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야구드럽게 못하는 엘지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을까?
가을야구가 전부 끝난 이 시점에 갑자기 나의 야구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나의 야구얘기라 하면 내가 야구선수출신이거나 선수를 꿈꿨던 얘기가 나와야 하지만 그런것과는 전혀 상관없다.
아, 어릴 땐 농구선수가 되고 싶긴 했다.
(지금 피지컬로는 택도 없지만)
그냥 내가 좋아하는 야구와 엘지트윈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야구얘기지만 또 나의 20대 얘기라 딱히 야구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도 은근 꿀잼 예상해본다.
사실 내가 처음부터 엘지의 팬이었던건 아니다.
어릴 땐 굳이 연고도 없는 롯데자이언츠를 좋아했다.
정말 어릴적의 일이라 내가 왜 롯데를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명확지않다.
추측을 해보면 몇 개의 가설을 세울 수는 있다.
음...누가 사준건지도 기억이 안나는 자이언츠가 새겨진 방망이가 아직도 방구석에 있다.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이 방망이로 야구하며 놀았던 기억이 나에게 롯데를 좋아하게된 계기를 심어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더해 내 성향은 강팀을 응원하지 않는 편인데 롯데가 그에 딱 부합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아무 매력없는 약팀을 응원하지는 않는다.
뭔가 나를 이끌만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더라도 열정적인 팬들을 가진 그런 팀말이다.
어떤 종목이든 뭐 이런 요인들이 있어야 팬이 되는 것 같다.
꼴데라 비아냥 들으면서도 신문지들고, 사직구장을 가득 메우는 롯데팬들의 열정이 멋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중·고등학생일땐 지금처럼 야구가 전국민적인 인기를 누릴 때가 아니었다.
전 경기를 중계하지도 않았고, 한국시리즈조차 외야석이 텅텅빈채로 치러진 경기들도 종종 있었다.
거기다 2002월드컵이 있었고, 그 전후로 축구에 대한 인기가 어마어마했기에 딱히 야구장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티비로도 전 경기가 중계되는게 아니라 롯데경기를 열심히 챙겨본 것도 아니었다.
단지 가끔 중계되는 티비를 통해 혹은 스포츠뉴스를 통해 소식을 듣고,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는 정도였다.
그렇다면 어린시절부터 롯데를 좋아했던 내가 어떻게 엘지트윈스에 뼈를 묻을 생각을 했을까.
역시 답은 직관이었다.
만약 당시 한 번이라도 롯데의 경기를 경기장에서 봤다면 난 지금까지 골수 롯데팬이었을테다.
이래서 연고지가 중요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고향팀이나 거주지 근처의 팀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롯데자이언츠 배트를 받고, 롯데팬이 되었던 어린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을 거쳐 대학생에 재수생에 군인까지 되었다.
이 때까지도 누군가가 어떤 팀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롯데라고 답했고, 로이스터감독이 부임했을 땐 완전히 몰입해서 승리를 바랬다.
정말로 이 때 잠실로 원정오는 롯데를 한 번이라도 직접봤다면 내가 지지하는 팀을 바꾸는 순간은 한 번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즈음엔 서울에도 종종 거주할 때라서 충분히 직관갈만했는데 혼자라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전역을 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수능을 보자 결심하고, 서울로 올라왔던 23살, 어느 날은 공부에 지치고 서울살이에 지쳐 야구장이라는데를 한 번 가봐야겠다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가고 싶었다.
기아와 두산의 경기였는데 초여름의 5시경기로 기억한다.
당시만해도 군인티를 채 벗지못한 꼬꼬마라 둘 이상이 주로 가는 곳에 혼자 가는게 민망하기만 했다.
아...이런데 혼자가도 되나...?
그래도 한 번 가보자 싶어 버스타고 10분거리에 있는 잠실야구장에 도착했다.
음...롯데가 아닌건 아쉬운데...어느 팀을 응원해야하지?
지금도 그렇지만 이상하게 그 때도 두산은 안 땡겼던 것 같다.
3루측 레드석으로 표를 끊고, 경기시간이 20여분 남은 시점에 널널하게 입장했다.
야구장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와...생각보다 크지는 않구나...티비에는 엄청 커 보이던데'
촌놈티 팍팍내면서 자리를 찾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엔가 미친듯이 민망한거다.
