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 the Silence
명색은 #breakthesilence 를 보고 적는 후기이지만, 그 외의 다른 인터뷰나 방송들도 참고해서 작성하는 글입니다.
우상이라고? 우상이 뭔데? 아이돌이 무슨 힙합?
BTS는 초창기 래퍼 라인 멤버들이 힙합 관련 온라인 방송에서 'IDOL 뜻은 뭔지 아세요' 라는 질문까지 들어야 했는데. 그들은 '우상' 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다른 게스트가 '아~ 여자들의 우상?' 이라는 발언을 한다. 글쎄... 남성 멤버로 구성된 아이돌이 여자들의 우상이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여자라고 표현되는 워딩에는 불편함과 불만이 있지만 논외로 하고) 방송에선 이어서 여자들의 우상이 되려고 힙합을 이용하면 안된다, 힙합은 산업에 복속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등등의 이야기가 오가고. 사실 이 말은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긴 하다.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해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리고 당시 데뷔 초였던 RM 역시 이 애티튜드에 대한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답한다.)
한편 대개 음악 산업에서 주 소비층(팬덤)은 여성이다. 뮤지컬과 클래식도 마찬가지이고. 밴드 음악의 전성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음악 산업의 주요 컨슈머가 여성들이고, 아이돌이 여자들의 우상이라는 뜻이면, 비틀즈도 아이돌이라고 하려고? 장르의 용어와 산업의 용어 사이에서 혼선을 빚고 있는 셈 아닐까?
혼합의 시대, 왜 안되는데?
아무튼 나에게 있어 아이돌은 사실상 장르와는 관계없는 팬덤의 구축여부에 대한 산업 용어로 생각된다. 팬덤 구축을 목표로 기획되었고, 그 기획에 따른 전략을 실천해 왔느냐 여부로 아이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팬을 확보하며 주류로 오른 인디밴드에게 아무리 여성 팬이 많아도, 그들에게 여자들의 우상, 아이돌이라고 하지 않듯이.
아무튼 아이돌이 오롯이 산업적 용어인 이유는 일단 그들이 다룰 수 있는 장르는 점점 넓어져왔기 때문. 한국 가요 시장을 처음에는 댄스/ 발라드로 양분했다면 지금은 그 이분법을 적용할 수 없게 된지 오래다.(춤을 출 수 있으면 댄스곡, 서서 부르면 발라드라는 식 아닌가ㅎㅎ)
랩을 하는 사람이 화장을 하고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옷을 입으면 안된다->는 기존 논리에 대해서 '왜 안되는데?' 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낼 수 있다.
사실 기존에 없던 혁신이나 괄목할만한 성과는 기존 체제의 수호자, 전문가들이 내는 경우보다는 '왜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라고 묻는 새로운 사람에게서 나는 경우가 많다.
BTS도 그러한 '소년단' 이었던 것.
아무튼 아이돌이 산업계에서 체계적인 지원을 받으며 음악적 다양성을 위해 여러 장르들에 손을 대기 시작하며, 기존 장르의 수호자들은 이것이 매우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이 혼합은 결국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아이돌은 음악산업에서 주류의 길을 택한 여러 분야의 직업인들이 팀을 이뤄서 해내는 일종의 '프로젝트' 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팀 작업은 과거의 것부터 최신의 것까지 수많은 데이터 아카이브 속에서 컨셉에 맞는 최선을 뽑아내고 혼합하는 일들이기도 하다. 녹음 과정에서도 오랜 기간 훈련해온 좋은 세션들이 참여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문화예술계에서 이분법, 흑백논리는 좀 옛날의 것이 되었다. 너 댄스야 발라드야? 라는 질문이 이제 후진 질문이 되었듯이, 이 쪽에 서있는 사람은 저 쪽 것은 손대면 안돼. 나는 이 진영이니까, 그런 걸 안해. 이런 태도. 음악을 사랑하는 일이 꼭 언더에서 돈과 거리가 먼 길만 추구해야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사실 나의 어릴적 태도가 이것에 가까웠지만, 결국 창작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경로를 선택하고, 조합하고, 이래야한다는 편견에 맞서면 되는 게 아닐까)
물론 나는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같은 러시아 시인의 책에 환호하는 옛날의 사람이지만, 지금 문화예술산업의 현실을 볼때 사실 상 이것이 얼마나 괴리된 이야기인가. 개인적으로는 이 선언문의 저자 마야코프스키의 호방함과 치기어린 공격성을 사랑하지만 말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혼합의 시대여서 더더욱 그렇다. 마야코프스키의 1920년대 저술을 사랑하지만 BTS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 나처럼.
갈 수 있는 모든 길, 가고 싶은 모든 길을 다 가볼 수는 없을까.
