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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리절트 이승민 Sep 26. 2023

오늘도 나무를 스쳤습니다.

오늘 밤, 곤히 잠들기를.

또옥. 물이 채워진 종이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잉크가 물 표면에 닿자마자 삽시간에 종이컵 전체가 어지럽다.


전화를 끊고 한숨짓는 윤 사원. 얼굴은 상기되어 붉으락푸르락. 가빠 오르는 숨. 점심도 깨작깨작. 영 입맛이 없다. 오후에도 손은 일을 잡지 못하고 허둥댄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볼륨을 높여 음악으로 자신을 채우려 해도 불쾌한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전화 음성으로 전해진 무례함이 떠오른다. 뒤척이고 또 뒤척인다. 불쾌감이 전해진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는데 불쾌감은 오래도록 머물고 떠날 생각을 않는다. 


창업을 하고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직원 수가 한 명, 한 명 늘어났다. 그렇게 10명 남짓 되었을 때, 잘 늘어가던 직원 수는 좀처럼 늘지 못하고 정체하기 시작했다. 새로 채용하면 기존 직원이 나가기를 반복했다. 직원 수 10명을 뚫는 게 생각보다 높은 허들이었다. 직원이 퇴사하는 이유는 대다수 ‘관계’ 때문이다. 대표와의 문제, 팀장과의 문제, 같은 팀원과의 문제, 고객사와의 문제. 대표가 아무리 노력해도 직원들 간에 감정 상하는 일을 모두 컨트롤할 수는 없는 노릇. 고객사와의 문제는 더더욱. 많은 직원들이 관계에서 오는 불쾌한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퇴사한다. 아니다. 극복하려고 떠나는 게다.


하지만 퇴사한다한들 감정 상하는 일도 같이 퇴사하는 건 아니다. 어딜 가나 감정 상하는 일은 존재한다. 마음을 어지럽힐 잉크는 우리 주위에서 늘 떨어질 준비 태세다. 그러니 퇴사가 능사는 아니다. 잉크를 피할 수 없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소규모 건설업체의 사원으로 시작해 그 회사의 대표가 되신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 회사에서 30년 이상을 근무하신 거다. 대기업 건설회사의 하청을 받아야만 하는 일이라 평생을 을로 사셨다. 제안서를 들고 대기업을 찾아가면 한참 어린 대리가 얼굴도 보지 않고 제안서를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접대를 위해 골프를 배웠고 캐디 이상으로 상대의 공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스코어가 어떻게 되는지 꿰뚫는다. 발걸음도 누구보다 빠르다. 그게 습관이 되어 친구들과 라운딩을 가도 캐디 아닌 캐디 역할을 한다. 평생을 을로, 남을 대접하며 살아왔지만 그분은 전혀 초라하지 않다. 비굴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당당함을 넘어선 존엄이 느껴진다. 그분이라고 어찌 관계에서 오는 불쾌감이 없었겠는가? 그분에게 그런 불쾌감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여쭤보았다.


“나는 매일 아침 간과 쓸개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집을 나서지. 썩 유쾌하지 않은 상대를 만나면 나무라고 생각해. 산을 오르다 보면 나무를 스칠 수밖에 없어. 자네 나무와 부딪친다고 나무에게 화내나? 나무에게 두고두고 원한 두고 사나? 그렇지 않아. 목표지가 저 멀리 있으니 나무 따위는 금세 잊어버리지. 그러니 그냥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상대를 나무 스치듯 지나치면 마음이 가벼워져. 허허허.”


인생에서 잉크를 피할 수 없다면, 아예 확 그릇의 크기를 키워버리면 어떨까? 잉크 몇 방울 따위는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만큼 엄청난 크기로. 바다처럼 말이다. 


당신과 내가 그런 넓은 마음을 품게 되길 소망해 본다. 갑질과 적반하장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거대한 그릇으로 자라기를!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꿈꿔본다.

 



풍덩. 바다 한가운데서 잉크 한 바가지를 냅다 뿌린다. 잠시 고여 있던 잉크는 이내 흩어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늘 밤, 곤히 잠들기를.

@pixabay


*배경출처: JTBC '나의 해방일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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