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킴 Nov 29. 2022

야구팬이 보는 월드컵

<월드컵>

첫 월드컵은 2002년이었다. 월드컵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그 때, 사람들은 전부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고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월드컵 열심히 응원하기, 빨간색 옷 입고 등교하기 같은 걸 숙제로 내주었다. 아파트 단지엔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었고, 골을 넣으면 동시에 아파트에서 함성이 터졌다. 어느집 할 것 없이 환희에 찬 소리가 집 밖을 뚫고 나왔다. 이처럼 나의 첫 월드컵은 강렬했다. 대한민국에서 열린 월드컵이었고, 성적도 좋았다.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첫 월드컵이 그렇게 강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스포츠를 좋아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서일까. 이후로도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보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월드컵을 꼬박꼬박 챙겨봤다. 특히 박지성, 손흥민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기를 종종 보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재밌어졌던 것 같다. A팀에 있던 선수와 B팀에 있던 선수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클럽이 아닌 한 국가를 위해 같이 뛰고 있는 상황이 제법 재밌다.


이번엔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 가서 다같이 축구를 봤다. 심지어 축구 보기 유명한 곳은 예약을 하지 못해 들어가지도 못했고 겨우겨우 찾아서 들어간 곳도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테이블이 꽉 찼다. 가게 내부엔 곳곳에 TV가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터질듯한 음량으로 축구 해설이 흘러나왔다. 아쉬운 장면들이 있을 때마다 동시에 탄식이 터졌고, 사람들은 술잔을 부딪혔다. 초반 2실점을 할 땐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기도 했지만 연이어 두 골이 터졌을 땐 너나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르며 서로 손뼉을 쳤다. 열광을 뛰어넘어 약간의 광기가 흘렀다. 결과적으로 경기에 지긴했지만 정말 재밌었다. 원래 지는 경기는 잘 기억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경기는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축구를 꽤나 좋아하는 것처럼 적었지만 사실 나는 축구보다는 야구다. 축구는 간단한 룰만 알고 있을 뿐 전술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반면 야구는 매년 '과몰입'해서 보는 편이다. 그래서 야구팬인 나는 월드컵 기간만 되면 괜히 아쉽다. 야구는 국제적으로 인기있는 스포츠가 아니라 올림픽에서도 퇴출당했고 (도쿄 올림픽에서는 경기를 하긴 했다만..) WBC라는 국제 경기가 있지만 월드컵처럼 전세계가 들끓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다같이 경기에 열광하며 함께 봐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축구는 이렇게 인기가 많은데 왜 야구는 인기가 없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장비가 필요한 스포츠들이나 룰이 복잡한 경기들 (야구는 둘 모두에 해당한다.) 은 보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축구는 공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말이다. 커다란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선수들을 보면 90분이 금방 흐른다. 골대 안에 공 하나 집어 넣어 보겠다고 죽을 힘을 다해 뛰는 선수들이 결국에 골을 넣고야 말 때, 시원하게 흔들리는 그물을 보면 절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이제 월드컵 예선은 한 경기가 남았다. 16강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상황으로 봐선 남은 경기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월드컵이 마무리되고 나면 나는 야구 시즌 개막만 기다리게 되겠지. 시간이 얼른 흘러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축구보다는 축구를 좋아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