자리를 찾아서 앉았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혼자온 사람은 나 뿐인 것 같았다. (후에 알게되지만 혼자오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혼자오는게 의외로 편해)
경기 시간이 임박해오자 근처 자리도 하나 둘씩 채워졌고, 뭔가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나만 왕따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이야 혼자가 더 편하지만 그 때만해도 참 쉽진 않았다.
그것도 처음 가본 장소인데...
결국 그 어색함을 못견디고 나왔다.
다시 버스를 타고 고시원방으로가 티비로 그 경기를 지켜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성격이었다.
그게 내 인생 첫 직관이었는데 만약 그 경기를 끝까지 봤고, 재미까지 있었다면 난 기아의 팬이 되었을까?
음...그랬을 수도 있겠지...?
결국 그 해에 기아가 극적으로 우승까지 해버렸으니까.
그 해 삼성팬인 친구가 가자고 해서 따라갔던 삼성대 두산의 경기는 정말 재미없었다.
이게 내 인생 두 번째 야구장 방문이자 첫 번째 직관이었는데 게임도 지루하고, 응원도 재미없어서 졸기만 하다 돌아왔다.
심지어 삼성팬인 내 친구가 나보다 더 졸더라.
점수차가 초반에 엄청 벌어졌었다.
이렇게 2009년 처음 야구장에 발을 디뎌봤지만 큰 임팩트없이 직관이 마무리되었고, 난 여전히 롯데팬인채로 수능을 실패했고, 다음해 3월에 필리핀으로 떠났다.
필리핀행이 나를 엘지로 입덕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채로...
나의 첫 해외체류이자 해외여행이자 해외방문이자 심지어 인천공항 마저도 첫 방문이었던 필리핀행은 3개월의 찐하디 찐한 기억과 추억을 남기고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왜 엘지에 입덕하게된 계기가 되었냐고...?
2010년 6월, 남아공월드컵에 모두가 빠져있을 때 나는 축구에는 관심이 1도 없었다.
이유는 그 3개월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였다.
그렇게 축구를 좋아하는 나였는데 신기할정도로 도통 재미가 1g도 없는거다.
축구뿐만이 아니라 모든게 재미없었다.
그러다가 아까 등장했던 친구말고 또 다른 삼성라이온즈의 팬인 친구에게 야구장이나 한 번 가자고 제안했다.
제안하고 나서 경기일정을 보는데 마침 이번주에 롯데가 잠실로 원정을 온다!!
오~ 대박이네!!
드디어 롯데경기를 보는구나 싶어 흥분된 상태로 친구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잠실에 다다랐다.
그렇게 흥분된 마음도 잠시...
3루측 롯데 응원석이 매진이 된 것이다.
당시 롯데가 성적도 좋고, 재밌는 야구를 할 때라 원정팀임에도 일찌감치 표가 다 팔려버렸다.
우린 잠시 고민했다.
그냥 갈까?
에이 서울오는 것도 일인데 경기는 보고가자 싶어 1루측 엘지응원석을 구매했다.
당시 엘지는 기나긴 암흑기일때라 홈경기임에도 관중석은 널널했다.
그래, 잘 됬다 싶었다.
필리핀에서 만날랑 말랑했던 지금말로는 썸이었지만 그 땐 표현할 말이 없던 그런 관계였던 여자애가 있었다.
아, 썸이라고 표현하기엔 내가 좀 많이 아니, 많이많이많이많이 좋아했고, 또 아팠으니까 그건 아닌 것 같고...
아무튼 그 여자애가 부산에 살고, 야구를 좋아하는데 두산팬이라고 했다.
친구랑 농담삼아 얘기했다.
"오~딱 이네? 나 이제부터 엘지응원해야지ㅋㅋ"
부산은 롯데고, 두산은 엘지랑 상극이니까 장난으로 이런 얘기를 한거다.
그렇게 경기장에 들어갔고, 운 좋게도 응원단상과 가까운 자리에 배정받았다.
음...어...? 뭐지...??
처음 해보는 응원인데 헐... 재밌다....신난다...흥 돋는다!!!!!!
나중에 듣기를 당시 엘지 응원단장이 8개구단 단장들 사이에서도 가장 잘한다는 분이라고 했다.
거기다 경기가 초대박이다.
당시 경기내용인데 보통 만루홈런맞고, 뒤집는게 쉽지가 않다.
