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 백조 May 23. 2023

꺾이지 않는 마음을 만드는 연대

5월의 어느 날, 늦은 저녁 시간까지 아들의 축구 훈련이 있었다. 산책도 하고, 훈련하는 모습도 볼 겸 운동장을 찾았다. 그 곳에는 아들이 훈련 받고 있는 작은 풋살장과 초록 잔디가 드넓게 펼쳐진 넓은 축구장이 있었다. 8시가 넘은 늦은 저녁 시간이었지만, 넓은 축구장에는 22명의 여성이 함성과 함께 축구공을 이리저리 몰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장관이라 한참을 쳐다보았다. 이것이 바로 여성 축구구나.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보고, TV로만 보았던 것을 내 눈으로 직관하다니, 실로 놀라웠다. 단단한 근육을 뽐내며 공을 몰고 다니는 여성들의 에너지가 공기 중으로 퍼져 나에게 다가올 때 짜릿함 내지는 쾌감이 훅훅 올라왔다. 예전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보며 여성들의 힘과 단단함에 광분했던 모습과 같달까. 축구장 안의 여성 연대가 컴컴한 밤을 훤히 비추는 듯 해,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전통적으로 축구는 남성 스포츠로 뿌리 내렸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여자 축구가 남성 축구보다 관중을 더 많이 확보하며 인기가 매우 높았으나 축구협회는 1921년 12월 5일에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은 스포츠라며 영국 내 여성 축구를 금지하였다고 한다. 이 금지는 50여년이 지난 후에야 풀렸다. 이란의 경우는 1981년 축구 경기장 내 여성이 출입하여 관람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여성 출입 불허는 38년 후인 2018년에서야 철회되었다. 그러나 여성 출입 허용이 선수단과 관계있는 일부 여성들에게만 해당된 것이라 빛살 좋은 개살구라는 소리를 들었다. 또, 2019년에는 한 여성이 축구장을 몰래 들어가 경기를 관람하려다가 체포된 일도 있었다. 그 여성은 징역형을 두려워해 분신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여성의 경기장 입장 전체 허용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졌으나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근 여성 축구가 활기를 띄면서 일반 여성에게도 조금씩 축구를 경험할 기회가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성 규범과 고정관념/편견에 도전하며 여성에게도 사회적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라 그렇다. 그러나 여전히 목마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즐비한들 뭣하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최근 쟁점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스포츠계의 남녀 임금 및 보상 불균형이다. 잉글랜드 FA 컵 남자 우승팀은 상금으로 한화 303억 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 우승팀에게는 한화 841만 원 정도만 지급되었다고 하니, 심해도 너무 심하게 차이가 난다. 이런 이유로 세계 여러 여자 축구팀들은 동일 임금을 요구하는 운동을 계속해서 펼쳐오고 있다. 실제적인 변화가 있지는 않더라도 스포츠계의 남녀 임금 불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다른 여성 선수들이 목소리를 내고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끈 계기가 되었다. 실례로 미국의 한 고교 여성 축구팀은 경기 중 첫 골이 나오자, 상의 유니폼을 탈의하고 “Equal Pay (동일 임금)”가 적혀 있는 흰색 티셔츠로 세리머니를 하였다. 이후 티셔츠는 불티나게 팔렸는데,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깔린 남녀 간의 불평등한 사회시스템 전환을 촉구하는 사회적 연대에 뜻을 모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의 더 나은 임금과 근무조건을 위한 여성 축구팀의 연대는 다른 여성 스포츠와 연합하며 그 힘을 더욱 확산해 나갔다. 한 예로 미국 여성 축구 국가대표팀 USWNT는 6년 동안 임금 차별에 항의하며 미국 법원을 상대로 소송 해왔다고 한다. 그 과정 중에 여성의 차등한 인권 대우에 반기를 들고 싸우는 리그 선수들에 힘을 보태기 위해 WNBA 경기에 참여하며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해야 한다는 사회적 연대를 호소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힘써온 여성 축구팀의 연대는 조금씩 결실을 보는 듯하다. 2022년 미국의 경우 여성 축구대표팀에 남성 대표팀 선수와 같은 수준의 성평등 임금을 적용하겠다고 확정하였다. 브라질 축구협회 역시 상급 및 임금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이는 브라질 여성 축구 선수도 세계적인 선수 네미마르와 동일한 연금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여성 축구 선수들은 운동 시설, 운동 장비 등 스포츠계의 대우와 기회 확장에 대한 목소리를 계속해서 높이고 있다. 영국 여자 축구 선수들은 학교에서부터 여학생도 남학생과 동등하게 축구를 접할 기회를 보장해달라는 연대 운동을 시작하였다. 남녀 간의 경제적인 평등을 넘어 어느 상황에서도 남녀 간의 동등한 기회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을 퍼트리고 있다.  


“나의 신은 축구장에 산다네.
그녀는 용맹하게 슛을 하고 장엄하게 프리킥을 날리며 기똥차게 막아내지.
그녀는 누구나 청할 수 있는 최고의 연인...”


위의 구절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Chosen FEW Lesbian Soccer Club’ 축구팀에서 연습이 끝나면 선수들끼리 샌드위치와 와인을 나누어 먹으며 부르는 노래 가사이다. 스피드, 기술, 파워가 남성보다 약하다고 축구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박진감과 몰입도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돌파력과 에너지는 남성 축구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분위기를 이끌고 팀을 하나로 모으는 힘은 남성 팀보다 뛰어나 축구장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든다. 


Chosen FEW Lesbian Soccer Club’ 축구팀 선수들은 자신들을 단지 축구만 하려고 모인 스포츠팀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축구를 하면서 삶을 나누고, 같이 웃고 울고, 활동도 함께 하면서 서로 꺾이지 않게 끈끈한 연대로 동여맨다. 그러니까 꺾이지 않는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회를 가지기 위해 여성 축구팀은 서로서로 안으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레퍼런스)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6258852

https://ildaro.com/5385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3903

https://www.yna.co.kr/view/AKR20220825087800007

매거진의 이전글 협업을 부르는 거버넌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