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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Nov 02. 2023

마놀로 블라닉 신은 여자애한텐 힘든 일 안 생겨

전청조와 애나 델비

전청조는 남현희가 운영하는 펜싱 아카데미에서 남현희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일론 머스크’와 비즈니스 미팅이 있는데 그와 펜싱 대결을 벌이기로 해서 그 대결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그 얘길 믿기 어려울 것이다. 


여성 조선에 기사가 떴을 때 남현희와 전청조의 사진이 실렸다. 만약 전청조가 그냥 평범한 ‘아저씨’ 같았다면 이렇게까지 의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 속에는 체구가 남현희만큼 왜소한 앳된 소년이 들어 있었다. 심지어 그 소년은 어딘지 모르게 남자 흉내를 내는 ‘여자’ 같았다. 학창시절에 봐왔던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 여자애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 느낌은 꽤 익숙한 거였다. 


인터뷰 기사를 언뜻 훑는데,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니는 재벌 3세인데 예술 활동하는 창작자의 심리 상담? 을 하는 학원을 운영 중이라 했다. 너무 이상했다. 경호원을 데리고 다닐 수는 있다. 그러나 “저는 일반 사람들과 다른 환경에서 지내고 있어요. 저의 일상을 함께하는 경호원 분과 운전기사님이 계세요.” 라는 발언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아니 어느 재벌 3세가 그런 말을 하겠는가. 전청조는 자기 상상 속에 있는 재벌 3세를 구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가 사기범인데 여성조선 인터뷰 할 생각을 했을까? 그 배짱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는 자신의 거짓말을 뇌 한 켠에서 진짜라고 믿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사로 인해 자신이 재벌 3세인 게 공식화되고 그럼으로써 더 큰 규모의 사기를 칠 수 있겠다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전청조처럼 자신을 독일의 부유한 상속녀라고 소개하며 뉴욕 부자들에게 접근해 사기를 친 애나 델비가 떠오른다. (전청조는 자기가 파라다이스 그룹 혼외자라고 하고 다님) 넷플릭스‘애나 만들기(원제 : Inventing Anna)’라는 애나 델비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물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보시길. 전청조와 캐릭터가 무척 비슷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전청조는 자신의 사기 피해자들에게 핸드폰으로 우리은행 앱을 열어 자기 통장에 51조가 있음을 보여줬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51조가 있는 사람이 1억을 떼먹겠어? 하면서 전청조에게 1억을 송금했다. 애나 델비는 자신의 상속금이 6,000만 달러(약 747억원)라고 말하고 다녔다. 전청조가 애나 델비보다 한 수 위다. 


남현희는 전청조가 이상하다는 걸 몰랐을까? 결혼을 결심할 만큼? 밖에서 이 사건을 지켜보는 제 3자들은 이런 터무니 없는 인물에게 속아 넘어간 남현희가 의아하게 느껴진다. 명품을 좋아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남현희는 평상시에 사치스러운 편이었다고 한다. 전청조는 남현희에게 벤틀리를 선물했고 명품 가방을 여러 개 선물했다. 남현희는 어쩌면 처음에는 의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전청조가 믿고 싶어졌다. 그래 너의 꿈이 그거구나, 내 꿈도 그건데. 욕망이 공명했다. 그리고 둘은 그 꿈으로 직행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에서 애나는 이렇게 말한다. “잡지에 나오는 아름다운 세계는 실재해요. (중략) 늘 잡지를 보며, 가장 좋은 신발과 옷을 갖고 싶었어요. 마놀로 블라닉을 살 수 있는데 왜 힘들 때를 대비해 돈을 모아? 그런 구두 신은 여자애한텐 힘든 일 안 생겨.”


우와, 묘하게 설득된다. 이런 확신. 누군가의 강한 확신에는 힘이 있다. 사람을 끌어당긴다. 진짜 마놀로 블라닉 신은 여자애한테는 힘든 일이 안 생길 것만 같다. 어쩌면 내 욕망도 조금 공명하는 듯하다.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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