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박 14일. 내가 조리원에 있기로 약속했던 기간.
그러나 답답한 조리원 생활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또 아이와 관련해 큰 이슈가 있었기에 더욱더 조리원에 갇혀있고 싶지 않았다. 전문 인력이 나를 대신해 아이를 케어해 줬고, 삼시세끼 영양가 높은 식단이 제공되며, 하루에 한 번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좋았으나 끝내 난 9박 10일로 일정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감사하게도 퇴소 당일엔 홀로 아이를 보살피지 않아도 됐다. 경주에서 친정 엄마가 나를 돕기 위해 열일 제치고 천안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덕분에 허둥대지도 않고 보다 평화롭게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는 본업을 위해 다시금 경주로 돌아갔다.
아이와 오롯이 둘이서 함께하는 첫 날, 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이 세가지를 약 1시간 반 간격으로 반복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루에 최소 7시간 이상은 자야 개운하다고 느끼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정신없이 세 가지 루틴을 반복하며 한껏 초췌해진 몰골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창밖은 어두웠고, 고된 일을 마치고 온 남편도 골아떨어져 있었다. 품 안엔 아이가 안겨 있었다. 5분 전까지 울고 불고 보채던 아이는 간신히 잠들었지만, 혹여라도 깰까 봐 침대에 내려놓을 수 없었다. 양팔을 아이에게 할애한 상황이니 나는 그 새벽녘, 미지근한 물 한잔도 내 손으로 마실 수 없었다. 목은 타들어갔고, 새벽녘 찬 기운에도 불구하고 내 양 볼은 달아올라 있었다. 윤기 흘렀던 머리칼은 생기를 잃고 아무렇게나 휘날리고 있었고, 눈 밑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포근한 침대에 뛰어들고 싶었다. 뽀송한 이불을 덮고 깊은 잠의 세계로 빠지길 갈망했다. 솟구치는 숨면 욕구를 누르지 못하고 잠시 눈을 감은 순간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배가 고프다며 자신의 의사를 울음으로 내비친 나의 아이. 난 결국 다시 손을 뻗어 빈 젖병에 분유를 넣고 43도에 맞춘 물을 부어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흔들 수밖에 없었다.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이 세 가지 루틴을 일주일 동안 반복하며 하루에 2~3시간도 자지 못했더니 결국에는 말까지 어눌해지게 됐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극한의 피로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육아휴직을 한 나와 달리 여전히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해야 했던 남편에겐 섣불리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기에 더 힘들었다. 그는 언제든 자신을 깨우라 말했었고, 그나마 내가 하루에 2~3시간이라도 잘 수 있었던 것 그 덕분이었지만. 퇴근 후에 아이를 돌보느라 내가 미뤄둔 모든 집안일을 다 해치우고 저녁을 차려내고, 설거지까지 한 뒤에 침대에 쓰러진 그를 흔들어 깨울 순 없었다. 잠시지만, 함께 살고 있는 여동생도 많이 도와줬지만 결국 이른 아침부터 밤을 지나 새벽을 넘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내 몫이었던 것이다.
딱 일주일 째.
난 완전한 항복을 선언했다.
이대로 갔다간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결국 난 친정행을 택했다. 남편과 함께 육아에 필요한 모든 짐을 챙겨 경주로 내려왔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던 친정집 거실에는 이동식 침대, 기저귀 갈이대, 젖병 소독기, 모유 중탕기 등 아이를 위한 제품들이 비치됐다. 잠과의 전쟁에서 완벽하게 패배를 선언한 나를 위해 친정 엄마가 전쟁에 대신 참전해 주셨다. 아침부터 자정까진 내가 아이를 돌보고, 새벽녘에는 친정 엄마가 아이를 맡아주셨다.
초보 엄마와 달리 아이 셋을 키운 친정 엄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우는 아이를 달랬다. 그리고 재빠르게 수유를 해서 아이를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 친정 엄마의 노련함이 없었더라면 자정을 기해 침대로 발을 옮기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먹고 깊이 잠든 아이를 곁눈질로 살피며 이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내내 친정 엄마에 대한 감사함을 가슴에 한 번 더 새기게 됐다. 당신의 본업도 있으면서 퇴근 후에 산후조리하는 큰딸의 밥도 챙겨주고, 새벽 육아를 전담하며 딸을 잠과의 전쟁에서 완벽하게 해방시켜준 우리 엄마. 머지 않은 미래에, 친정 엄마의 큰 사랑에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