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몽골여행
오양가 솜 초원 위에서 일행들과 멀찍이 떨어져 텐트를 치고 누웠다. 바람 하나 없는 고요한 밤, 지나가는 말이나 양의 발이 걸리지 않도록 가이라인(Guyline, 텐트 묶는 줄)을 처리하고 발 아래쪽에 작은 LED랜턴을 켜 놓고 깜박 잠이 들었다.
갑자기 땅이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마치 기차길 옆 방안에 누워 있는 것처럼 무거운 흔들림이 등으로 전해져 왔다. 진동으로 짐작해 보건대 덩치가 큰 짐승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순간 동공이 열리고 등 뒤 척추를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커졌다.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두려움에 손하나 까딱 못하고 누워 있었다. 부디 텐트만 밟지 말고 지나가기를!
그런데 문득 이 많은 짐승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묵직한 발자국 진동으로 예상컨대 양이나 염소는 아니었다. 텐트 문을 열고 보고 싶었다. 무섭고 떨렸지만 확인해 보고 싶었다. 누운 채 조심조심 텐트의 지퍼고리를 잡았다. 최대한 천천히 지퍼 문을 열었다.
1초에 0.5센티미터씩.
지퍼 문을 열자 달빛이 텐트 안으로 쏟아졌다. 상체를 조용히 일으켜 세웠다. 꽃봉우리가 개화하듯 은밀하게, 중력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빛이 흘러 들어오는 틈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디밀고 밖을 쳐다보았다. <라이온 킹>의 무파사가 소 떼에게 짓밟히는 장면이 떠올랐다. 텐트 밖으로 머리를 내민 나는, 내 텐트가 야크 무리의 행렬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파도가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들듯 야크 무리는 내 텐트를 향해 밀려들더니 코앞에서 갈라져 지나쳐 갔다. 달빛이 야크의 부드러운 등허리 곡선 위에서 물결처럼 흔들리며 반짝였다.
이른 아침에는 거친 숨을 뱉으며 말 한 무리가 지나갔다. 두려움과 두근거림은 비슷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의 차이는 용기다. 자기주도성은 두려움을 두근거림으로 변화시킨다. 그 밤의 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하게 될 나의 모험담이 되었다. 하지만 인생에 다시 그런 밤을 만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