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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 작가 Oct 30. 2021

MBTI 조차 나의 차가움을 설명하고 있다.

ENTJ가 가장 많이 듣는 말.



MBTI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무료로 할 수 있는 그 MBTI 검사 말이다. 두 번을 검사했는데 모두 ENFJ가 나왔고, 결과를 확인하니 내가 모르는 다른 내가 설명되어 있었다. 그래서 혈액형 혹은 별자리 결과처럼 맞지 않는다고 치부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친구의 권유로 유료 MBTI 검사를 해봤는데 결과는 ENTJ였다. 알파벳 한 자리만 바뀌었을 뿐인데 그곳엔 이제야 찾은, 본연의 내가 있었다. 해석 중 가장 현실 웃음 터진 부분은 ENTJ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1위였는데 바로, "넌 너무 차가워."였다.


이럴 수가. 

혈액형, 별자리, 그 어디쯤으로 치부했던 MBTI가 내가 들어온 말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하물며 저 말은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에게 듣던 말이었다. 






고백하자면, 그동안 사실 난 좀 별난 인간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 따우 성격으로 회사 생활은 글렀어라고 진즉 생각했었다. 몇몇 일화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일화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대학 전공을 살려 작은 기획사에서 짧게 일했을 때였다. 내 위에 과장인지 팀장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중요한 척 존재하던 상사는 대형 회사에서 스카우트되어 들어온 사람이었는데 한때 본인이 이끌 던 팀원만 열댓 명이 넘고, 유명한 가수 누구를 본인이 키웠으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부업 겸 취미 삼아 대학 강의에 나가는 아주 가정적인 분이었다. 


작은 회사들이 그렇듯 정작 해야 하는 실무는 대부분 내 몫이었고, 그는 외근이 잦았는데 접대라는 용어를 쓰며 방송국 피디나 아는 지인들을 만나는 형태의 일이었다. (제대로 만났는지 알 수 없음) 그가 일하는 형태가 마음에 안 들어 소속 아티스트도 나도 불만이 쌓여가던 어느 날. 소속 가수의 앨범을 작업하는 과정 중 앨범 표지 디자인 제작을 하던 때 일은 터졌다.


빨리 넘겨줘야 하는 일이라 나는 일단 디자이너에게 넘겨주고, 상사에게 후 보고를 했는데 그는 "중간에 왜 내게 보고를 하지 않았어?"와 "디자이너가 나한테 물어봤는데 내가 내용을 모르는 게 말이 돼?"라는 이유만으로 저녁 9시로 향하는 1시간이 넘도록 전화로 소리를 질러댔다. 디자이너가 중간에 그에게 직접 전화했고, 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게 자존심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처음엔 이 사람이 내게 왜 이리 화가 났을까? 이해해보려 했다. 어쨌든 빨리 넘겨줘야 하는 일은 잘 넘어갔고, 결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까. 


일방적인 짜증과 폭언이 (욕은 안 함) 40분을 향해갈 때쯤, 그제야 난 서서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제 잘못이에요."라는 말을 들어야 그의 분노가 잠잠해질 것이란 걸.


물론 1시간 넘게 폭언을 들을 만큼 못 하지 않았다 확신했지만, 사회생활이라는 어떠한가? 한 게 없어도, 때론 했다고 해야 한다. 난 서글픈 으른이니까.


때문에 억지로 영혼을 담아 입을 뗐다.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해, 먼저 행동하고 후 보고해서 죄송하다고. 


하지만 그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발끝부터 끌어모은 영혼을 담은 사과를 원했던 것 같다. 그쯤 되니 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딱히 더 할 말도 없었다. 한 발 물러난 내 사과도, 그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는 걸 확신했으니까.


전화가 끝을 향해 갈 때쯤, 조용해진 내게 그는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그래서 답했다.

"네."

"없다고?"

"네."



얼마 후, 난 회사를 그만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사람도 해고되다시피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아티스트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대표에게 항의한 모양이었다.


때때로 회사 생활을 하며 부당한, 이해할 수 없는 등의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나는 그걸 참을 수 없었고 결국 내 방식대로 해결해왔다. 물론 좋은 분들을 만나 의견을 제안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로 발전해 잘 된 케이스도 많다. 하지만 세상엔 어른 답지 못 한 어른들이 많았다.


뒤돌아보니 한 회사에 오래 다니지 못하는 내가, 그 순간, 그걸 참지 못하는 내가 별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험난한 사회생활을 다른 성인들은 어떻게 그리도 잘한단 말인가. 난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나 보다 하면서. 



그런데 새로 찾은 MBTI인, ENTJ에 관련된 콘텐츠를 검색해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다 같진 않겠지만, 그들이 달아 놓은 댓글과 반응에 한편으로는 안심하기도 했다. 내가 별종이 아니었구나, 나랑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고.


모든 걸 잘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가끔은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면서, 그걸 숨길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너도 좀 적당히 해라.'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늦었지만 그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했더라면, 그때 나라도 조금 더 어른스럽게 대처했더라면. 하는 반성은 말단 직원인 내게 악착같이 분풀이하던 그 사람처럼 되고 싶지 않은, 내 작은 노력 중 하나이다. 


나는 그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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