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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웬 Dec 29. 2022

이러니 내가 백패킹을 안 할 수가 없지

Vol.1 다시 멕시코 | #8. hit the road

먹기만 했는데 피곤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랬다. 이제 먹는 것 말고 다른 것을 할 때가 되었다.


와하카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려고 마음먹었을 때, 최소 2곳은 꼭 가보고 싶었다. 

하나는 이에르베 엘 아구아 (Hierve el Agua | water boil, 칼슘과 미네랄을 많이 함유한 물이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면서 폭포와 같은 형상을 가지게 되었고, 바위 틈새로 보글보글 올라오는 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꼭대기에는 인공수영장이 있다! 산속에 있는 인피니티 풀. 뷰는... 일단 각자의 상상에 맡겨본다.) 

또 다른 한 곳은 미틀라 루인 (Mitla ruin)


J의 생일 파티에 모였던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와하카에서 출발하는 투어를 통해서 이미 이 두 곳을 다녀왔다. 한 번은 친구들 4명이 투어 갈 건데 함께하지 않겠냐고 나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물어봐 줘서 고마워 얘들아. 그런데 나는 하이킹도 좀 하고 싶고, 천천히 시간 보내고 싶어서 가이드 없이 혼자 가려고 생각 중이야."


투어를 통해서 가면 오전 8시에 와하카 시티를 출발해서 Hierve el Auga > Mitla ruin > 카펫으로 유명한 마을인 Teotitlan에 들렀다가 메즈칼 브루어리를 거쳐 6시쯤 다시 와하카로 돌아오는 일정이 대부분이다.


Dios mío (Oh my God의 스페인어)


스케줄만 들어도 벌써 숨이 막힌다. 왕복 이동 3시간에 점심시간도 생각하면… 절레절레. 역시나 안 되겠어. 나만의 템포로 여행하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 (편의성이 극도로 높지 않은 한) 가이드와 함께하는 투어를 자연스레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왜 그럴 때 있잖아.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소에서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내며 그곳을 만끽하고 싶은데, "자 여러분, 출발해야 해요!" 하는 말과 함께 아쉬움을 가득 안고 떠나야만 했던 기억.


그래서 혼자 가고 싶었다. 이리저리 구글링 해보니, 가고 싶었던 두 곳을 하루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Mitla(미틀라, 작은 마을 이름이다)로 가서 거기서 camioneta(픽업트럭, 최소 8명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을 타고 50분을 구불구불 비포장도로를 올라가면 Hierve el Agua에 도착한다. 거기서는 수영도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요즘 매일매일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산이라 추울 테고. 이미 투어를 통해서 다녀온 친구들은 추워서 수영은 고사하고 그냥 사진만 찍고 내려왔다고 했다. 안돼… 나 수영하고 싶단 말이야. 제발, 날씨 요정아 도와줘…


9/7(수)에 다녀와야지 마음먹었는데, 전날 밤 자기 전에 알람을 맞추려니 마음이 영 안 내킨다.


5:30 am


정말 가고 싶은 거 맞아? 갈 거야? 스스로 물었다. 


응, 갈 거야. 비가 와도 갈래.


그렇게 6시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고, 꾸물대다 7시가 훌쩍 넘어서 버스 타는 곳을 향해 20분쯤 걸어갔다. 구글링 했을 때 야구장 앞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는데… 야구장 앞에 도착해서 행인 1에게 물으니 버스는 없단다. 콜렉티보(시내버스의 택시 형태라고 보면 되겠다. 루트는 정해져 있고 원하는 곳에서 타고 내리는 방식. 버스보다 비싸고 택시보다 저렴)밖에 없다고 한다.


흠 아닌데, 버스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일단 옆에 보이는 맥도널드에 들어가서 아침으로 먹을 겸 커피와 애플파이를 사며 일하는 직원에게 한번 더 물어보았다. 초록색 버스가 있다고 한다! OK.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와 커피와 애플파이를 먹으며 초록색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행인 2에게 초록색 버스를 타고 Mitla 가는 거 맞냐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파란색 콜렉티보를 타야 한다고 한다. Jesus Christ. (혹시라도 멕시코를 여행하게 된다면 절대 한 사람에게만 길을 물어보고 단정 짓지 않길. 모로 가도 목적지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3명에게는 물어보고 공통된 답을 찾는 게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 스페인어가 부족해서 제대로 질문하지 못했거나 100%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른 대답을 해주니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머리가 아팠다. 일단 지나가는 버스들을 유심히 보는 수밖에. 그런데 정류장 옆에서 간식을 파는 사장님이 내게 다가왔다.


“Mitla 가려고? 버스 있어. 여기서 기다리면 돼.”라고 말하며 손수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어떻게 생긴 버스인지 사진을 보여줬다. 초록색 버스가 맞다! 이제야 안심된다. 너무너무 고마워요, 아저씨.


그렇게 Mitla에 8:45am쯤 도착했다. 이에르베 엘 아구아 Hierve el Agua로 가는 까미오네따(camioneta 픽업트럭)가 보인다. 기사님께 언제 출발할 수 있냐 여쭤보니 원래 12명 모여야 하는데 최소 8명은 되어야 출발한다고 했다. 현재 모인 인원은 달랑 두 사람. 나처럼 혼자 여행 중인 멕시칸 친구 K, 그리고 나. 그렇게 우리 셋은 수다를 떨며(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꼭 북쪽인지 남쪽인지 물어본다) 1시간쯤 기다렸다. 사람들이 모일 기미가 안 보인다. 이렇게 시간을 마냥 보낼 수 없어 K에게 물었다.


