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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Aug 05. 2017

중국: 중국어 시간에 배운 그 요리, 꽁바오지딩

쓰촨의 총독과 미국인을 사로잡은 중국의 치느님

하고 많은 중국요리 중 나와 인연이 깊은 특별한 요리가 몇 가지 있다. 영어권에서는 쿵파오 치킨(Kung Pao Chicken)이나 궁바오치킨(Gung Bao Chicken)으로, 본토인 중국에서는 꽁바오지딩(宫保鸡丁, gōngbǎojīdīng)으로, 한국에서는 궁보계정 또는궁보기정으로 알려진 요리가 바로 그것이다.


나와 이 요리와의 인연은 처음으로 중국어를 배웠던 대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히 말하면, 간단한 인사말을 배우고 가족에 대해 물어보는 대화를 익히고 마침내 식당에서 요리를 주문하는 단원에 이르렀을 때였다. 영어로 치면 “I would likesome coffee.” 나 “Two hamburgers, please” 따위를 배워야 하는 단원에 해당했다. 당시에 배웠던 요리 이름 중 기억나는 것에는 마파두부(麻婆豆腐 mápódòufǔ), 물만두(水饺 shuǐjiǎo), 달걀 볶음밥(蛋炒饭dàn chǎofàn)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4 성조를 입에 익혀가던 왕초보인지라 요리 이름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발음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특히 꽁바오지딩(宫保鸡丁, gōngbǎojīdīng)이라는 발음이 무척 재미있어서, 어떤 요리인지도 잘 모르면서 몇 번이고 우물우물 따라 읽곤 했다.


열심히 발음을 연습해서 언젠가는 중식당에서 써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으나, 중국으로 여행을 갈 것도 아니었으니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대학생이 먹는 중국요리야 캠퍼스 근처의 식당에서 배달시키는 쟁반짜장이나 탕수육 같은 것에 불과했다. 아무리 중국요리를 주기적으로 먹어도 꽁바오지딩과의 접점이 생기지를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나는 이 재미난 이름의 요리를 점차 잊어갔다.


이 요리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머나먼 미국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였다. 교환학생의 신분에 맞게 학교 밖의 저렴한 식당을 하나하나 알아가던 중에, 미국인 친구의 추천으로 어느 한적한 거리의 작은 중국 식당을 방문했을 때였다. 친구는 미리 마음에 담아둔 메뉴가 있었던 것인지 능숙하게 요리를 고르고 나를 기다렸다. 반면 나는 한국 밖에서 중국 식당을 방문한 것이 처음이었다. 짜장면도 짬뽕도 없는, 영어와 중국어로 된 생소한 요리명이 빽빽하게 가득 찬 메뉴판을 다급하게 훑어보아야 했을 뿐이다. 그러다 시선이 멈춘 요리가 바로 꽁바오지딩(宫保鸡丁, gōngbǎojīdīng)이었다. “나 이 요리 알아! 중국어 시간에 배웠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내 얼굴이 밝아진 것을 보고 친구는 슬쩍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중국요리가 바로 쿵파오 치킨(Kung Pao Chicken)이라며, 나에게 꽁바오지딩을 적극 추천하였다. 과연, 고소하게 볶은 땅콩과 빨간 고추가 들어간 매콤 달콤한 소스가 어우러진 꽁바오지딩은 정말로 맛있었다. 같은 요리를 두고 대화를 나누며 나는 성조를 꼬박꼬박 지켜가며 ‘꽁바오지딩’이라고 불렀고, 친구는 미국인 특유의 h소리가 새는 발음으로 ‘쿵파오츽힌’이라고 불렀으나 맛있는 요리를 앞에 두고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리가 없었다.



