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 mei mi Dec 29. 2020

백주(白晝) 식당

- 날아간 추억이 불러일으킨, 내 인생 국수의 기억.


- 6년째 건재한 노트북이 자랑스럽다 ♡ -



- 이번 일을 계기로 LG는 SSD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LG 기사님의 추천으로 삼성 SSD를 구매했다.-




-  (좌)    신(新) SSD- 500GB와      (우)  6년 동안 함께 해 주었던 구(舊) SSD- 128GB. ♡   -






노트북 데이터를 몽땅 날려 먹은 2020년 12월 15일 새벽. 설상가상으로 저장 공간인 SSD 마저 이상

징후가 발견되었다. 이틀 뒤엔 잘 쓰고 있던 와이파이가 갑자기 되질 않았다. 일전에 공유기 고장으로

문제가 있던 터라 급하게 로켓 배송으로 새 공유기를 주문했다. 하지만 벽면 랜선에 새 공유기를 꽂아

도 인터넷이 되질 않았다. 그제야 밝혀진 원인은 건물 전체 인터넷을 처리하는 장치에서 우리 집 부분(?)

만 부품 고장이 발생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기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최근에 작업한 자료는 다 사라졌다. 특히 브런치 메인에 잠시 올랐던 브런치 북 <나의 데님 로드>를

캡처한 기념비적 추억의 이미지가 사라져 아쉬움이 컸다. 데이터를 복구하자니 포맷 후 새로 3개의

프로그램을 깔아 덧 씌워 복원율을 더 떨어 뜨린 상태에다가, 복원한다 해도 얼마큼 무엇이 나올지 모

르는 상황이라 했다. 더군다나 그 비용이 웬만한 기본 노트북 한 대 값이었다. 하는 수 없이 SSD만 새

것으로 교체하게 되었다.





5일 만에 다시 사용하게 된 노트북은 이전보다 성능은 향상되었으나, 추억의 사진과 작업물을 잃고 난

후의 헛헛함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자료를 다양한 공간에 보관해야겠다고 생각

하며 클라우드와 SNS를 살펴보았다.



- 클라우드에서 찾아낸 '콩국수'의  (좌) 원본 사진과   (우) SNS에 올린 사진  -



한때 SNS에 사진 올리기를 좋아했었다. 그중 가장 많은 하트(좋아요)를 받은 추억의 콩국수 사진에

눈이 갔다. 원본 사진이 클라우드에 있는지 등록 날짜 2015년 9월을 근거로 찾아보았다. 다행히도 원

본 사진은 남아 있었다. 핸드폰에 깔린 클라우드 앱과 연동되어 자동으로 사진이 보관된 시기의 자료였

다. 사라지지 않은 추억에 다시금 감사하며 나는 그때의 기억에 잠긴다.






2015년 마지막 여름방학. 원래 방학 때면 두 달 동안 목돈을 만들기 위해 공장 지대에서 일을 했다. 주야

2교대 반도체 부품과 핸드폰 부속을 만드는 공장에 갔다. 식사도 나오고 야근이나 철야를 하면 수당이

높게 책정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이만한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이번엔 졸업을 앞두고 있던 터라 학교에

서 배정한 텍스타일 회사에서 한 달 동안 현장 실습을 나갔다.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간이 한 달로

줄어든 상황이라 나는 시급이 더 높은 야간 근무를 고정으로 하는 일에 지원했다.

  



- 나의 인생 국수집. '소미국수'의 전경 -




저녁에 시작하는 일이기에 오전에 은행에 들려 볼일을 보고 집으로 가던 길. 오랜만에 지나는 골목

길바닥이 새로 정비된 것을 보고 구경하며 지나가던 참이었다. 못 보던 국수 가게 간판에 발길을

멈췄다.