음악'산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메인 타겟(대중)의 호감을 얻기 위해 음악을 한다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생활의 저~~편에 서는 작가주의를 선택하는 것도 리스펙트 할 일이지만, 대중의 사랑을 얻고, 또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노선을 선택하는 것의 무게감을 잘 알다보니 그 역시 리스펙 받아야할 일이 아닌지.
음악 산업 안에서 일해오며 점점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벗고 그들의 신발을 신어보게 된다. 내가 음악을 시작한 초기엔 '언더 씬에 있던 사람이 메이저를 가면 변절이다'는 논리가 늘 씬에 팽배해있었는데, 사실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갈팡질팡하는 실망스러운 주행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경로와 방향성 설정은 타인이 함부로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업 뮤지션이 되려는 사람들의 고뇌는 대부분 이 양 쪽 길이 모두 힘든데다, 심지어 이 양 쪽을 다 추구하고 싶다는 아이러니에서부터 출발한다. 내가 전업 뮤지션이 되려면, 음악 산업에서의 메인스트림에 가까워야만 먹고 살며 동시에 작업을 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내가 완전히 하고 싶은 음악의 방향을 수정해 타겟층에 맞춘 작업 결과물을 내야한다. 한편 내가 고결하다고 생각하고 팬층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내가 전업음악인으로서 살아남을 확률은 줄어든다. (물론 일부 예외적 사례들도 있고, 서브컬쳐에서 이런 케이스들은 종종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와 메인스트림의 영토를 확장하기도 함) 그렇기에 내 음악의 본질을 깊이 파면서, 음악 산업에서 자리잡으려는 목표의 설정은 영 불가능하냐? 사실 꼭 그렇지도 않다. 어차피 어려운 길이라면 이런 저런 시행착오와 도전도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첨언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는 있지만, 이게 내가 추구하는 100%냐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나 나의 인식은 조금씩 더 앞서가고, 그걸 구현해내는 몸은 뒤따라가는 느낌이기에)
힌트는 동시대성, 요즘 어떻게 소통해?
음악의 본질과 음악산업의 본질은 일부 중첩되는 부분이 있겠으나, 사실은 매우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요한 건 음악을 전업으로 삼을때, 결국 나의 음악을 소비해주는 팬덤(즉 비빌 언덕)이 필수이다. 팬덤의 구축을 위해 어느 정도의 타협은 필요하지만 꼭 이렇게 해야한다는 정답은 없다는 것. 다만 그 방식에 대한 힌트는 있다. 동시대의 사람들과 얼마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가 일종의 힌트 같은 셈.
팬덤이라는 것은 쉽게 형성되기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듣는 음악'보다 '보는 음악'에 대한 접근성과 수요가 높아진 뉴미디어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어찌보면 과거에는 연주나 음악만 잘하면, 그 외의 것은 상대적으로 덜 노력을 기울여도 되었지만 지금은 퍼포먼스, 비쥬얼, 영상 등 다양한 것에 신경을 써야한다. 이를 통합적인 컨셉으로 만들어내어 정보와 음악이 넘쳐나는 이 시장에서 주목받을 한 방을 만들어내야만하고.
그래서 나는 음악산업의 연대기적 관점에서 현재 BTS가 위치한 MAP의 어느 한 포인트를 보고 싶다. 이들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90년대, 또 2000년대, 현재의 음악산업을 반추해볼 기회를 얻기도 했다.
결론은 BTS는 정말 말그대로 '컨템포러리' 팝아티스트라는 점.
동시대성으로 세계에 팬덤을 형성한 것. 그들이 전달하고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사실 동시대의 청소년들이 원하던 것들과 합치했기 때문이다. 쌍방향 소통, 그리고 가식과 가면보다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기.
90년대 아이돌을 비롯한 연예인은 완벽함과 신비주의가 생명이었다. 그래야만 아이돌(우상)이 될 수 있었고, 소속사의 관리도 매우 촘촘했다. 인터뷰에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고 그들의 사생활은 베일에 싸여있었다. 사적인 의견을 자주 말하지도 않았고, 그들은 주로 화보 속에서 박제된 이미지로서 신비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과 같은 쌍방향 소통 채널이 대중화되기 전의 스타들은 그 매니지먼트 방식도, 활동 방식도 달랐으므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BTS의 경우 이미 셀카, 라방에 익숙한 채로 자라온 90년대생 '소년'들이었다. 매니지먼트 방식도 마찬가지. 동시대 청소년들의 미디어 활용 행태에 기반해 그들의 작업과정, 숙소 생활, 성장 과정들을 꽤 오래 전부터 노출해왔다. (연습 동영상 뿐 아니라, v라이브나 위버스를 통해 축적된 그들의 음악 외적인 클립 아카이브도 엄청난 양이다.)
