그러한데, 나는 손이 워낙 작아서 무엇이든 과도를 사용해서 자르는 일이 많다. 하지만 크기가 큰 재료를 힘을 들여 잘라야 할 때는 식칼만 한 것이 없다.

과도(fruit knife): 보통 과도하면 사과 껍질 깎는 일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과도도 날이 잘 서 있다면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주방 가위(cooking scissors): 날이 잘 선 주방 가위는 모든 조리과정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감자칼(peeler):감자나 오이 등 채소의 껍질을 깎을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그뿐 아니라 오이나 애호박 같은 채소를 얇고 길게 손질할 때도 유용하다. 가격에 따른 품질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만원 언저리의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3) 도마(cutting board)

왼쪽의 플라스틱 도마는 진짜로 자르는 데 사용하는 도마이고, 오른쪽의 나무 도마는 접시 용도로 사용하는 도마이다. 시중에 항균 도마 및 품질이 훌륭한 각종 브랜드 도마가 많이 있지만 자취생에게는 걸어 두기 좋고 가벼운 작은 플라스틱 도마 하나도 충분하다.


4) 뜨거울 때 사용하는 도구

자취생이 자주 사용하는 조리기구에는 프라이팬과 냄비가 있는데, 이를 사용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뜨거운 조리환경에서 손을 대신해줄 주걱 따위의 도구이다. 괜히 짜리몽당한 밥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이들을 대체하다가 손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조금 욕심을 내어 장만해도 절대 사치가 아니다.


국자: 국물 요리나 양이 많은 요리를 옮길 때 유용하다. 완성된 요리를 그릇에 예쁘게 담는 데 필수적이다.

끝이 1자인 주걱이나 뒤집개: 부침개처럼 납작한 요리를 뒤집을 때 편리하다.

긴 나무 숟가락: 무른 재질이기 때문에 팬의 코팅이 벗겨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프라이팬과 함께 사용하기 좋다. 손잡이 길이가 길면 뜨거운 요리를 다룰 때 편리하다.

나무젓가락: 팬에서 구워지고 있는 재료를 섬세하게 다루기에 좋다.

집게: 고기를 굽거나 재료를 강한 힘으로 잡을 때 좋다. 특히 한 손으로 가위를 들고 무언가를 잘라야 할 때 필수적이다.


5) 기타 손 도구

체(sifter): 재료를 흐르는 물에 씻을 때, 파스타나 국수의 물기를 뺄 때, 가루를 곱게 체 칠 때 유용하다.

실리콘 주걱(silicone spatula): 소스나 베이킹 반죽을 옮길 때 유용하다. 볼에 묻은 것을 깨끗하게 긁어 닦아내기 좋다.

실리콘 붓(silicone brush): 빵 반죽에 달걀물을 입히기 좋다.

거품기(whisker): 흰자와 노른자, 각종 소스와 반죽을 섞을 때 유용하다.


6) 강판(그레이터, grater)

생각보다 서양요리에서 자주 사용되는 조리도구가 바로 강판이다. 보통 치즈를 그레이터에 곱게 갈아 파스타 위에 소복이 올리는 장면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그만큼 강판이 빛을 발하는 때는 바로 단단한 야채를 손질할 때이다. 쥬키니(애호박)를 강판에 갈아서 반죽해서 팬에 지져내면 쥬키니 프리터(zucchini fritters, 서양식 애호박전)를, 당근을 갈아서 케이크 반죽에 넣으면 당근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 칼로 자르는 것보다는 부드러운 형태로, 믹서로 가는 것보다는 재료의 원래 형태를 살린 상태로 재료를 손쉽게 손질할 수 있다.


