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아기와 친정엄마가 함께하는 발리 한달살기
베이비시터가 애 본다고 큰 일 안난다
사람마다 삶에서 중요히 여기는 우선순위가 다른 것 처럼, 아기를 키울 때에도 엄마마다 중히 여기는 것이 모두 다르다.
나는 아이가 더욱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길 원한다. 또래던 어른이던 많은 사람들 속에서 본인이 어떤 역할인지 스스로 깨닫고, 인간 사이에 오가는 감정적 교류와 온기를 내가 주입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알아내길 바란다.
물론 여행지에서 나의 일탈을 꿈꾸기 위해 베이비시터를 고용한 것도 상당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애 낳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 누가 애 맡겨두고 정신 빠지게 하루종일 돌아 다니겠습니까. 밖에 나가서도 문득 아기 얼굴이 떠올라 집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게 엄마라는 사람인데.
아무튼 발리에서 베이비시터를 쓰고자 한 데에는 이런 구구절절한 이유가 있음이다.
베이비시터를 앞당겨 부르기로 했다.
원래는 여행 후반기의 2주 정도만, 반나절씩 아기를 맡길 계획이었지만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내일은 베이비시터랑 나랑 뭐 어떻게 해볼테니까, 엄마랑 아빠는 투어 다녀와.”
한국이었다면 어떻게 애를 낯선 사람에게 맡기냐며 펄쩍 뛸 친정부모님이었지만 이번엔 그러마, 하고 내 계획에 맞추기로 한다. 하루종일 우리 넷이 붙어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것을 요 며칠 사이 온몸으로 겪었으니까.
와얀에게 연락을 해 내일부터 아이 케어를 시작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약이 있었고, 대신 자신과 함께 일하는 캐시라는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캐시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후기도 전혀 없었지만 오롯이 와얀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녀가 소개해주는데 무슨 일이야 있을라구.
캐시는 야무지게 본인의 짐과 아기를 케어할 포대기를 챙겨 집으로 왔다.
간단히 아기의 건강상태와 수유 간격을 체크한 캐시는 곧장 아이를 안아들고 달래 밥을 먹이기 시작한다.
아직은 내가 옆에 있어서인지 별 불만없이 꿀떡꿀떡 밥을 받아 먹는다.
아기 밥을 먹이는 캐시에게 물었다.
“아기의 설사가 아직 낫지 않았는데, 혹시 여기 설사하는 아기를 위한 분유가 있을까요?
더 이상 흰 죽은 맛이 없어서 그런지 먹으려고 하지 않아요.”
“노 워리! 까르푸나 파파야 슈퍼마켓에 가면 소야 수수(soya susu)가 있어요. 네덜란드산, 일본산, 호주산 종류도 많으니 시간 날 때 가봐요. 애는 나한테 맡기고요”
발리 시터 짬밥 6년인 캐시는 뭐가 고민이냐며 바로 해결책을 찾아준다.
이후 발리에서 아가를 키우는 앨리스님에게도 연락이 왔다.
본인의 베이비시터도 소이분유를 추천했다고 했다.
와, 이래서 시터가 필요한 거구나.
비단 아이를 맡기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알 수 없었던 발리에서의 육아 정보까지 알게 되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애 설사도 내일이면 당장 나을 것만 같다!
아직 분유를 사러 나가기엔 아기가 시터를 낯설어 하는 듯 하여 조금 더 함께 있기로 했다.
눈 앞에는 있되, 조금 널찍이 떨어져 있어본다.
옆에서 졸졸 쫓아다니면 시터도 나도 서로 피곤해질 듯 하여 나는 아기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시야 안에만 머무는 것으로.
오늘따라 수영장엔 지후 또래의 아기부터 초딩들까지 애들로 북적인다.
아기들의 주변엔 또 다른 시터들이 함께 한다.
캐시가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호주사람들은 시터가 오면 뒤도 안돌아보고 애를 맡기고 나가요. 어쩜 연락도 한 번 없다니까!
근데 그게 애들한텐 좋아. 애가 우는 건 5분 남짓이지, 그 이후론 엄마도 잊고 잘 놀아요. 그러니 너무 걱정마”
내 할 일은 못하고 애만 졸졸 쫓아다니는 내 시선을 눈치 챈 건가,
하긴 듣고보니 애보다 내가 불리불안이 더 심한 것 같기도.
그리하야 큰 맘을 먹고 자리를 비워보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 분유를 사러 가려면 누군가는 나갔다 와야 했고, 그걸 해야 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친정 부모님은 이미 울루와뚜로 투어를 떠난 뒤이므로)
발리살이 3일차, 이렇게 일탈 아닌 일탈을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