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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하 Aug 08. 2023

이 글을 우연히 만난 당신에게

가라앉음


품은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나 딱딱하게 굳은 분노와 슬픔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습니다. 흐르는 시간에 증발하여 부피는 줄어들었지만 생생한 기억의 무게가 그대로이니 오히려 가라앉기에 좋았습니다. 이 응어리들은 어디로 가라앉고 있을까요? 계속되는 하향의 끝엔 비옥한 땅이 있을까요? 썩어가는 하천이 있을까요? 응어리들이 비옥한 땅을 위한 거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나중의 이야기이죠.


지금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당신의 오래 묵은 아픈 감정들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것들이 당신에게 어떤 해로움을 주었든 간에, 어찌 되었건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잘 품어왔다고, 잘 기다렸다고, 잘 견뎌왔다고. 덕분에 잘 성숙되었고 가라앉을 수 있게 되었다고요.


떨어지는 낙엽이 슬프게 느껴지나요? 낙엽이 된 나뭇잎이 그동안 자유를 꿈꿔왔다면 어떨까요? 또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설렘을 느끼며 떨어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지금은 그저 다른 무언가를 향해 가라앉는 응어리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축하해 주세요. 잘해왔습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지나가는 시간을 견뎠음에 크게 칭찬합니다. 이 축하와 칭찬을 온전히 기쁘게 받을 수 있다면, 이 응어리들은 좋은 거름이 되어 당신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싱그러운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믿어보세요. 당신의 성숙을. 그 덕분에 꿈틀거릴 새로운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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