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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Jeong Jul 13. 2021

가해자의 커뮤니케이션

자양분일 수도 있고, 독약일 수도 있고.


최근에 페이스북에서 어떤 분이 친구 신청을 했다.

이름 참 낯익다 싶던 차 떠오른 기억.


10년 전, 그러니까 마케팅은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랐던 찌질한 암흑의 취준생 시절이었다.




한 유통기업이 '대학생 서포터즈'를 운영했었다.

(지금 MZ세대 친구들이야 워낙 똑 부러져서, 이런 거 함부로 운영하면 큰일 난다, 어디 감히 열정 페이를 날로 떼먹으면서 아이디어만 쏙 빼가려고)

근데 그땐 대기업들이 1020세대의 생각을 읽고 마케팅 아이디어를 골수까지 뽑아 먹기에 말 그대로 ‘가성비 내려오는’ 참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아무튼 그 브랜드의 대학생 서포터즈도 나름 또래 사이에서 유명했다. 포털 사이트 내에 공식 카페도 운영할 정도로 커뮤니티도 꽤 활발해서, 성공적인 대학생 활용 마케팅의 사례로 왕왕 언급되기도 했으니까.



당시 그 서포터즈를 운영하던 페친분은 나름의 닉네임도 갖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저 사람이 속한 곳에서는, 몰라도 스펙 한 줄은 더 채울 수 있을 것 같았고.


급한 맘에 지원서를 넣었고, 뭔가를 실수했다.

자격요건에 벗어나는 내용을 적었던 것 같다.

댓글로 수정 피드백을 받았고, 이는 전적으로 내 실수였기에 수정 후 다시 업로드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사람의 트위터에,


 잘 알고 넣던가 짜증 나게….


라는 글이 올라왔다.

퍼거슨이 말했다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



손이 달달 떨렸다.

분명히 상대방이 저격한 건 나였다.

당시 공개적인 카페로 미션 수행과 지원을 할 수 있었던 시스템이라, 당시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



지금 내 성격이라면 "저기요, 이것도 모종의 갑질입니다. 모를 수도 있지 개인적인 비방 발언을 공개적으로 작성하다니 당장 공론화하겠습니다” 하며 반박하고도 남았을 텐데.


취업 준비로 한없이 쪼그라든 그때 내 마음은 안 그랬다. 안 그래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데 이 사람까지 그렇게 말해버리니까, 모르긴 몰라도 참 인생 답도 없네 싶었다.


이후 스치며 지나간 수많은 면접관과, 무슨무슨 캠프의 멘토 이름 생각은 안 나지만 그 마케터 이름 세 글자는 10년이 지난 여전히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한 이는, 바로 그 마케터였다.






한편으론, 많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내가, 또는 우리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위의 마케터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한 번 보고 말 인연일 수 있을지라도, 속마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티가 난다. 상대방은 바보가 아니고, 불쾌함을 오롯이 받아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 힘의 차이까지 더한다면, 그 말의 무게엔 가중치가 붙는다.


(*놀랍게도 권력을 가진 자, 주로 업력이 높거나 상사인 이들은 예상외로 권력의 무게를 인지하지 못한다. 전자에 속하는 이들은 대체로 나는 사람대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을 한 건데 왜 힘의 경중이냐고 반박하는데요, 그러시면 곤란해요.

우리는 그걸 ‘권력權力’이라 부르기로 했거든요. 사회적 합의가 있었어요)


가중치의 무게까지 받는 피해자는 두 분류로 나뉜다.



맷집이 세지거나


일어나지 못하거나



아마도 나는, 그때의 상처로 맷집이 세지는 편을 선택했던 것 같다.

재무회계를 해도 되고, 회계사 공부를 했어도 될 전공을 두고, 저놈 한 번 이겨보자고 마케팅과 홍보에 딥 다이브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모르긴 몰라도 이쯤이면 대충 같은 눈높이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업력도 쌓였다.

나라는 자아에게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마음의 상처로 안 새기고 잘 걸어온 거라고 믿지 싶다.

물론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마주칠지 모른다.

때린 이는 기억 못 해도 맞은 이는 기억한다.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 불러온 과거의 기억으로,

가해자의 커뮤니케이션을 지양하고 경계하기로 한다.


아무튼 이 글을 보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때린이여,

덕분에 딴 길로 안 새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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