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나 임신한 것 같아”
임신 테스트기의 흐릿한 두 줄을 확인한 뒤 나는 남편을 향해 이렇게 소리질렀다.
그리고 우린 병원에서 자궁 속의 선명한 점을 확인했다.
결혼 2달 만의 일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아이가 일찍 생겼다. 기뻐할 틈도 없이 엄청난 입덧이 찾아왔고 난 물만 마셔도 화장실로 달려나가 변기통을 부여잡아야 했다. 임신 중기에 이르러 입덧이 서서히 멎을 쯤엔 심한 복통과 붓기가 날 괴롭혔고 말기엔 위장이 눌리면서 역류성식도염이 찾아왔다. 제산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일상 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만큼 통증이 심했다. 누군가 라이터로 내 식도를 불태우는 느낌이 하루종일 지속됐다.
상황이 이러하니 신혼을 즐길 여력이 없었다. 그간 장거리 연애를 했던 터라, 결혼해서 한 집에 살게 되면 남편과 함께 해보고 싶은 것이 참 많았는데…. 결국 신혼의 로망을 실현하지 못한 채 아이를 품에 안게 됐다.
출산 후에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이를 케어하는 데 모든걸 쏟아내느라 나는 물론이고 남편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세수할 여유도, 밥을 챙겨먹을 여력도, 글을 쓸 시간도 없었다. 하루에 2시간도 눈을 붙일 수 없었고 결국 피로가 누적돼 정상적인 대화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계에 부딪혔고, 아이가 울 때마다 나 역시 함께 울게 되는 극한의 상황에 치닫자 나는 결국 친정행을 택했다. 다시 남편과 잠시 떨어지게 된 것이다.
남편에겐 많이 미안했다. 또다시 한 달 정도 혼자가 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신혼집에서 친정이 워낙 먼 탓에 아이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나의 선택을 존중해줬고, 쉬는 날마다 나와 아이를 만나러 천안에서 친정이 있는 경주로 달려오고 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된 지 3주째. 아이의 부모이기 이전에 한 여자와 남자인, 그리고 부부인 우리는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결혼 1주년을 맞게 됐다. 사실 나는 이번 기념일을 손꼽이 기다렸다. 남편을 위해 준비해둔 특별한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바로 명품 브랜드의 키링이었다. 갑자기 왠 키링이냐고?
중고차를 즐겨 타던 남편은 내가 임신을 한 후, 큰 마음을 먹고 새 차를 구입했다. 아직 출고되진 않았지만 곧 우리 가족의 품으로 올 예정이기에 새 차의 스마트키에 달면 좋을 것 같은 키링을 선물로 준비했다. 그리고 아이가 자는 틈틈이 부지런히 쓴 편지까지. 내가 준비한 것을 남편에게 빨리 주고싶은 욕심에 결국 결혼기념일 하루 전에 남편에게 선물과 편지를 건넸다. 선물을 열어보고 편지를 읽는 남편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를 향한 내 정성과 진심이 무사히 가닿은 듯했다. 다행이었다.
남편 역시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더라. 사실 내가 선물을 내민 후에도 아무 행동이 없어 조금 섭섭했었다. 하다못해 편지라도 내밀줄 알았는데, 완벽하게 빈손인 남편을 보고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었고. 하지만 이내 섭섭한 마음을 거두었다. 사실 거두었다기 보단 잊은 거였다.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것이 잊히기 마련이니까. 그것이 좋은 것이든 섭섭한 것이든 속상한 것이든 간에.
결혼기념일 당일 아침이 밝았다. 친정 엄마께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함께 모처럼의 데이트를 즐겼다. 가을 단풍이 절정에 이른 경주의 길들을 함께 걸었다. 잠시 부모에서 벗어나 한 여자로, 한 남자로 가을의 풍경을 공유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잠깐의 데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무렵, 남편은 점심 먹은 것이 소화가 되지 않아 잠시 산책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잘 하지 않던 행동이라 의아했지만, 아이의 기저귀를 재빠르게 갈고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해 주고 있었다.
10분쯤 흘렀을까. 남편이 잰 걸음으로 다가와 커다란 꽃다발 한아름을 건넸다. 한 눈에 봐도 꽤나 비싸 보이는 풍성한 꽃다발. 내가 좋아하는 컬러들로 구성된 꽃다발에 이어 정체불명의 흰색 상자까지 내밀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엔 영롱한 빛이 눈을 사로잡는 다이아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화들짝 놀라 남편의 눈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따뜻한 눈으로 나의 시선을 휘감고, 뒤로 다가와 목걸이를 채워줬다.
2달치 용돈을 모으고 모아 나를 위한 다이아 목걸이를 준비했다는 남편. 내게 목걸이를 사주기 위해 아끼고 또 아끼면서도, 내가 좋아할 걸 생각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니 뭉클했다. 목걸이보다도 남편의 그 마음이 고마웠다. 오롯이 나만을 생각해 준 그 마음.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그 증거. 비록 아이를 돌볼 때는 목걸이를 할 순 없겠지만, 나는 틈날 때마다 무조건 목걸이를 차며 당신을 생각하겠노라 약속했다.
육아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되다. 이유없이 아이가 울고 보채면 나 역시 엉엉 울게 되고, 주저앉고 싶어진다. 아이를 살피느라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볼 여유도 없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나를 생각하고 아껴주는 남편이 곁에 있기에 이겨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힘내서 육아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