쿵파오 치킨을 좋아한다는 친구의 반응은 사실 그다지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중국요리는 미국에서 더 이상 에스닉 푸드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친숙한 일상 요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희생이 뒤따랐으니, 미국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중국요리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했다. 미국인에게 생소한 향신료나 생선요리, 야채 요리는 대폭 축소되었고, 바삭한 살코기 튀김에 달달하고 끈적한 소스를 얹은 요리들이 중국요리의 대표 격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렌지 치킨이니, 스트로베리 치킨이니 하는 장난 같은 이름의 요리가 대표 중국요리로서 자리매김한 데에는 육류와 튀긴 음식, 달달한 맛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초등학생 입맛이 한몫을 단단히 했다. 어찌 보면 짜장면, 짬뽕, 탕수육 같은 한국식 중국요리가 주류를 차지해 버려서 다양한 중국요리가 꽃피지 못한 한국의 상황과 꼭 닮아 있기도 하다. ‘쿵파오 치킨(KungPao Chicken)’은 그 이름을 모르는 미국인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요리이다. 그만큼 맛도 이름도 미국식으로 변형되어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본고장인 쓰촨 지방의 레시피를 따른 꽁바오지딩에는 항저우 근방의 특산물인 샤오싱주(Shaoxing wine 또는 소흥주, 누룩으로 빚은 술)와 얼얼한 맛을 내는 초피(Sichuan peppercorns), 말린 고추가 듬뿍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초피는 입안을 얼얼하게 하는(麻) 독특한 매운맛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지피’나 ‘제피’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경상도 지방의 매운탕에 자주 사용되는데, 특유의 비누향과 얼얼한 매운맛에 일조하는 향신료이다. 쓰촨식 레시피로 만든 꽁바오지딩은 아래의 Food Ranger의 동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온갖 향신료가 줄줄이 늘어서 있고 무서울 정도로 높은 화력을 사용하여 순식간에 요리를 하는 중국 현지식당의 부엌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How To Make Kung PaoChicken the Real Way, Made in China Chinese Food" by The Food Ranger

https://www.youtube.com/watch?v=TKRNwYrtr3o


미국식 쿵파오 치킨에는 이 샤오싱 주와 초피가 쏙 빠지는 경우가 많다. 대신 화이트 와인, 오렌지주스, 굴소스, 후추 등이 그 빈자리를 어설프게 대신한다. 건고추를 듬뿍 넣는 대신 태국 고추 몇 개를 넣어 생색만 내고 파프리카와 샐러리를 많이 넣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리하여 본토의 맛보다 덜 자극적이고 더 달달한 전형적인 미국식 중국 요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꽁바오지딩을 요리하기로 결심했을 때, 이를 쓰촨식으로 만들지 미국식으로 만들지 잠시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원조격인 쓰촨식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재료의 난관을 넘기가 힘들었다. 이 요리 하나를 만들자고 300g에 만 오천 원 정도 하는 초피를 배송비까지 붙여가며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없었고, 한 병에 이만 원 정도 하는 소흥주를 사러 갈 수도 없었다. 결국은 쓰촨식 레시피를 열렬히 지향하면서도 핵심 요소는 빠져버린, 어딘가 허전한 꽁바오지딩을 만들게 되었다. 자취생 요리 덕후가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은 안타깝지만 여기까지인듯하다.


[참고한 레시피 동영상]

Seonkyong Longest는 유튜브에서 이름이 알려진 한국인 요리 vlogger이다. 한국 요리 이외에도 다양한 아시아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 요리가 아님에도 재료나 레시피의 정확성이 높다고 칭찬하는 댓글을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리서치에 충실한 vlogger임에는 틀림없다.


"  Asian at Home | Kung Pao Chicken (Gong Bao Ji Ding)" by SeonkyoungLongest

https://www.youtube.com/watch?v=JZrwcpwv750



[꽁바오지딩 재료]

닭고기를 마리네이드 할 때

- 닭가슴살 두 덩이

- 샤오싱 주 또는 청주 1 tbsp.

- 베이킹 소다 2 tsp (닭가슴살을 쫄깃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 전분 2 tsp

- 후추 1/2 tsp

- 소금 1/2 tsp


소스를 만들 때

- 중국식 진한 간장(dark soy sauce) 2 tsp (진간장 2 tbsp으로 대체할 수 있다)

- 진간장 3 tbsp

- 중국식 검은 식초 2 tbsp (발사믹 식초 1 tbsp에 물 1 tbsp을 더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 샤오싱 주 또는 청주 1 tbsp.

- 설탕 2 tbsp

- 전분 1 tsp

- 치킨스톡(파우더) 1 tsp

- 잘게 다진 마늘 4~6알

- 잘게 다진 생강 2 tbsp


볶을 때

- 식용유

- 초피 1 tbsp (초피가 없다면 통후추를 갈아서 조금 뿌린 것으로 심심한 위로를 할 수는 있다)

- 건고추 10개 또는 씨앗을 빼고 물기를 꼭 닦아낸 홍고추 10개

- 땅콩 1/4 컵(굽거나 튀긴 것 모두 괜찮다)


[꽁바오지딩 조리법]

1. 닭가슴살을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자른 후에 샤오싱 주(또는 청주), 베이킹소다, 청주, 후추, 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섞어서 10~20분 마리네이드 한다.


2. 간장, 식초, 샤오싱 주(또는 청주), 설탕, 전분, 치킨스톡, 마늘, 생강을 섞어 소스를 만든다.



3. 예열하여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땅콩을 1분 정도 노릇하게 튀기듯이 볶는다.



4. 땅콩을 건져내고 같은 팬에 기름을 추가하여 닭가슴살을 튀기듯이 볶는다. 3분의 2 정도 익히는 것이 적당하다.