7) 프라이팬(frying pan)

프라이팬은 최소한 두 개 정도 가지고 있을 것을 추천하는데, 그것은 프라이팬의 재질마다 그 특징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요리를 제대로 시작해보고 싶다면 코팅 프라이팬과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두 가지를 갖추고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코팅 프라이팬(non-stick pan, Teflon pan): 

테X 브랜드의 지속적인 마케팅으로 인해 테플론 코팅 프라이팬은 '프라이팬'하면 한국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프라이팬이 되었다. 테플론 코팅 프라이팬의 장점은 팬을 길들이는 별도의 과정이 없어도 코팅 자체의 기능으로 재료가 표면에서 깔끔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을 상쇄하는 어마어마한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조리나 세척 중에 코팅이 벗겨지기 쉽다는 점이다. 이러한 단점을 고려한다면 코팅팬으로 재현하기 어려울 요리기술이 몇 가지가 있다. 맛을 향상하기 위해 재료의 표면을 갈색빛이 돌도록 노릇하게 익히는 것(마이야르 반응, 대표적인 적용례가 바로 스테이크 굽기), 그리고 마이야르 반응 이후 팬에 눌어붙은 갈색 찌꺼기를 와인이나 육수, 레몬즙 따위의 액체로 녹여서 소스로 만드는 것(디글레이징)이 바로 그러한 기술이다. 이 과정에서 코팅 팬을 사용하면 코팅막 표면의 손상을 막을 수가 없다. 코팅력의 감소도 문제이지만 가장 위험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테플론 코팅 소재의 손상으로 인해 노출된 발암물질을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스테인리스 프라이팬(stainless steel pan):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의 장점은 막 쓰기 좋다는 점이다. 특수한 코팅이 되어있다거나 한 것이 아닐뿐더러 재료 자체의 강도가 높아서 태우고 녹이고 긁어내는 요리를 해도 멀쩡하게 잘 씻어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한 번은 기름때가 스테인리스 팬에 끔찍하게 눌어붙어 이제는 이것을 버려야 하나 겁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추천을 받아 '아XX니쉬'라는 제품을 사용하니 새것 같이 반짝반짝하게 변했다. 아주 못쓰게 태워 먹은 것이 아니라면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섞어 살짝 끓이는 것만으로도 세척이 가능하다.


하지만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은 사용법이 간단한 테플론 코팅 팬에 비해 다소 수고가 따른다. 요리에 착수하기 전 팬을 길들이기 위한 별도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과정을 길들이기(seasoning)이라고 부르는데, 열을 가해 스테인리스 스틸 입자를 팽창시켜 틈을 벌린 뒤 기름칠을 하고, 이를 천천히 식혀서 닫힌 틈 사이에 기름이 끼여서 코팅력을 갖게 하는 일련의 과정이 그것이다. 시즈닝이 잘 된 스테인리스 팬은 테플론 코팅 팬에 버금가는 코팅력을 자랑한다. 한번 코팅을 제대로 하면 예열을 하고 오일을 살짝 두르는 것만으로도 재료가 눌어붙지 않는다. 하지만 팬을 연속해서 사용하거나 세척하면 오일 코팅이 벗겨지며 코팅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시 시즈닝을 해야 한다. 별로 복잡한 과정은 아니기 때문에, 요리 재료를 다듬기 전에 팬을 예열해서 오일을 살짝 바른 뒤 이를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식혀서 사용하면 별다른 시간 투자 없이 성공적으로 요리를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스테인리스 팬은 다소 귀찮은 과정이 추가되더라도 사용법을 몸에 익히면 테플론 팬을 사용할 때보다 더 다양한 요리에 안전하게 도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테플론 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스테인리스 팬을 잘 길들이더라도 달걀 같은 섬세한 재료를 다루기에는 테플론 팬이 월등하게 편리하기 때문이다. 나의 제안은 이렇다. 달걀 프라이나 스크램블드 에그 같이 단순한 달걀 요리를 위해 작은 사이즈의 테플론 팬 하나를 장만하고, 대부분의 요리는 스테인리스 팬으로 요리하는 것이다.


참고로, 부엌에 공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꼭 추가하고 싶은 요리 도구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무쇠 팬(cast iron skillet, 미국 브랜드인 롯0가 유명)이고 하나는 웍(wok, 반원구 형태의 깊은 팬)이다. 무쇠팬은 스테이크를 구울 때 탁월한 맛을 이끄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웍은 깊고 열을 중심부에 모아주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중국 및 동남아 지역의 볶음요리를 하기에 유리하다.


