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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ny Rain Jul 30. 2022

고양이가 사라졌다-2

끼적끼적, 소설입니다. 계속해서 수정 중...

그때 수업 시작 종이 울렸다.

"윽, 생물 오겠다."

히메는 자기 반으로 서둘러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굼뜨고 미적미적 거리길 좋아하는 아이이지만, 그때는 어딘가 허둥지둥 서두르는 게 느껴졌다.

급히 의자에서 일어나는 히메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내가 쓴 이야기 어떤데?"

히메는 대답도 없이 후다닥 일어나 교실 문을 빠져나갔다.

'그 태도 이상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하교할 때 볼 테니까 그때 물어봐야지.


학교 정문 앞에서 히메를 기다렸다.

교실에 있다가 같이 나와도 되지만, 학교를 얼른 벗어나고 싶어서

나는 항상 일과를 마치면 서둘러 교실을 벗어났다.

게다가 히메네 반에는 내가 싫어하는 아이도 있고...

아, 우리는 매일 함께 하교했다.

그런데 히메는 매일 꿈지럭댔다. 나갈 준비하는데도 느릿느릿했다. 

한 번은 불평했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히메에게는 두 번 말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걸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어쩐지 히메에 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했을 때 납득하고 내가 맞춰가게 되어 버리곤 했다.

학교 정문 밖에 나오면, 왜 그렇게 모든 게 좋아지는지 모르겠다.

부정적인 걸 먼저 생각하는 나도 학교만 나서면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다.

딱히 학교를 나와도 할 게 없으면서 어째서 이렇게 밖에 나온 것만으로도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마치 감옥을 출소한 전과범처럼...

한 번은 히메가 정말 두부를 내민 적도 있었다.

물론 점심으로 나온 간편식 두부였지만.

어쩔 땐 히메의 장난이 좀 뜬금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웃지 않고 그런 그 애를 가만히 쳐다보곤 했다.

'알 수 없는 아이야'라고 말하면, 히메는 '킥킥' 하고 웃었다.

잘 웃지 않는 아이가 가끔 웃을 때 그렇게 웃어 버리면,

어쩐지 나도 따라서 웃게 되었다.

집에 갈 땐 히메랑 같이 가지만, 등교할 때는 각자 알아서 온다.

히메는 매일 조금 늦게 등교했다. 하지만 담임은 아무 소리하지 않았다.

전교 1등을 나무라는 선생님은 없었다.

히메는 늦게 집을 나서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늦었다.

실은, 히메가 늦는 이유가 있다.

그애는 아침마다 삐삐와 놀다가 온다.

삐삐는 매일 그 시각에 히메를 기다리는 것처럼 같은 자리에 먼저 나와 있었다.

그 아이는 아침에 나올 때 삐삐 주려고 먹을 것을 항상 챙겼다.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을 편의점에서 사다 두고 매일 챙겨 나와서는 삐삐에게 주는 것이었다.

하교할 땐 왜 챙겨주지 않냐고 물었더니, 다 사정이 있다고 했다.

어딘가 쓸쓸한 표정으로, "다 사정이 있어."

말은 꼭 센님처럼 하면서 표정은 그렇지 않은 히메다.

알고 보니 그 시간에 삐삐는 다른 데서 노는 것이었다.

우리가 매일 등교하고 하교하듯 고양이도 고양이만의 묘생 루틴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히메는 아침에 삐삐를 만나서는 먼저 찌~인한 인사를 나눴다.

물론 삐삐는 가만히 식빵을 구울 뿐, 극성인 건 히메였다.

삐삐는 눈을 감고는 그루밍이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아침밥 때문에 번거로운 인사를 견디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잘 설명할 순 없지만, 그걸 느낀 적이 있었다.

히메가 몸이 아파 어느 날 아침 삐삐를 챙길 수 없었는데, 

그날 종일 히메의 집앞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삐삐를 봤다.