부캐가 아닌 한 인간이 갖는 캐릭터의 다면성을 성실히 공유
더불어 BTS는 방탄소년단으로서 갖는 강력한 페르소나가 있지만, 동시에 개별 이름을 가진 존재로서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정의하고, 말하기 위해 애쓴다. 이 노력이 다른 아이돌과 대비되는 큰 차이라고 여겨진다. 누가 써주는 멘트가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을 정의해서 그것을 용기있게 말하고, 때로는 수정하기도 하는 모습들.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음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모습들. 그래서 그들의 Speak yourself 같은 메시지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또한 팀의 컨셉과 다른 노선으로 개별적인 믹스테잎 작업을 하는 것 역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그들의 미래를 더욱 기대되게 한다. 기존의 아이돌들이 단순히 기획 안에서 정해진 역할을 연기하는 가상의 캐릭터 롤을 부여받았다면, 이들은 직접 앨범 작업에 참여하면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표출하는 팝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끝없이 검증받고 있다. 이는 BTS라는 컨셉 안에서의 훌륭한 그룹 퍼포먼스 바깥에 각 멤버가 '창작하는 개별적 인간'으로서 살고 있음을 팬덤에 인지시키는 좋은 방식이기도 하다. 과거 아이돌 출신의 한 멤버가 갑자기 록 음악을 들고 나왔을 때의 비판과 비난, 조롱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 멤버는 어쩌면 오랫동안 록이라는 장르의 매니아였을 수 있음에도, 그는 아이돌로서 부여받은 역할에만 충실하게 오래 비춰져온 바람에 시장으로부터 처참하게 외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 다 가지려는 욕심쟁이들 아니냐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음악활동과 관계없는 모습들 (요리라던지) 허당스러운 장면들이 매력포인트였다. 우리는 사실 누구나 다 허술한 면이 있지 않나. 그간 우리는 글로벌 스타가 늘 무게 잡고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에 익숙했다면, 가끔씩 파파라치가 찍어올리는 깨어진 완벽함에 그들에 대한 신뢰와 신비감을 잃기도 했었다. 요즘은 그 굳어진 이미지에 대한 일종의 탈출구로서의 부캐를 만들기도 하지만, BTS의 경우 많은 양의 노출과 소통을 통해 부캐라기보다는 그냥 한 개인의 캐릭터가 갖는 다면성을 성실하게 팬들에게 공유해왔다고 생각된다. 짜여진 연출과 각본이 아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상황들을 통해서.
물론 혹자는 뮤지션이면 이렇게 예능에 가까운 콘텐츠를 피해야한다고 하지만 사실 짤과 밈의 시대에, 멋진 퍼포먼스만 남기는 것이 오히려 활동에 제한을 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런 모습들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카메라 앞에서도 보여줄 수 있는 멤버들... 음악적 퍼포먼스에 있어서는 충분히 훈련되었으나, 여전히 20대의 철부지 같은 모습 때로는 어려움 속에서의 방황, 고민, 갈등을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게 해결해가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 것. 이 인간미는 기존에 우리가 생각해오던 박제된 '아이돌' 과 구별된다.
break the silence의 열린 결말, 열린 캐릭터
이렇듯 아이돌의 편견을 깨고, 세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이 된 그들의 모습. 이번 Break the silence 다큐멘터리에서도 보여지듯 그들은 돔을, 스태디움을 가득 채우며 전세계를 날아다닌다. 때로는 그 무게감이 두려울 것이고, 떄로는 그 성취에 도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스타들은 이 두려움과 도취 사이에서 절망하거나 외로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일한 성장 경로를 함께 걸어오고 견뎌오고 이겨낸 다른 6명의 동료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성공에 도취된 자신만만한 자아가 아니라, 여전히, 끊임없이 꿈에 대해 묻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또 도달하고자 했던 물리적 꿈을 이루는 것이 다가 아님을 깨닫는 인생의 한 국면을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열려있음이 참 좋았다.
무조건 겸손한 자세보다는
현재를 정확히 인지하고서도, 변해갈 미래, 또 다른 차원의 꿈과 행복을 고민하는 이 솔직함이 바로 개인적으론 감동 포인트.
어쩌면 그들의 인기는
음악을 사랑해서, 음악을 계속 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개성있는 개개인들이 모인
이 젊은 집단의 여정이 너무 솔직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저 멀리서 빛나는 닿을 수 없는 별 같은, 어딘가에 갇힌 이미지로서의 아이돌이 아니라,
마치 동시대를 함께 걸어가며, 고군분투하는 동반자와 같은 아이돌로, 또 사람으로 남을 것 같다.
그들의 계속되는 걸음, 그리고 도전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야말로 '선한 영향력' 이 아닐까.
#bts #방탄소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