그것도 롯데의 상징인 4번타자 이대호가 쳤던 홈런이었으니 분위기가 껶여도 수수깡처럼 껶였겠지.
근데 이걸 뒤집은거다.
그것도 8회말에...
그냥 친구랑 둘이서 어느 누구의 팬도 아닌 엘지의 경기를 보면서 반은 실성해있었다.
8회에 뒤집는 순간엔 아드레날린이 극도로 생성되니까 살짝 쓰러질 것 같았다.
이런데 재미가 없었을리가 있어?
거기다 응원하는 맛도 들려버렸고.
이 경기가 필리핀의 기억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나에게 너무 큰 희열과 위로를 줬다.
이미 심장에서는 엘지팬이 되었지만 롯데에 대한 의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직접관람 즉, 직관이라는 것의 임팩트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어릴 때 부모님따라 갔던 첫 경기같은 경우.
나도 사실상 몰입해서 본 첫 직관이 이 게임이었으니 마음에서 동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얘기했다.
"야 주말에 또 경기 언제 있냐?"
그 후로 우리는 완전 직관에 미쳐서 주말에 엘지경기가 있을 때마다 잠실을 찾았다.
친구도 힘들 시기라 더 몰입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무언가에 그렇게 미친놈처럼 몰입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친구와 일정이 안 맞을 땐 혼자서라도 가서 노래부르고, 소리지르고, 욕하고 했다.
주중경기는 늦게 끝나기 때문에 막차를 놓치곤 했는데 3연전을 죄다 보려고 이틀을 찜질방에서 잔적도 있다.
이 때가 한참 잘 나갈 때의 두산전이었는데 세번을 다졌는데도 기분이 막 나쁘진 않았다.
그냥 경기장을 가는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그 해 수없이 많은 직관을 했고, 난 뼛속깊이 엘지 트윈스의 팬이 되었다.
이젠 죽을 때까지 팀이 바뀔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 역시나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었다.
여전히 필리핀의 기억, 그녀의 기억 속에 허우적 댈 때였는데 거기다 학교 생활로 많이 우울했던 시기였다.
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
매 해 어린이날은 잠실을 나눠쓰는 엘지와 두산이 경기를 하는데 이 날의 승패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선수의 자녀들도 대부분 경기장을 찾고, 많은 아이들이 관람을 하는지라 양팀의 선수들도 다른 날보다 열심히 경기를 치른다.
항상 만원관중이고, 언론의 관심도도 다른 게임과는 다르다.
나에겐 어린이날 직관은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고, 티비로 봤던 전날 경기에선 9회 끝내기로 졌기에 행여나 또 질까 걱정도 됬다.
혼자 경기를 보러왔는데 7회까지 4대4로 긴장감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8회 무려 8점을 뽑았는데 그 8점 중에 엘지의 상징이라는 '이병규'의 쓰리런이 포함되었다.
팬들 사이에서 이병규와 쓰리런은 뗄레야 뗄 수없는 단어라 주자가 2명 나간 상태에서 이병규가 타석에 들어서면 팬들은 모두 긴장에 흥분상태가 된다.
왜 이병규와 쓰리런이 연관검색어가 되었는지는 기원이 불분명해서 나도 딱히 설명이 어렵다.
그런데 내가 직관을 했던 그 날 쐐기를 박아버리는 라뱅(이병규의 별명)의 쓰리런이 나온거다.
그리고 8회말 좌익수 수비를 하러 필드로 나온 이병규가 3루쪽 팬들이 본인의 이름을 외치자 손을 한 번 흔들어줬다.
그 때...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막 나왔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또르르 흐른게 아니라 펑펑 울었다.
워낙 감정표현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라 몇 년치 힘들었던게 터져나온 듯 했다.
그렇게 제대로 울고나니까 속이 그렇게 개운해질 수가 없었다.
벌써 6년이 지났지만 이 날의 감정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후엔 친동생도 일부러 자주 데려가서 엘지에 입덕시키고, 2014년에는 같이 포스트시즌 경기도 두 게임이나 봤다.
준플레이오프 4차전 NC와의 경기, 플레이오프 4차전 넥센에게 지고 탈락했던 경기.
정규리그와는 다른 포스트시즌만의 긴장감,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2015년부터 16년까지는 해외에 있느라 거의 경기장을 찾지 못했다.