8) 냄비(pot 또는 sauce pan)

냄비는 국물이 많은 요리를 하는데 필수적이다. 냄비와 프라이팬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요리 도구이다. 물을 포함한 재료의 양이 많은 면 요리나 수프 요리는 높이가 높은 냄비 없이는 만들 수 없다. 한편, 냄비가 프라이팬의 기능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수한 기능이 없는 일반적인 스테인리스 냄비나 글라스 냄비는 밑바닥 두께가 얇아서 재료가 잘 눌어붙기 때문에 프라이팬을 백 프로 대체할 수는 없다. 


영어로 냄비를 부르는 말은 크게 'pot'과 'saucepan' 두 가지로 나뉘는데, 영어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대체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이냐며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구분이 애매하다. 보통 'pot'이라 하면 양수냄비, 'saucepan'이라고 하면 긴 손잡이가 하나 달린 편수냄비를 떠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능상의 구분은 아니라고 한다. 굳이 따지자면 saucepan보다는 pot이 대체로 크고 깊은 편이라는 점을 차이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골 냄비로 부르는 냄비는'stockpot(육수 냄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크고 작은 소스팬, 소테팬(saute pan, 팬과 냄비의 중간 격), 무쇠냄비(cast-iron stew pot, 르0루제나 스0우브가 유명한 브랜드이다), 스탁팟 모두 갖고 싶지만, 이 모든 것을 갖추기에는 자취방의 부엌이 너무 비좁다. 처음 자취생활을 할 때부터 엄마가 올려 보내준 스테인리스 냄비, 이것 하나로 여태껏 잘 버티고 있다. 딱 하나 사치를 부린 것은 사진의 오른편에 있는 밀크팬(milk pan)이다. 온갖 요리를 하는 스테인리스 냄비에 밀크티를 끓이면 도저히 밀크티를 만드는 기분이 들지 않아서 이케아에서 만 오천 원에 새로 구입한 것이다. 


9) 전자레인지(microwave)

자취생의 가전기구 필수 1호는 밥솥이요, 2호는 바로 전자레인지이다. 단순히 식어버린 요리를 데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전자레인지는 자취생활의 시작이자 끝에 해당하는 가전기구이다. 


전자레인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해동(defrosting)' 기능이다. 바꿔 말하자면, 전자레인지가 없으면 재료의 냉동 보관이 무의미하게 된다. 냉동 보관이 자취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한지는 앞에서 길게 설명을 하였다. 이렇게 냉동 보관을 한 재료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바로 전자레인지의 역할이다. 


전자레인지의 요리 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전자 레인지를 새로 사면 자그마한 요리책이 딸려 나오는데, 그 책에 따르면 전자레인지로 못할 요리가 없을 정도이다. 모든 요리를 전자레인지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냐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요리는 전자레인지로 만드는 것이 간편하다. 무엇보다도 그릇 하나면 요리하고 먹는 것이 전부 가능하기 때문에 설거지거리가 준다는 크나큰 장점이 있다. 나의 전자레인지 사용방법을 아래에 정리해보았다.


갓 지어서 식힌 밥을 한 번에 먹을 정도로 소분한 다음 냉동실에 넣어 그때그때 전자레인지로 해동한다.

조그만 그릇에 물이나 식용유를 조금 바르고 달걀을 깨뜨려 넣은 뒤 젓가락으로 흰자와 노른자 곳곳을 살짝 찌른다. 이것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저칼로리 달걀프라이가 된다. 단, 흰자나 노른자가 전자레인지 속에서 터져버리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 터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할 찰나에 전자레인지를 바로 끄면 그다지 위험한 일은 아니다. 전자레인지 속에 튄 달걀 잔해를 굳어버리기 전에 살짝 닦아 내기만 하면 된다.