낡은 메인 간판은 기존에 달린 것을 재활용 해 상호명과 일러스트를 추가한 듯 보였다. 양옆에서 위

용을 뽐내는 하얀 플라스틱 간판과 4개의 동그란 등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간판이 '소미국수'인

것이 좋았다.(몇 개의 서브 메뉴가 있었지만) 국수 하나로 승부를 보겠다는 진정성이랄까? 또 프렌차

이즈 식당이 만연한 요즘에 나 홀로 찬란한 신선함이랄까? 그런 것이 좋아 보였다. 때마침 점심을 먹어

야 했기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안에는  4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그 중 한 곳에 다양한 책이 있는 책장이 올려져 있었다.여름 특선 메뉴 콩국수는 6,000원.당일 재료가 소진 되면 메뉴에서 가려진다-


- 소미국수에서 처음 주문해서 먹었던 '오뎅 국수'. 열무김치와 단무지가 밑반찬으로 나왔다. -




안으로 들어가니 여 사장님께서 주방에서 나와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나는 *오뎅국수를 주문했고

사장님께서 주방으로 가시기 전 내부 촬영을 허락받아 사진을 찍었다. 가게 안은 집에서 정성껏 돌

본 것으로 보이는 화분들이 즐비했고 테이블 한편에 온갖 장르의 책이 꽂혀 있었다. 마치 가정집에

초대되어 앉아 있는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주문한 오뎅국수가 나오고 젓가락과 수저를 양손으로

같이 들어 면과 국물을 떠먹었는데,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맛을 그릴 순 없지만 확실한 사실은 이제

것 먹어본 국수 중에 가장 맛있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내게도 동네 맛집이 생겼구

나라며 기뻤고 그 후로 시간이 될 때마다 소미국수에 갔다.


(*표준어는 어묵이지만 당시 메뉴판에 적힌 것이 오뎅이어서 글에 그대로 적용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갈 때마다 방금 먹고 간 사람들의 흔적이 테이블에 놓여 있고 다른 손님이

곧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할 때가 많았다. 아늑한 가게 분위

기만큼이나 사장님은 다정하고 밝은 분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여러 질문을 했다. 여기서 안 사

실 하나가 '소미국수'의 로고 타입을 아드님께서 디자인하셨다는 얘기였다. 이윽고 끊이지 않는 대화

와 웃음이 오고 갔다. 사장님은 자신이 만든 음식에 철학과 자부심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내 가족이

먹는 집밥처럼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로 손님께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다.






- (좌측부터) 비빔국수, 쥐눈이 콩국수, 오뎅국수다. 초반에 먹은 오뎅국수와 달리 나중엔 단무지와 쑥갓이 올려 지게 되었다.(그릇도 예쁜 유리로 바뀜)-



사장님의 바른 먹거리에 대한 신념은 그대로 음식으로 이어졌다. 그중에서 내가 각별히 감동

받았던 메뉴는 콩국수였다. 몸에 좋고 비싼 국내산 쥐눈이 콩을 갈아 콩국물을 만드셨다. 깨끗

이 콩을 씻어 찬물에 담가 우렸던 물은 틀에 넣고 얼려서 콩국수에 동동 띄워 주셨다.(사진에서

보이는 오른쪽에 황토색 콩가루 위, 보랏빛으로 살짝 보이는 것이 그 얼음이다.) 그 위에 채 썬 오

이와 배 한 조각이 더 해지고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오디를 얹었다. 색도 맛도 건강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진미(珍味). 사장님과 제법 친해진 덕에 주방에서 조리 과정을 볼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큰 행복이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난 후에는 더 자주 갔다. 토요일 점심은 특별한 선약이 없다면 무조건 소미

국수였다. 나는 방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와 개강 후엔 만학도로서의 대학

생활에 대해 사장님께 시시콜콜 죄다 얘기했다. 호기심 많고 국수를 맛있게 먹는 나를 사장님은

예쁘다고 하셨다. 한 번은 방학 때 공장에서 일하다 손을 다친 적이 있는데 그것을 몹시 안타까

워하셨다.


"그림 그리는 손인데 다쳐서 어떡하니. 잘 먹고 잘 쉬어야 해."


그러면서 갓 튀겨낸 돈가스를 포장해 손에 쥐어 주셨다. 메뉴판에 엄연히 7,000원에  파는 등심

돈가스였다. 나는 그것이 너무 고마워서 다음번 방문에 롤케이크를 사서 드렸다. 사장님은 연신

고맙다며 내게 기특하고 잘 먹겠다고 하셨다. 이후엔 말을 안 했지만 서로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

았다. 안지는 몇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가게 사장과 손님을 넘어 깊은 유대를 느끼고 있었다.






