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사랑이 전부다. 거의 전부다. 어렸을 때는 인생이 되게 길 것 같고 큰 공간처럼 여겨졌다. 지금 마흔이라는 나이에 서보니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그렇게 큰 공간도 아니었다. 마흔 즈음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내가 맺은 결실이라고는 남편과의 결혼, 그리고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 하나가 전부다.
요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가치관이다. “나는 남자 없이 잘 살아”라는 미스에이의 노래처럼, 진짜 남자 없이 잘 살 것 같은 걸크러시의 대명사 김서형 배우처럼. 남자와 분리된, 나 자신으로서 당당하고 독립적인 삶을 구축해야 한다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린다. 어떤 맥락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는 안다. 그것도 맞다. 실제로 나는 출산 후 회사를 그만두고 내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지 않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경제적인 부분만 얘기하는 건 아니다. 한 남자와의 긴밀한 연결, 친밀감, 정서적 유대감을 생각했을 때 나는 남편과 분리되고 싶지 않다. 지금이 좋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너무 마음이 헛헛하고 외로웠다. 그래서 그 내면의 빈 공간을 채우려고 더 친구들과 자주 만났던 게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 때 ‘키스’라는 여성 그룹 가수가 있었다. 단 하나의 히트곡을 내고 사라져 버린 걸로 안다. 히트곡 제목이 ‘여자이니까’였는데 후렴구 가사가 이랬다.
“사랑인 전부인 나는 여자이니까~”
당시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거리의 상점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자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 노래 너무 싫어! 무슨 사랑이 전부야! 여자한테 사랑이 전부라니, 뭐 이딴 노래가 다 있어!” 나는 속으로 흠칫했다. 나는 쫌 사랑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친구의 그 말이 머릿속에 콕 박혔다.
물론 어떤 여자는 화성에 관심이 있거나 개구리의 뱃속에 관심이 있고, 고려 청자나 컬링에 진심일 수도 있다. 제인 구달에게 침팬지가 중요했듯이 말이다. 그에 반해 나는 여성이란 존재에 매료되는 타입의, 평생 남녀 관계에 관한 소설을 쓴 스콧 피츠제럴드과에 가깝다. 김욱동 교수가 쓴 <위대한 개츠비>의 해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피츠제럴드는 작품의 주제가 지나치게 남녀의 애정과 물질적 성공에 국한되어 있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이런 비판에 대하여 그는 “맙소사! 그것이 나의 소재이고, 그것이 내가 다뤄야 하는 전부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위대한 개츠비> 해설, 민음사, 258쪽-
나도 그 마음이다. 맙소사! 남편과의 사랑이 내 인생의 결실이고 그것이 나의 전부이다!