“K, Mitla ruin 가봤어? 나 거기 가보고 싶은데 10시에 오픈해서 오후 3시에 닫아. Hierve el Agua 다녀와서 가면 조금 시간이 빠듯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 혹시 지금 가는 건 어때? 기사님한테 전화번호 남겨두고 사람들 모여서 출발할 수 있게 되면 알려달라고 하자!”


그래서 우리는 급 플랜을 변경해서 Mitla 시내로 걸어 들어갔다. 너무 작고 귀여운 마을. 



Ruin은 1300-1400년대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상단의 정교한 모자이크와 빨간 돔형태의 지붕이 특징이다. 어찌나 정교하고 또 다양한 모자이크 디자인이 있는지, 그 시대의 건축 기술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했던 걸까 하고 상상하게 된다.



K는 사진 찍어주기를 매우 좋아한다. 미소가 너무 매력적인 소녀.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올 때마다 나보고 가서 서보라고. 무한정으로 오백 장 사진을 찍어준다. 덕분에 우리가 함께 하는 동안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 너무 많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포즈 잡는 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걸어 다니고 웃는 모습들이. 


그리고 you know what? 날씨 요정이 드디어 우리의 편이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기다렸던 햇살이 등장하며 더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 햇살이 얼굴을 내민다고? 너무 좋아.. 제발 이대로 오늘 비 오지 않고 내내 햇살을 밝게 내비쳐줘. 나 산속에서 수영하고 싶어. Por favorrrrrr (pleaseeeeee)


그렇게 1시간쯤 돌아보고 있었을까. 드디어 전화가 왔다! 14명이 모였으니 갈 거면 지금 오라고. 이번이 아니면 다음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K와 눈빛을 주고받은 뒤 우리는 모토택시(태국과 익숙한 우리에게는 툭툭으로 알려져 있는)를 잽싸게 타고 camioneta를 타러 왔다. 트럭 뒷좌석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찼다.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이스라엘 사람들 중 비교적 덩치가 작았던 나는 트럭 지붕 위에 만들어진 자리로 올라가서 앉았다.



차 안에서 우리는 누가 누구와 함께 왔는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등 각자의 스토리에 대해 묻고 답했다. 그중 단연 돋보였던 것은 연배가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부부. 7개월째 남미를 여행 중인 벨기에 커플 중 남자분의 부모님이 3주간 여행을 동행하신다고 했다. 너무 멋지지 않나. 60대가 되어서도 트럭 뒷좌석에 타기를 꺼리지 않고 모험을 즐기는 모습이. 자식 또래의, 혹은 그보다 어린 친구들 앞에서도 능청스레 핸드폰을 꺼내 들고 다 함께 셀피를 찍자고 요청하는 여유와 따스함이. 어쩌면 편안하게 가이드 투어를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나도 누군가와 함께 세상을 탐험하며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



비가 안 온다


온종일 따가로운(따사롭고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고, 산머리에 걸쳐진 뭉게구름이 자꾸만 미소 짓게 만든다. 오늘 새벽, 흩뿌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버스를 타러 갈 때까지만 해도, Mitla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이런 매 순간이 감격스러운 하루가 펼쳐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옆에서 K가 먼저 고마움을 표현했다.



나 너무 행복해. 그리고 즐거워. 하지만 너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렇게 똑같이 행복했을까? 아닐 거야. 그래서 고마워. 나와 함께 여행해줘서 고마워.”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우리는 이후에도 아름다운 광경을 마주할 때마다 감격과 고마움을 나눴다. 그러던 중 저기 멀리서 묵직한 회색 구름이 산꼭대기와 만나서 비를 뿌리기 (쏟아내기) 시작하는 걸 목격했다.


느낌이 좋지 않다.  금방이라도 비구름이 내 머리 위를 덮칠 것만 같은 느낌(은 맞았다)


마지막으로 사진 몇 장 찍고 정리해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동시에 빗방울이 느껴졌다. 


안 돼애애애애애.


그리고 곧바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돌풍과 함께 천둥까지 친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웃음밖에 안 난다. 이렇게 비구름이 빨리 이동한다고? 빗속에서 웃으며 춤을 출 수 있는 여유는 이럴 때 나오는 게 아닐까. 한참을 웃었다. 비키니를 입고 있을 수 없어 재빨리 샤워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더니, K가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며 나더러 쓰란다. 본인은 이미 수영하느라 다 젖었고 춥지 않으니 빗속을 뚫고 걷겠단다. 얼른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라고. 


내가 가진 신념 중 하나는 내가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면 그들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의심보다는 관심을, 경계보다는 미소를 먼저 건네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여행하면서 (친구들이 인복이 참 많다고 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곤 하는데 이번에도 어김없다. 어디서 이런 천사 같은 친구가 나타났는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단지 우산을 내어줘서가 아니라 아침에 만난 그 순간부터 오늘 하루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향유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혼자 왔으면 오늘이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답지 않았으리라.


하산하는 길에는 VIP seat(조수석)에 앉아 15세 프로 드라이버의 취향 가득 담긴 음악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뷰를 감상하며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늘은 거짓말처럼 폭우를 쏟아내고 금세 밝고 맑은 모습을 다시 보여주었다. 와하카에 머무는 동안 이토록 파란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늘 대부분 흐린 날씨였고, 오후엔 항상 비가 왔으니 말이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기 어려운 몸을 이끌고 나가길 잘했다. 날씨도, 함께 여행한 K도 오늘이 아니었더라면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니 내가 어떻게 여행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방 하나 달랑 매고 도로 위로 나서지 않을 수 있을까. 


감사하고 또 감사한 하루다.

te extraño tanto,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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