겨울 방학을 앞두고 나는 방학 날짜를 전하기 위해 소미국수에 갔다. 언제나 환하게 반겨

주시는 사장님의 표정이 어두웠다. 눈치를 보며 오뎅국수를 조용히 먹었다. 식사를 다 마치

자 사장님께서 할 말이 있다고 하셨다.



"잘 왔다. 다음 주까지 하고 가게를 비우게 됐어. 00 연락처 좀 줄래?

아줌마랑 연락하고 지내자. 내가 먼저 전화할게."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순간 멍 했다. 의기소침해진 나를 보고 핸드폰이 있는데 전화하면

만날 수 있다며 웃으며 말씀하셨다. 메모지에 핸드폰 번호를 적어 드렸다. 사장님의 번호를

묻고 싶었지만 혹시나 실례될까 봐, 또 먼저 전화 하신다고 하셔서 내 번호만 알려 드렸다.







- 마지막으로 보았던 소미 국수. 어두워지면 켜는 조명이 정말 예뻤다. -




사실 소미국수에 오면서 늘 들던 걱정이 있었다. 항상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저렴한 가격에

양까지 푸짐해서 먹는 손님은 좋으나, '이렇게 팔아서 과연 이윤이 남을까?' 염려했었다.

국수뿐만 아니라 같이 팔던 등심 돈가스나 비빔밥의 맛과 재료도 훌륭했다. 하지만 나는

가게가 한 번도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본 적이 없었고, 설마 했던 우려가 폐업이

라는 현실로 다가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력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사장님과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내가 가게를 나올 때 밖은 어둠이 내려 있었다. 사장님께서 간판에 조명을 켰고, 늘 낮에만

보다가 불 켜진 간판과 조명이 빛나는 가게는 유난히 예뻤다. 아쉽게도 다음 주면 영업이 종

료된다고 하니 한밤에도 멋진 소미국수의 전경을 기념사진으로 찍었다.



다음 주는 소미국수의 마지막 한주이니 만큼 공강 시간과 수업을 마치고 되도록 빠지지 말고

가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조별 과제와 실습이 한 번에 몰려왔고 평일 하루 전체 공강인 날에도

자료 조사와 동대문 종합시장을 가는 바람에 가게에 갈 수 없었다. 과제 폭풍이 지나가고 그 다

음주가 되어 소미국수에 갔다. 내가 좋아했던 등이 달린 간판은 없었고 식당 내부는 뜯겨 있었다.

출입문 근처 유리에 '알바 구함' 공고와 함께 그 자리에 치킨집이 들어 섬을 알리는 내용이있었다.

이렇게나 빨리 철거가 되다니.. 직접 본 공사 현장은 내 말문을 막았다.






소미국수 단골손님인 내가 마지막 배웅을 못 해준 아쉬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단골손님의 자격을 잃었다. 아무리 바빴어도 그 주에 하루라도 갔어야 했다. 사장님께

알려 드린 내 전화번호만 믿고 가게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분명 날 기다리

셨을 텐데, 정말 가고 싶었는데 사정이 있었다고 전화가 오면 소상히 말씀드리려 속으로 대뇌

었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넘어가도 사장님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내가 소미국수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해서 상처를 받으신 건가? 아니면 집안에 큰일이라도 생기신건가 걱정이 됐다.

가게 상호의 전화번호는 걸면 다른 곳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사장님의 핸드폰 번호도 모르고

어디 사시는지도 모르니 연락이 닿을 방도가 없었다. 너무 미안하고 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치

킨 집으로 바뀐 소미국수 자리에 가서 한참을 울었다.








소미국수에서 먹었던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따뜻한 오뎅국수는 허기를 채우는 동시에

마음의 온기를 높여 주고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이 가져온 어머니의 부재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할머니께 집안일과 요리를 배우게 했다. 남들보다 이른 시기에 서툰 칼질을

시작했고, 연차가 쌓일수록 요리 속도와 실력은 향상되었다. 시작은 매우 즐거웠다. 하지만 언

제나 집밥을 만드는 입장이 몇십 년. 아버지와 오빠의 생일은 물론이고, 매년 내 생일에도 스스로

미역국을 끓이는 자신이 어느 순간 가여웠다. 그래서 나는 내게 밥을 해주는 사람을 가장 고마워

하고 살았다. 친척인 큰엄마와 친구의 어머니,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구내식당 이모들과 외식하러

간  각종 식당에 이르기까지.