저녁밥도 먹지 않고 히메의 집앞을 지켰다.

조금 상태가 나아진 히메가 나와서 쓰다듬어줬을 때에서야 자기 갈 길을 갔다.

히메는 바로 다음 날 등교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아져서 다시 삐삐와 아침인사를 나눴다.


"내가 쓴 이야기 어떤 것 같아?" 함께 하교하면서 아까 듣지 못한 답을 들으려고 히메에게 다시 물었다.

히메는 또 뭘 생각하는지 모를 얼굴로 걷고 있었다. 분명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딱히 표현하지 않는 일이 많은 히메였다. 

그 표정.... 사실 좋았다.

"좀 더 들어보고 말해줄게."

이봐, 히메. 소설은 읽는 거야.

어느새 나는 오디오북이 되어 있었다.

"알았어." 나는 군말 없이 히메의 오디오북이 되기를 자처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긴 했어."

이렇게 말하는 히메를 쳐다봤다. 히메도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저 말은 진심이다.' 그렇게 느꼈다.

"계속 써봐."

그리고 살며시 웃었다. 저 미소 때문에 히메랑 다니는 것이었다. 

고양이를 챙기는 다정함을 내게도 조금은 보여주는 것이라고 느끼게 하는 저 미소. 

사실, 히메가 다정하지 않아도 히메랑 다녔을 것이다. 

옆에서 재잘거리면 드러나곤 하는 그 애의 반응이 좋았다. 

대단한 반응은 아니지만, 무심한 듯하면서 뭔가 그럴 듯한 반응을 해주니까.

나는 그날도 히메에게 재잘재잘 거렸다.

혼자 웃고, 혼자 열을 냈다.

그런데 히메는 듣지 않는 것 같으면서 다 듣고 있었다.

질문하면 제대로 답해줬으니까, 알고 있었다.

"사실, 우리 얘기를 소설에 담았다고 네가 화낼 줄 알았어." 

"...?"

"있잖아, 나는 아직 히메를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히메는 아무 말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간격이 좋아, 라고 생각하는 걸 알았다.


히메는 매일 집에 도착하자마자, 학원에 갈 준비를 한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공부에 온통 집중해 있을 때다.

나는 시험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

포기한 건 아니지만, 점수에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런 기준을 유지할 작정이었다.

히메는 모범생이었다. 특히 모범의 기준이 성적이라면 '스페셜 특급 모범생'이었다.

나는 그냥 평범생? 그냥 중간 석차였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중간은 그리 좋은 건 아니라는 의미다.

나는 그닥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그때는 찾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느닷없이 내게 물었다.

그때, 그러니까 무언가 먹을 것을 엄마랑 함께 만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즐겨 보는 드라마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는데, 우리는 활짝 웃고 있었다.

"너는 뭐가 될 생각이야?"

"응?"

"뭔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내가 당황하자, 엄마도 당황했다.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하는 게 표정에 보였다.

"그... 조금 대답하기 힘든 이야기이겠지만, 한 번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 전에는 그게 섭섭했거든. 아무도 묻지 않는 거야.

'넌 뭐가 되고 싶어?' 아무도 묻지 않았어. 마치 난 아무것도 될 필요없다는 것처럼.

그래서 그게 섭섭했어.

근데 그렇게 그냥 흘러가다 보니,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더라.

마치 커다란 강에 빠진 사람처럼. 그 강물의 흐름에 모든 걸 맡겨둔 사람처럼.

그냥 물이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포기한 사람처럼.

나는 그게 섭섭했고, 후회됐고, 그래서 꼭 내 딸에게는 물어야겠다고 생각했어.

묻고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어.

물론 무엇을 도와야 할지 잘 모르지만.

그래서 일단 물어는 봐야겠다고 생각했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은 건 아닌지, 내가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

딱 지금쯤 한 번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나는 엄마 얼굴을 눈이 똥그래져서 쳐다봤다.

