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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러가는하루 Jul 24. 2023

"너는 큰돈이 안 따라붙는 사주라..."

돈보다 든든한 마음

얼마 전 지인의 SNS를 보다가 멈칫했다. SNS 속 지인은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화려한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집이었다. 인테리어는 또 어떤가. 비싸 보이는 상아색 테이블과 그 위에 예쁘게 세팅된 고급 화병, 유명 브랜드 식기들이 마치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는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SNS를 보다 흠칫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피드 속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은 뷰 좋은 집에, 멋진 인테리어에, 고급스러운 소품까지 갖추고 산다. 반면 내가 사는 곳은 나 하나 누우면 남는 공간 없는 조그만 원룸. 그런데도 매달 월세에 생활비 등등을 내고 저축을 소박하게 하면 인테리어에 돈을 쓸 여유는 없다.


생각하다 보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 남들은 어떻게 저걸 다 갖추고 살지? 대체 얼마를 벌길래? 내 연봉이 제일 적은가? 난 언제쯤 넉넉하게 살지?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쯤, 본가에 가서 엄마에게 넋두리를 하며 돈을 더 벌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냥 조금씩 버는 거에 만족하고 살아. 돈, 돈거리지 않고 살아야 오래 산다. 미안한데, 내가 널 그렇게 낳았어." 무슨 말인가 싶어 황당하게 엄마를 바라보았다.


"너는 아무리 돈을 좇아 살려고 해도 큰돈이 안 따라붙는 사주란다. 돈, 돈 하면 오히려 건강이나 해치고 더 안 좋아진대."


엄마는 나를 배에 품고 있을 때부터 명리학자를 만나 아이가 어떤 날짜에 태어나는 게 좋을지 물었다고 한다. 내가 최대한 좋은 사주로 태어나서 잘 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의 예정일 근처에는 엄마의 가치관에 썩 맞는 날짜가 없었고, 그나마 고르고 고른 날짜가 나의 생일이 되었다. 그러니까 남들은 일단 태어난 다음에 자기 사주팔자가 정해지는데, 나는 우선 사주팔자를 맞춰보고 그 이후에 태어난 것이다. 큰돈이 안 붙고 돈을 따라 살면 오히려 건강이 망가지는, 그런 날짜에 말이다.


'그러니까 내 팔자까지 엄마가 미리 다 선택해 놓았다는 이야기인가?' 엄마는 평소 사주 이야기를 즐기지만 나는 아니다. 절대 바뀌지 않는 생년월일시 숫자로 내 삶의 무언가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찜찜한 무력감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마가 정해놓은 날짜라니, 꼭 내 삶 전체가 엄마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실은 엄마가 정한 날짜라고 해도 풍족하게 산다는 사주였다면 기분이 조금 달랐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고 계속 "지금보다 돈 더 벌 생각하지 말아라"라는 말만 했다.


"아냐 엄마. 친구 중에 나랑 생일 같은 애가 있는데, 걔 되게 잘 살아. 직장도 좋은 데 나가고, 해외여행이랑 호캉스도 잘 다니고. 걘 돈 걱정 없어 보이던데?"


"사람은 다 안 보이는 구석이 있어. 속마음은 아무도 모르니까 너도 너무 남들 따라가려고 아등바등하지 마."


이미 알고는 있었다. 나와 생일이 같은데 잘 산다는 그 친구도 사실 이런저런 사정이 많은 아이인 것을그래도 그때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열심히 이것저것 해보면 너도 남부럽지 않게 넉넉히 살 수 있어'였다. 지금은 성에 차지 않아도 나중에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엄마는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근데 엄마... 가난한데 오래 살기만 하면... 뭐가 좋아?"


엄마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로 난 다시 조그만 원룸으로 돌아와 평일에는 직장에 나가고 주말에는 취미생활과 휴식을 하며 평범하게 지냈다. 하지만 지나간 대화는 잊혀야 하기 마련인데 엄마와 나눈 사주 이야기가 계속 생각났다.


이번 생에서 난 부모였던 적이 없다. 딱히 결혼과 출산에 의지도 없으니 앞으로도 부모의 삶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부자가 못 돼도 좋으니 자식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만을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다. 가난한데 오래 살기만 하면 뭐가 좋냐는 질문에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나고 나서야 그때 그 말은 좀 안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이후로도 나는 여전히 SNS 속 타인들이 부러웠지만 엄마 앞에서 돈을 더 벌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앞에서만 티를 안 내고 뒤로는 뭔가 궁리를 하고 있었단 게 아니라, 지금도 너무 피곤해서 다른 사이드잡을 할 기력이 정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귀엽고 소박한 재물에만 만족해야 한다는 사주에 찜찜한 기분은 계속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니 그 사주 때문에 지금껏 좋은 점도 있었다. 내가 돈을 잘 못 벌어도 부모님이 그냥 그러려니 하신다는 점이다.  


'네가 돈을 많이 못 버는 건 너의 탓이 아니라 우리가 널 그 날짜에 낳았기 때문이란다. 넌 그냥 건강만 하렴.'


나는 능력 있는 다른 집 자식들처럼 부모님께 해외여행을 보내드리거나 오래된 자동차를 새것으로 바꿔드리고 싶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나에게 물질적인 기대가 없으시다. 그래서 실망하지도 않으신다. 내가 기본만 해도, 매일 잘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혼자 밥을 챙겨 먹고, 집 청소를 제때 하고, 병치레를 하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기뻐하신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왠지 마음이 따뜻하고 안심되고 충만해진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전부 원점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지금은 돈을 더 벌기보다 건강한 직장인 개미로 살면서 SNS부터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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