올해도 우진이와 만났을 때 2년만의 직관이외에는 딱 한 번 갔다.
이젠 응원하는 것도 시들해졌고, 직관하면 투수의 공이 어디에 꽂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집에서 티비로 보는게 더 재밌었다.
그런데 아시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올해도 필리핀에서 돌아왔던 그 때처럼 많이 힘들었다.
사실 그 때보다 더 힘든 것 같다.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닥을 향해 미친듯이 파고들던 8월말 경 야구장이 생각났다.
라뱅이 홈런을 쳐서 나를 울렸던 2011년처럼 이번에도 또 울 수있을 것 같았다.
아니, 좀 울고싶었다.
원체 웃고, 울고, 화내고, 즐거워하고 이런 감정에 서툰지라 울어야될 때 못 울고, 웃어야될 때도 잘 못 웃는다.
일상이 아닌 다른 종류의 자극이 필요했다.
엘지가 포스트시즌을 가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가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8월 27일, 마침 상대도 그 때 그날처럼 두산이다.
두산에 대한 적개심은 다른 팀들보다 유독 크니까 감정이입도 잘 되겠지 싶었다.
역시 기대하면 안되는게 인생의 진리인가.
아니면 '내 인생'만의 진리인가.
차라리 시원하게 졌으면 후딱 여주와서 술이나 마실텐데 12회 연장까지가서 무려 1대1로 비겨버렸다.
명품 투수전이었으면 또 내가 이런소리 안하지.
안타를 11개때리고, 볼넷을 5개 얻었는데 1점밖에 못내는 변비야구의 정수를 보여줬다.
양팀다 출루는 드럽게 많이해서 저녁 6시에 시작한 경기였는데 마지막 지하철타고왔다.
이날은 뭐 두산팬들도 열받을만 했는데 1점이라도 이기고 있다가 8회에 동점허용한 엘지팬들이 더 열받지 않았을까...
그토록 잘던지던 데이빗 허프의 승리도 날아가고, 팀의 승리도 날아가고, 포스트시즌도 날아갔네.
내가 올시즌을 돌아보면 아쉬운 경기가 한 두개가 아니지만 이날 경기가 유독 아까웠다.
끝낼 기회가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이건 뭐 울러갔다가 욕만하다 왔다.
감정 좀 씻으러 갔는데 더 드러워진채로 돌아왔다.
요즘이야 뭐 바닥은 아닌 상태로 지내고 있었지만 그저께 기아팬들이 우승하고 막 우는거보니까 아...엘지는 언제쯤 우승해서 저렇게 나를 오열하게 하려나 하는 생각은 들더라.
떨어질팀은 떨어지고, 안될팀은 안된다고 했지만 난 그래서 더 이 팀을 못 떠날 것 같다.
한화, 롯데팬들에게 다른 팀 팬들보다 더 정이가는게 이런 이유다.
한(恨)없이 응원하는건 치즈없는 피자를 먹는 기분일거다.
그래도 모든 팬들이 그런 피자 좀 먹어봤으면 할걸.
당연히 우승하면 좋지만 한국시리즈라도 진출해서 꼭 직접보고 싶다.
내가 갔던 경기에서 이긴다면 양 옆에서 함께 응원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부둥켜 안고 울텐데.
그리고 신천가서 막창에 소주 엄청 마시겠지.
상상만으로도 꿈 같은 순간이다.
메이저리그는 팀이 30개나 되니까 우승하는데 백년씩 걸린다고 하지, 우리나라는 고작 10갠데 왜이리 우승하기 힘드냐.
간단하게 끝날 포스팅일줄 알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그간 써야지, 써야지 미뤄만 왔는데 가을야구가 끝난 적절한 시기에 마무리해서 더 의미가 있었다.
어린 내가 어떻게 야구를 보게됬고, 어떻게 엘지를 응원하게 됬는지 일련의 상황을 나의 20대 이후의 역사와 함께 녹여보고 싶었다.
앞으로 해외에 나가서 살든 서울과 엄청 멀리 떨어져서 살든 엘지의 경기를 지켜보며 일희일비하게 될 것이다.
아 빨리 야구장가서 소리지르고 싶다.
가뜩이나 추운거 극혐이고, 겨울에 할 거 없는데 얼른 4월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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