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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lsim Aug 31. 2022

한 사람의 호흡은 파도와 같다

100-3

호흡은 몸 안에 있는 파도와 같다.


심해 밑바닥에 어떤 게 가라앉아 있는지, 어떤 것들이 자리 잡고 사는지 알 수 없다.

그 심해 위에 수심 40미터 안팎의 지점. 그곳의 또 다른 상태, 물살의 빠르기와 방향 그리고 온도까지도. 심해와는 완전히 다르다. 심해에 있는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존재하는 수면. 수면의 언어. 파도. 


한 사람의 호흡은 파도와 같다.


그 사람의 깊은 마음속 밑바닥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어떤 것들이 묻혀있고 또 어떤 것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지 대부분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지만, 그것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결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속 수심 40미터 지점의 어디. 그곳은 비교적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고 바다 위로 지나가는 것들과 다른 바다에서 건너온 것들의 영향도 많이 받지만 그래도 그 지점은 여전히 오래된 것들의 오래된 서식지. 너무나 익숙해져서 굳이 의식하지 않지만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하는 습관, 생각, 움직임들이 자리하고 있는. 마음속 수심 40미터 지점의 어디.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의 수면. 그 수면에 존재하는 파도.

마음의 수면은 늘 변화무쌍하다. 태풍이 불면 거친 파도를 몰아치며 수심 위에 동동 떠있던 소소한 것부터 단단한 것들까지 모조리 심해로 삼켜버리기도 하지만, 날씨가 맑은 날에는 아주 작은 꽃잎 하나도 귀히 여기며 여린 잎 하나하나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고요히 띄워낸다.


호흡은 마음의 수면에 존재하는 파도다.

사람의 심리는 호흡에 영향을 준다. 호흡은 또 그 사람의 심리에 영향을 준다.

공황 장애는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불안함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하지만, 

마음의 수면에 존재하는 호흡이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의 파도처럼 흉폭해지면서 시작되기도 한다.


오늘 틈틈이, 내 마음 안에 있는 파도를 최대한 자주 느껴보았다.

내가 그 파도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걸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인데도.

파도는 금세 잠잠해진다. 


내 호흡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따듯하고 맑은 날의 해님과도 같은 것일까.

잔잔하고 고요해진 호흡 위에 작은 꽃잎이 뽀송뽀송하게 떠다닌다.

들숨과 날숨에서 따듯한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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