5. 닭가슴살을 덜어내고 같은 팬에 손질한 고추를 넣고 2~3분 정도 볶아서 기름에 고추 향이 배도록 한다. 초피나 후추를 넣을 예정이라면 이때 함께 볶는 것이 좋다.



6. 배합해둔 소스를 팬에 넣고 살짝 졸아들도록 1~2분간 끓인다.


7. 꺼내 두었던 닭가슴살을 넣고 소스의 맛과 색이 잘 배어들 때까지 2분 정도 볶는다.


8. 덜어 두었던 땅콩을 넣고 1분 정도 볶는다.




추억이 담긴 요리, 꽁바오지딩이 완성되었다.



바삭한 땅콩과 쫄깃하고 부드러운 닭가슴살의 식감이 대조되면서 씹는 즐거움이 있다. 입에 짝짝 붙는 매콤 달콤한 소스 덕에 젓가락이 닭가슴살과 땅콩을 번갈아 집어서 입으로 옮기느라 쉴 틈이 없다. 씨앗을 제거한 고추에서는 기분 좋게 은은한 매운맛이 난다. 한두 개 정도는 씨앗을 제거하지 않고 넣어서 조금 더 매콤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도록 즐거운 맛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초피의 부재이다. 다소 부드러운 맛의 이 요리에 혀를 자극하는 얼얼한 매운맛이 더해진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지, 아직은 상상에 맞기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7년쯤 전에 미국에서 먹었던 꽁바오지딩이 쓰촨식인지 미국식인지는 도무지 기억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쓰촨 성 총독 딩바오전(Ding Baozhen, 1820–1886)을 위해 만들어져서 그의 관직명 '궁보(宫保)'에서 이름을 따서 그 이름이 꽁바오지딩(宫保鸡丁)이 되었다고 했던가.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혼자서 독점하지 않고 주위에 알릴 정도라면 찬사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이 요리에 대한 미담이 두 가지 정도 전래되고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딩바오전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그를 두 팔에 안고서 건져내어 목숨을 살려낸 이가 있었는데, 미래의 총독을 구해놓은 줄은 꿈에도 모르고서 둘은 그 자리에서 헤어져버렸다고 한다. 이 일을 줄곧 마음에 담아놓고 있던 딩바오전은 총독이 되어 자신의 은인을 수소문한 끝에 드디어 그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친히 은인의 집을 직접 방문한 총독을 위해 그 집의 요리사가 내놓은 요리가 바로 이 꽁바오지딩이었다. 요리를 맛본 딩바오전은 대번에 그 요리사를 총독저로 스카우트하였고, 그가 만든 꽁바오지딩을 두고두고 즐겼다고 한다. 은인을 잊지 않고 보답하려 한 딩바오전의 마음가짐이 이 놀랍도록 맛있는 요리를 누릴 기회를 주었으니, 딩바오전을 본받아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명백하게 다가온다.


두 번째 이야기는 총독이 된 딩바오전이 민심을 듣기 위해 농부로 변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닐 때의 일이다. 허기를 느낀 그는 가까운대로 어느 허름한 여관에 들어가야 했고, 식당의 외양을 보고 그리 큰 기대는 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의 앞에 무심하게 턱 하니 놓인 요리가 바로 꽁바오지딩이었다. 인생 요리를 맛본 그가 흥분을 애써 감추고 변장을 유지한 채 조용히 관저로 돌아왔는지, 혹은 그 자리에서 바로 총독의 이름으로 요리사를 채용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그 요리를 딩바오전 앞에 내놓은 요리사는 총독저의 요리사로 고용되어 총독을 찾는 많은 손님들에게 꽁바오지딩을 수없이 대접하였다고 한다.


꽁바오지딩과 딩바오전의 만남에 대한 미담이 오늘날까지 두 가지씩이나 전래되고 있는 것을 보면, 딩바오전은 이 요리를 어지간히 좋아하긴 한 모양이다. 중국어 책에서, 미국의 작은 식당에서, 자취방의 부엌에서의 꽁바오지딩과 세 번을 만난 경험 또한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이다. 그리하여 나 역시 딩바오전을 필두로 이 요리를 흠모하는 수많은 팬의 열에 당당히 서게 되었다.



[참고한 사이트]

-나무 위키: 

https://namu.wiki/w/%EA% B6%81% EB% B3% B4% EA% B3%84% EC% A0%95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Kung_Pao_chicken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C%98%A4%EC%8B%B1%EC%A3%BC

- “KUNG PAO CHICKEN RECIPE & HISTORY”

http://philosokitchen.com/kung-pao-chicken-recipe-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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