돌이켜 보건대 소미국수에서 나는 이제 것 먹어보지 못한 국수의 맛과 함께 꿈꿔왔던 가장 이상적

인 어머니의 모습을 체험하고 있었다. 지적이고 다정하며 언제나 내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시는.

무엇보다 나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진심으로 느끼게 했던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정 소중

했다.






- (좌) 아베 야로의 원작 만화 <심야식당>표지와   (우) 드라마 <심야식당- 도쿄 스토리> / 이미지 출처: 구글 -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위장과 마음을 동시에 채우는 것은 음식이 가진 위대함이다.

먹는 행위가 주는 자극은 오감을 넘어 마음을 타고 영혼까지 도달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내가 소미국수에서 먹었던 오뎅국수가 누군가에겐 하찮은 음식일지 모른다. 각자가 느끼

는 비중이 다르기에. 그러나 모든 먹는 것의 끝자락엔 언제나 그리움이 서린다. 일본 만화 

원작의 드라마 <심야식당- 도쿄 스토리>는  이러한 요리에 담긴 추억을 곱씹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화면 캡처 -







밤 12시부터  오전 7시까지 영업하는 이 식당은 사람들에게 '심야식당'이라 불린다. 식당의

오너 겸 셰프인 '마스터'는 손님이 주문하면 메뉴에 없어도 가능한 음식을 다 만들어 준다.

심야식당 시리즈에서 나오는 음식은 비엔나 소시지에 열십자 칼집을 넣은 문어 모양 볶음

부터 핫도그와 볶음국수 스테이크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심지어는 '면 없는 라면'

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하여도 마스터는 정말 손님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낸다. 일반 적으

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주문조차 당황스러운 기색이 없다. 그래서 심야식당의 손님들이 먹

는 음식은 늘 제 각각이다.



서로가 눈 빛만 보아도 아는 '늘 먹는 거'. 좋아하는 음식이 주는 익숙함과 안정감은 고된 세상

살이에 위로이자 안식처 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요리를 해주는 마스터의 존재는 그가 만드는

음식처럼 순수한 위안을 전한다. 한 그릇의 음식이 만들어낸  편안함은 난데없이 신세타령을

해대도 거북스럽지 않다. 오히려 연민과 공감을 나누는 소통의 장으로 변모시키는 신비한 기운

마저 감돌게 한다.




음식에 얽힌 손님들의 사연은 요리의 레시피만큼이나 참신하다. 어쩔 땐 '이게 무슨 요리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간단한 조리과정과 뻔한 이야기의 흐름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

도 우리는, 저 캄캄한 새벽녘 귀퉁이에 자리 잡은 심야식당에 한순간이라도 함께  얽히길 바

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힘들었던 하루를 마감하고 새롭게 주어진 또 하나의 시간이

그곳엔 존재하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사에서  '먹는 것이 주는 사는 낙(樂)'을 심야식당은 있는 그대로 담담히

말한다. 치열한 삶의 한 복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도 상관없다. 나도 당신도 이번 생은 처음이

라 서툰 것을 어찌하랴.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고, 그걸 먹는 사람이 있어

완전히 고달픈 인생은 없다. 함께 하는 음식이 공존하는 순간 나를 짓누르는 굴레도 잠시 내려놓

을 수 있다.




환히  밝은 낮에 처음 만나 미지근한 내 마음을 뜨겁게 데워줬던 소미국수. 늘 먹던 오뎅국수는

내게 완벽한 위로였다. 가게가 사라진 후에도 그 따스한 기운은 사진으로 기억되며 남았고, 시

간이 지나 그때의 억이 흐릿해질 무렵이 다가온다. 그럼 주저하지 않고 나는 심야식당으로

달려가 이야기 하려 한다.



"마스터!  오뎅국수 한 그릇 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준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