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단상들

by 합정사는여자

#수영

몇 개월 만에 수영을 했다.

오랜 시간 수영을 해왔다지만 몇 개월만에 물속에 얼굴을 담구는 순간,

곧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다른다, 한순간이지만.

죽음은 항상 우리 일상에 공존한다 말이 생각났다.


발끝을 수영장 바닥으로 닿아 본다.

수심표를 체크해본다.

1.3m 아래 땅이 있어. 괜찮아.

천천히 숨을 마시고 내뱉는다.

물을 움직여 본다. 이내 좀 나아진다.


숨에 안정을 취하고 레일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본다.

새로운 사람이 레일로 들어오면 잔잔한 파동이 일어난다.

한두 차례 터닝을 돌며 서로의 호흡을 파악한다.

누군가 출발하면 다음 누군가가 출발하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두턴 동안 한 턴을 도는 등

서로의 호흡을 확인하며 무언의 질서가 생긴다.


첫 바퀴는 중간에 호흡 템포를 놓쳐 물을 마시며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이완과 안정감 그리고 작은 숨조차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긴장감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운동.

수영에 대한 잘 묘사된 글이 있을까.

밖을 나서면 찾아보기로 한다.


다시 물을 잡으며 서서히 안정을 취한다.

물을 잡는다, 숨을 마시고 뱉는다만 남는다.

전처럼 두 번의 들숨으로 25m를 달린다.


수영을 하면서 갖가지 단어들이 흐늘흐늘 흘러나와 문장을 만든다

수영에 대한 생각에 대한 문장에 대한 또 그 문장에 대한 생각들.

그렇게 50분간 1.2km를 마친다.


김연아 인터뷰가 떠올랐다.

"운동할 때 무슨 생각해요?"

"무슨 생각은요. 그냥 하는 거죠."





#세신샵

수영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연결되는 사우나로 왔다.

'세신샵'이 눈에 보인다.

고등학교 이후로 때를 밀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연말을 쇄신하는 의미로 세신을 해볼까하며

2만원을 이체하고 사물함 번호키를 화이트보드에 쓰고 기다린다.

전화도 쓸 수 없고 이름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시스템이 운영되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원초적이고 묘하다.


1. 대기하는 동안 온탕에 반쯤 몸을 담그고

남은 3개월 간 집중할 것과 끝난 지난 2년간 연애를 복기 해본다.

"어차피 언젠가 필요할 시간이였어요."

지난 2년에 대해 사주가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사주에서 나를 표현하기에 적절했던 문장들도 추스려본다.

"혜진씨의 삶에선 모두가 아니라는 포인트가, 어쩌면 당신에겐 필요한 포인트기도 해요."

모두에게 맞는 것이 나에게 맞지 않는 핏.

상담가도 명쾌히 찾아주지 못했던,

살면서 줄곧 느껴온 묘한 니치한 감각들과 많은걸 공감하면서도 되려 공감받지 못했던 공허한 구석들을

사주같이 생각도 못 한 곳에서 인사이트를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앞으로는 니치한 삶을 가진 관계들이 만들어질 거란 믿음,

더 공감받을 거란 믿음에 외롭지만 좋았다.


2. 닫힌 탕 천장을 올려다보며 뚫린 천장 속 노을 하늘을 상상해 본다.

거기에 와인까지 곁들이면 참 극락이겠다.

겨울에 일본을 가야지.


3. 17년도 겨울에 혼자 갔던 일본 노천탕이 떠올랐다.

여자들만 있는 공간에서도 모두가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다녔다.

나는 부끄럼없이 터덜터덜 탕을 돌아다녔다.
괜히 여자 야쿠자가 된 느낌였다.

일본에서 본 여성들의 몸, 지금 사우나에서 보이는 여성들의 몸 구조를 보며 생각이 시작된다.

다양한 체형, 온/열/냉탕에 대한 선택, 앉아있는 자세, 자세와 체형 간 상관관계, 씻는 방식,

아이를 안고 씻기는 모습.
다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유전자에 대한 생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저런 떠오르는 문장들을 담아내려고 탕 밖으로 나와 폰에 메모를 한다.

다시 들어가길 반복한다.

온기를 참고 불려놓은 게이지가 몇 차례 돌아간다.


475번!

부르는 소리에 생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