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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 Nov 20. 2023

지난 밤 꿈에

흰 꽃잎들이 나부꼈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뱃속에 흰 꽃잎들이 생겨 입으로 그 꽃잎들이 나오곤 했다.


바다 위 떠 가는 배에 대학교가 있었다.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 마주친 여자애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애도 나를 좋아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어두운 극장이나 방송실 같은 곳에 숨어들어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그게 사랑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남자애가 있었다. 극장에서 영사기를 만지는 일을 했다. 나는 그 애와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의 학력과 출신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그 애를 극장에서 해고하겠다는 어느 책임 교수의 말을 듣게 됐다. 그 이야기를 전하러 남자애를 만나러 가며 눈물이 났다. 그 애를 만나서 미안하지만 더 이상 여기서 일할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는데 입에서 꽃잎뭉치가 조금 나왔다. 그걸 지나가던 여자애가 봤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 애는 오해했다. 모든 걸. 내가 여자애에게 사랑한다고 나는 너밖에 없다고 고백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그 애는 바닥에 누워 울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떠나라고 나는 너에게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고 너를 사랑하지도 않는다고 고함치듯 말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찢어지듯 슬퍼서 배의 맨 꼭대기로 올라가 파도에 휩쓸려버렸다.


내가 발견되었을 때 내 뱃속에는 미처 밖으로 나오지 못한 꽃잎들이 가득했다.

그애는 그걸 보지 못했겠지.



꿈을 다시 꾼다면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뱃속의 꽃잎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계절의 차가운 공기와 뒤섞여 사방으로 나풀거릴텐데. 너에게로 향하는 나의 흰 꽃잎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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