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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nie Sep 21. 2023

여전히 치이지만

1인 기업가의 고군분투 성장일기 #1

대기업 퇴사 5년 차. 나는 혼자 일한다. 내가 주인이자 직원이고, 상사이자 동료이다. 다중역할을 해내야 하는 만큼 인격도 다중이? 가 되는 것 같다. 정줄을 아주 단단히 쥐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한때 퇴사를 꿈꾸던 내가 그랬듯, 많은 회사원들이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막연한 환상을 갖는다. 인스타와 블로그에는 퍼스널 브랜딩에 꽤 성공한 1인 기업과 프리랜서들만 눈에 띈다. 그들의 개척 정신과 실행력이 부러웠다. 무지했던 까닭에 그들의 삶은 항상 활기차보였고 그래서 쉬워 보였다. 나도 안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썩기에 스스로 너무 아까운 인재 아니냐고 통탄했다. 학벌과 직장, 그럴싸한 서류로 부풀려진 자아가 현실의 바늘에 찔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 해지기 전 까지는.


지난 4년간을 요약하면:

이글거리는 의욕과 찌를 듯 한 회의감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휘몰아치는 생각들로 인해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들. 자기 자신이 엄청나게 기특한 동시에 한도 끝도 없이 한심해 보이는 신기한 매직. 자의식이 철저하게 박살 나야 살아남는 까닭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민낯을 마주 할 때마다 느끼는 익숙해지지 않는 당혹감. 여하튼 쉽지 않았다.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


회사를 다닐 때는 구구절절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나 아는 회사를 다닌다는 것 자체로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퇴사 후에는 한동안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설명이 길어졌다. 돌아보면 자신이 없어서, 나 자신에게조차 내가 설득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는 것이 충분하게 느껴지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이 삶이 시간이 갈수록 더 만족스럽다. 왜일까. 분명 꾸준히 불편하고 한 없이 불안한데 이 생활이 더 나에게 잘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태어나서 이토록 내가 주체적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이토록 뼈저리게 깨달은 적도 없다. 근데 그래서 좋다. 진짜로 사는 기분이다. 가능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삶을 내 온몸으로 받아내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광야의 돌밭을 걷는 기분이었지만 한 번도 퇴사를 후회한 적은 없다


물론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답답하고 불안하다. 성장이 느리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만큼 내가 깨부수어야 하는 관성과 통념이 많아서 일 것이다. 이즈음 되면 좀 자리가 잡혔어야 하나 싶지만 웬걸. 이제야 비로소 걸음마를 떼는 기분이다. 아직이라니..!라고 한숨을 몰아쉴 때가 더 많지만 부끄러운 나 자신을 달래고 지지해줘야 하는 것도 나인 까닭에 첫걸음을 뗀 아가를 대하듯 스스로 대견하다고 궁둥이 팡팡 해주려 노력하고 있다.


내가 그린 청사진 중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까지 2년 남았다. 여전히 바람이 불 때마다 갈대처럼 흔들릴 것이고 잠잠할 때도 태풍의 눈에 있는 것 마냥 불안이 엄습하겠지만, 꺾이지는 말자. 반드시, 아니 당연히 이루어낼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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