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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Nov 01. 2022

이대로 괜찮다는 믿음을 무너뜨려야 단단해진다.

네번째 독립출판 에세이《조류》작업 기록 ④

*지금이 없다면 창작도 없다고 생각한다. 원래 오늘 쓰고 싶었던 주제를 정해뒀지만 그럴 마음도 들지 않고, 창작자 입장에서도 '잘못된 것을 인정하기'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할만하기에 즉흥으로 써본다.



잘못된 걸 인정하고,

그걸 무수히 수정해야 조금 나아져.

창작된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을까.



슬픈일이 있었다. 얼마든지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놀다가 죽은 것'이 뭐가 그렇게 심각한 일이냐고 하지만, 나는 '누구나 놀다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이걸 사회문제라고, 심각하다고 느낀다. 핼러윈데이가 아니어도 우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많이 간다. 나이를 불문하고, 놀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생각해 보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 기본적인 욕구가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에 우리가 처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도 생각날 때마다 찾아보고 지켜보고 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지금 상황에 대한 최선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일이라서도 있다. 무엇을 인정하는지. 법과 제도로 어떤 안전망을 만드는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걸 알아야 개인이, 그러니까 너도, 나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를 정할 거 아닌가.


그러나 슬프게도 기사와 댓글을 접하면서, 창작할 때 내가 취하는 좀 부끄러운 모습이 많이 떠오르더라.

'음, 조금 이상한데 여기만 고치면 괜찮겠지? 설마 다 고쳐야 할 리는 없어. 여태까지 거슬리지 않았잖아. 기분탓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여기까지 알겠어? 괜찮아. 괜찮은 거 같아. ...괜찮겠지?'

그냥 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느 개인, 어느 정치가, 혹은 어느 집단만의 문제로 치환해서 그곳만 간단하게 도려내거나 페널티를 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는 여태까지 문제가 없었고 그저 이번이 아주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을 뿐이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있는 곳에선 늘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되며, 그 문제를 방지하거나 터졌을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과 질서가 있는 거다. 그게 무너진 걸 어느 누구의 탓으로만 돌린다고 해결될리가 없다. 그렇게 정말 믿는다면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추천을 많이 받은 모습을 보고, '정말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군.' 생각하는 중이다. 그게 조작된 것일 수도 있긴 한데, 이러나 저러나...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별로 기대는 없지만 아직 수습하는 중이니 좀 더 추이를 지켜보다 끄덕이는 나를 발견하고 싶다.




이상하다- 싶으면 좀 지워.  

짐처럼 안고있으면, 그거 결국 누가 드냐?




사회얘기 말고 작업얘기를 좀 더 해보자. 이상하다 싶으면 좀 지워. 이건 레슨받을 때 선생님이 자주 했던 말이다. 애들이 너무 안 지운다고. 문제가 있으면 그걸 안 지우고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그 말을 듣고선, 내가 진짜 너무 안 지우나 싶어서 용기 있게 트랙을 많이 밀어보려고 했고. 그러고 나서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늘. 늘. 정말 늘 그랬다.


물론 하다가 엉켜서 원래 의도를 찾아가느라고 전에 했던 프로젝트를 열어본 적도 있다. 그래도 결국엔 수정한 방향이 더 좋았다. 의도를 뒤엎을 정도로 좋았던 적도 많아서, '의도가 아무리 멋져봐라. 음악은 느낌인데. 난 이 느낌이 더 좋아. 이 느낌으로 전할 수 있는 의도가 있을 거고.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은 또 다음에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서 엎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게 쉬운 것 같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책도 세권 내고, 내 책이 아닌 것도 여닐곱권은 낸 것 같으니 뭘 만들다가 엎는 건 꽤 익숙해 질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문제를 만들기까지 일을 벌인 나도 그만큼의 경력을 가진 애였기 때문에... 스스로를 참 많이 믿었다. 잘 해낼 줄 알았고, '이번엔 진짜다.' 라고 매번 생각했다. 그러나 난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맨날 한계에 부딪혔고, 그러면서도 방법을 모르니까 막막해서 어떻게든 쉽게 해결해 보려고 했다. 안일함. 그 안일함이 쌓여 결국엔 거지같은 톤이 되었고, 그건 다음날 내가 '이건 음악이 아니고 으악이야'라면서 몇시간 동안 했던 걸 날리게 했다.


그래도 매번 그렇게 하니까, 이젠 예전에 만든 걸 들으면 어떻게 괜찮다고 넘어간 건지를 모르겠더라. 언젠가 또 다섯번째 책을 내고 1년 뒤에 지금 만든 음악을 들으면 '오우, 쥐구멍...' 이라는 생각을 할 거 같긴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늘 그렇듯이 '네 것은 너무 네 것 같아서 좋아'라는 얘기를 해주겠지. 그렇게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지만 의미있는 한 걸음을 내딛을 순 있을 것이다.


그게 내가 계속 창작자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믿고 만든 뒤에 욕하면서 토대 무너뜨리기. 무너뜨리면서도 나를 믿기. 다시 만들기. 욕하기. 무너뜨리기. 다시하기. 반복. 반복. 누군가는 안 이렇겠지만 나는 이렇다. 이번책에선 유독 더 심했다. 근데 이젠 애증도 뭐도 없다.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즘엔 그래도 마감은 있어야겠지 싶다. 사실 이전에도 마감은 있었는데, 내가 마감할 때가 아니라고 마감을 계속 엎었다. 그래도 또 믿어본다. 내 음악 에세이인《조류》는... 12월 텀블벅 오픈할 예정이다. (다단!)


그럼 나에게 행운을 빌며,

다음 회차에 계속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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