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킴 Feb 20. 2023

내게 학교는 전쟁터와 비슷했다

<학교>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대학교 4년을 다녔지만, 내게 '학교'라고 하면 역시 고등학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기숙형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렇다보니 등하교를 하는 다른 학교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생활을 했다. 일단 등교와 하교가 없었다. 우리는 기숙사에서 나오는 아침 알람을 듣고 일어나 얼굴에 대충 물만 묻힌 채 학교로 갔다. 등굣길은 기숙사 건물과 학교 건물을 잇는 구름다리가 전부였다. 


0교시를 시작으로 정규 교과시간이 끝나면 석식을 먹은 후 자습을 했다. 4시간 정도의 자습시간 중간엔 간식시간도 있었다. 보통 학교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한 번, 혹은 많으면 두 번이다. 하지만 나는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간식까지 총 네 번의 끼니를 학교에서 때웠다. 학교에서 주는 밥 먹으며 그렇게 18시간 정도를 학교에서 보냈다. 


하교랄 게 없었다. 18시간을 학교에서 보낸 후 온몸의 에너지가 탈탈 털린 채 터벅터벅 다시 구름다리를 건너 기숙사로 오는 게 전부였다. 하굣길에서 볼 수 있는 노을, 친구들과 먹는 떡볶이 같은 감성 적인 풍경은 겪은 적이 없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캄캄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서, 그런 학교에서 보냈던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정말 안쓰럽다.


학교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는 내가 뛰어넘어야 할 적이었다. 내 등수가 오르면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진다. 절대 모두가 잘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웃으면 누군가는 울어야 했다. 그래서 모두들 예민하고 지쳐있었지만 동시에 독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낸 건 내가 그토록 이기고 싶었던, 이겨야 했던, 그리고 나를 울렸던 친구들 때문이었다. 


공부가 너무 힘들어 몸과 마음이 녹아내릴 때 주위를 둘러보면 다 나랑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각자 느끼는 힘듦의 모양은 달랐겠지만 비슷한 결의 감정을 공유하다 보니 서로서로 의지를 많이 했다. 굳이 힘들다고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고, 그 와중에 별 것 아닌 걸로 함께 깔깔대며 웃고 나면 조금이나마 괜찮아졌다. 다음날 눈을 뜨면 또다시 치열하게 독기 뿜으면서, 누군가를 밟고 한 계단이라도 더 올라가려 애써야 할 테지만 지금 당장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건 친구들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가지 양가감정을 가진 채 밥도 같이 먹고 수업도 같이 듣고 공부도 같이 하고 심지어 잠도 같이 잔다. 그러다보면 적이었던 친구는 어느새 전우가 된다. 친구, 가족 그 이상의 감정이다. 


적과 전우.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존재를 버텨내야 했던 곳. 학교는 치열했고 때론 잔인한 전쟁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지 우리는 아직도 오래된 친구라는 사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