달걀찜은 달걀프라이에 비해 훨씬 얌전하게 만들 수 있다. 달걀을 풀어서 잘 섞어서 간을 한 뒤 전자레인지에 넣고 처음에는 1분, 그다음에는 30초씩 돌리며 꺼내서 휘저어 주는 것을 반복한다. 전자레인지에 넣은 요리는 보통 가장자리부터 먼저 익는데, 주기적으로 저어서 섞어주면 골고루 부드럽게 익은 달걀찜을 먹을 수 있다.

날달걀을 푼 것에 식은 밥을 섞어서 밥알이 달걀물로 코팅되도록 고루 휘저은 다음에 전자레인지에서 1분 정도를 돌리면 기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달걀 볶음밥이 완성된다.

냉동한 고기를 해동할 때는 반드시 해동 기능을 사용하여 해동한다. 일반 요리 버튼을 누르면 지나치게 빠른 분자운동 중 고기가 녹다 말고 회색으로 익어버리기 때문이다. 고깃덩어리가 클수록 해동 속도가 부위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살짝 덜 해동되었다 싶을 때 꺼내서 상온 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작은 종지에 올리브유를 자작하게 붓고 편을 썬 마늘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30초에서 1분가량을 돌리면 맛있는 갈릭 오일과 튀긴 마늘을 만들 수 있다. 마늘은 전자레인지에서 잘 타므로 30초씩 끊어 서상태를 확인하며 돌리는 것이 안전하다. 같은 원리로 고춧가루(핫페퍼 플레이크)를 넣고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돌리면 고추기름을, 다진 파를 넣고 돌리면 파 기름을 얻을 수 있다.

머그컵에 물을 넣고 1분 30초를 돌리면 티백을 넣어 차를 우리기에 딱 좋은 온도가 된다. 커피포트를 따로 살 필요가 없다.


10) 오븐(oven)과 오븐용 용기(baking tray)

올해로 자취생활 10년 차. 오븐을 들인 것은 올해 초, 즉 자취생활 10년째가 되는 해였다. 오븐을 갖기 전까지는 오븐을 사용하는 수많은 레시피를 보며 속으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수를 써도 오븐이 할 수 있는 기능을 냄비나 팬이 대신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븐을 장만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오븐을 둘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오피스텔로 이사하면서, 드디어 오븐을 둘 만한 공간을 찾았다. 코스트코에서 20만 원 초반에 판매하는 드0기 오븐을 세일 기간에 10만 원 후반에 구입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오븐을 사용하는 재미에 중독되어서 자꾸 오븐으로 만드는 요리만 만들게 되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오븐을 자취방에 들일 때 고민해야 하는 오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오븐 이외에도 추가적인 오븐 조리용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븐 안의 공간에 수납을 해도 좋지만 그것도 오븐 도구의 개수가 적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지만, 나는 일단 오븐장갑과 더불어 브라우니 팬, 쿠키 팬, 원형 케이크 틀세 가지를 장만하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을 했다. 이 이상 욕심을 부리면 주체할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베이킹보다는 요리가 주된 목적이라면, 납작하고 넓은 쿠키팬과 어느 정도 깊이가 있는 브라우니 팬 두 가지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베이킹에 집중하고 싶다면 사야 할 목록은 끝이 없어진다. 타르트 팬, 머핀 팬, 마들렌 팬, 파운드케이크 팬, 식빵 팬, 쿠키커터 등등...


11) 기본 요리 재료

소금과 후추, 설탕은 만국 공통의 조미료이다. 요리를 위한 오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소금:

사실 소금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기호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2천 원 대의 플라스틱 통에 담아 파는 소금을 마트에서 사서 사용하고 있다. 구운 소금을 가장 선호하는데, 짠맛이 약한 편이라 간을 조절하기가 쉽고 불순물 맛이 덜한 깔끔한 짠맛을 내기 때문이다.


