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가 좋아졌다. 원래도 싫어하진 않았지만 지난 두 달간 사찰 요리를 배우며 더 좋아하게 되었다. 두부의 다양한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려나. 냉장고에 두부 한 모가 덜렁 놓여있으면 된장국에 설컹설컹 썰어넣을까 빨간 양념을 입혀 조림을 만들까, 틀에 박힌 생각 속에서 헤매던 차였다. 그러던 내 일상에 어떤 조리법 하나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두부를 으깨 면보에 넣고 물기를 짜내는 것이었다.
면보 속에서 부드럽게 으깨어지고 물기가 쏙 빠진 두부는 이전과 전혀 다른 재료로 변신한다. 손에 넣고 부드럽게 쥐면 동글동글 뭉칠 수 있는 것이 마치 찰흙 같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포슬포슬 부서지며 알갱이지는 그 뽀얀 모양새는 이탈리아의 리코타 치즈를 닮아있기도 하다.
으깬 두부가 면포를 벗어난 순간부터 요리하는 사람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데친 나물과 조물조물 섞어 고소한 나물 무침을 만들까, 올망졸망 동그랗게 뭉쳐 완자 같은 것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순백의 도화지를 눈 앞에 돈 화가의 기분으로, 우윳빛 두부의 열린 가능성을 만끽하게 된다.
무한한 가능성 가운데 취사선택을 돕는 것은, 부엌에 쟁여놓은 그 날의 재료이다. 마침 오래전에 사둔 건취나물이 있어 저녁 메뉴 선정이 수월해졌다. 사찰요리 수업에서 배운 것을 응용해서 다진 취나물을 섞은 두부 경단을 빚기 시작했다. 건취나물은 뜨거운 물에 불려두고, 참치액과 간장, 다시마와 대파로 맑은 국물을 냈다. 불린 취나물을 잘게 다진 후 으깬 두부에 섞으며, 혹여나 부서질까 하는 걱정이 들어 달걀과 찹쌀가루를 더했다. 취나물이 섞어 대리석 같이 멋진 무늬가 생긴 두부 경단은 육수에 넣고 깨질세라 아주 약한 불에서 익힌다. 이대로도 좋지만, 장식용 지단을 올리면 금상첨화다.
조물조물 빚어낸 뽀얀 두부 경단은 슴슴한 맛으로 취나물의 은은한 향기를 위한 훌륭한 배경이 된다. 참치액과 다시마 등을 넣은 국물에 감칠맛이 있어 그리 심심하지는 않다. 나도 집에서 이렇게 해먹으면 좋겠네. 오랜만에 만난 요리를 좋아하는 지인의 시식평이다.
두부는 이제 네모가 아니다! 두부 경단 만들기가 너무너무 즐거웠던 나의 조리평을 곁들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