"그냥 지금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그때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 손으로 무언가를 쪼무락 대면서,

대답을 생각했던 기억이다.

엄마가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볼 줄은 생각지 못했으니까.

나는 그런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준비해놓지 않았으니까.


사실, 나는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말해도 될까 싶었다.

'되고 싶은 사람 같은 거 없어'라고 말이다.

사실, 글쓰는 일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학교 글쓰기 대회 같은 데 나가본 적도 없고,

창작 글쓰기 시험 같은 것에 입상을 하거나 순위에 들었던 적이 없으니까

글쓰는 직업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지 않았다.

글쓰기 대회 같은 것도 공부 잘하는 애들에게만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어쨌든 공부 잘하는 애들이 꼭 순위권에 들었다.

물론 아예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래도 꾸준히 글을 써왔던 건 사실이니까, 한 번쯤 글쓰는 직업을 꿈꿔보긴 했었다.

기묘한 순간에 칭찬받은 적은 한 번 있었다. -나는 칭찬이었다고 기억한다.

문학 수업 때였다. 문학 선생님은 항상 교과서 외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신다.

물론 주로 출판계니, 문학계니 아이들의 관심 밖의 이야기들이긴 했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곤 했다.

그날도 우리나라의 문학계의 문제점을 설파하실 때였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을 향한 성토를 침을 튀며 말씀하셨다.

"요즘 젊은 작가 중에 장편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나는 없다고 봐.

멋드러진 문장으로 기교나 부리는 작가들 천지지. 장편도 못 쓰는 이를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장편을 쓸 수 있어야 작가라고 생각해.

고작 시시한 단편이나 끄적 거리는 건 습작일 뿐이야."

완전히 동의할 순 없었지만, 그러잖아도 고전들을 읽어해치우고 있던 때라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때 문학샘과 눈이 마주쳤다. 바로 고개를 숙였지만...

문학 샘은 말을 이어갔다.

"우리 학교에 작가가 될 만한 친구가 있을까?"

당연히 답은 없었다. 그러다 한쪽에서 누군가 우리 반 1등 이름을 외쳤다.

"혜미요!" 그리고 여기저기서 긍정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웃음소리가 잦아들 때쯤 문학 샘은 살며시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내 이름을 불렀다.

"민족의 딸! 넌 어때? 작가가 될 거야?"

 문학은 나를 '민족의 딸'이라고 불렀다. 내가 3월 1일에 태어난 이유로.

히메랑 같이 지나가는 걸 보면, 종종 '어이, 민족의 자매님들!'이라고 부르며

총총걸음으로 반가움을 한껏 표현하시며 인사하시곤 했다.

히메는 8월 15일생이다. 

6월 6일에 태어난 다른 친구까지 뭉쳐 있으면,

우리는 민족의 정기가 됐다.


"내 생각에는 너라면, 작가가 될 수 있을 것같은데.

계속 써봐. 저번에 그 단편 재밌더라."

내 눈은 동그래졌고, 교실은 침묵했다.

"맨날 공부 잘하는 애들만 글짓기 대회에 내보내고, 문제야 문제."

그러면서 문학 샘은 문학책을 펼쳤다.

"자자, 수업하자."

문학 샘 자신이 옆길로 빠져 놓고는 항상 남 이야기하듯 말한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나의 외로운 글쓰기는 그렇게 사적으로 계속 이어졌다.

꽤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꽤 많은 이야기가 버려졌다.

실은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준 건 히메가 처음이었다.

나는 아무도 내 이야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문학 샘이 말한 단편은 수행평가 때 제출했던 소설이었다.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게 과제였는데, 나는 그때 머릿속에 그려놓은 이야기 하나를 풀어놓았다.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다른 아이도 마찬가지여서 문학 샘의 생각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학 샘의 말에 응원을 받은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뚜렷이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이유는

분명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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