-설탕:

양념에 설탕을 추가하는 레시피에 대한 비판이 뜨겁지만, 그렇다고 부엌에서의 설탕의 역할을 간과할 수는 없다. 특히 한국 요리와 일본 요리에서 많이 쓰이는 편이다. 유럽 요리에는 설탕이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수프의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또는 토마토소스가 너무 실 때 신맛을 중화하기 위해 설탕을 조금 집어넣는 방법을 사용기도 한다.


-후추:

후추는 되도록이면 통후추를 갈아서 사용하도록 한다. 즉석에서 갈아낸 후추의 향은 후춧가루의 향보다 훨씬 뚜렷하다. 후추 그라인더가 한 세트인 제품을 사면 간편하다. 통후추는 코스트코의 제품이 가격 대비 용량의 측면에서 좋다.


-오일:

볶거나 튀기는 요리를 위해, 오일은 꼭 한 두 종류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대두유, 포도씨유, 해바라기씨유 같은 식물성 기름은 아시아 요리에 잘 어울린다. 올리브유는 유럽 요리나 샐러드에 잘 어울린다.






질문 4. 이걸 어떻게 다 수납하나?


어느 누가 수납의 걱정에서 자유롭겠느냐마는, 좁은 자취방에서 생활하는 자취생에게 수납 문제의 해결은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이다. 나는 정리에 특출 난 재능이 있는 편이 아니어서 화려한 수납 기술을 자랑할 수는 없다. 나의 부엌을 공개하면서 나의 수납법 중 유용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내 원룸의 실평수는 8평이다. 원룸 치고 작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싱크대도 자취방에 있는 것 치고는 쓸만한 사이즈이다. 물론 자취방에 딸린 부엌으로서 쓸만하다는 것이지 각종 세계 요리 재료, 베이킹 재료, 취미로 모은 그릇을 보관하기에는 공간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점은, 간이 식탁 용도로 빌트인 된 부분이 있어서 오븐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아래 공간은 각종 요리 도구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걸어서 보관하는 게 최고!


자취 부엌 수납을 위한 첫 번째 비법은 '걸기'이다. 상부 선반이 있는 부엌이라면 위 사진과 같이 작은 고리가 몇 개 달린 걸이대가 있기 마련이다. 머그컵도, 종지도, 도마도, 체도, 가위도, 집개도, 심지어 프라이팬도 걸어서 보관한다. 공간이 이만저만 절약되는 것이 아니다. 걸기 애매한 것은 모조리 수저통에 세워서 보관한다. 사진 속의 수저통이 힘겨워보여 불편한 마음이 들기는 한다.



자취 부엌 수납을 위한 두 번째 비법은 '틈새 활용하기'이다. 자칫 죽은 공간이 될 수 있는 가스레인지와 벽 사이 공간에 각종 소스와 프라이팬을 세워서 보관하고 있다. 조리 열에 소스가 살짝 따땃해지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문제는 없었다. 오븐과 싱크대 사이의 작은 공간에도 각종 소스며 와인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자취 부엌 수납을 위한 세 번째 비법은 '이름 붙이기'이다. 주로 향신료와 허브를 정리할 때 이렇게 뚜껑에 이름을 붙여 정리하는데, 이렇게 두면 하나씩 병을 옮겨 쥐며 확인하지 않아도 한 번에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다.


자취 부엌을 위한 마지막 비법은 '쌓아서 밀어 넣기'이다. 마구잡이로 쌓는 것보다는 일종의 원칙을 두고 쌓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 자주 쓰는 허브나 향신료는 상 부장의 가장 아랫칸에, 위로 갈수록 쓰는 빈도가 적은 재료를 얹는다. 중국이면 중국, 인도면 인도, 지역별로 재료를 모아서 수납하는 것도 방법이다. 좁은 공간에 많은 물건을 쌓아 올리려면 아무래도 상자를 이용해서 겹겹이 수납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워낙 정리에는 젬병이어서 마지막 수납에 관한 팁은 다소 김이 빠질 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긴 글의 마무리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말, 그 한 마디로 말미암아 이렇게 나의 내밀한 부엌 생활을 샅샅이 공개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취생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먹고살기에 지쳐버린 누군가에게 이 응원이 닿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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